[사설] 어린이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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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신학

이사야는 메시아 왕국에 관하여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8)고 예언하였다. 특이하게도 어른에 관한 언급은 없고 어린이만 언급된다. 이 예언은 메시아 왕국의 평화로운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어린이에 대한 종말론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메시아 왕국에서 어린이들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어린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짙던 고대세계와는 판이한 놀라운 관점이다. 성경에는 언약의 자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복음서가 공통으로 보여주듯이 어린이를 환영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어린이는 이미 교회의 일원이며 장차 교회의 미래이다. 어린이는 지금도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이며,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주역이다. 예수님께 안수 받으러 나온 어린이를 꾸짖은 제자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어린이를 좋아하셨고, 어린이를 자기에게로 부르셨고, 어린이를 기쁨으로 맞이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어린이에게 나타난 것을 감사하셨고(마 11:25), 어린 아기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호산나 찬미를 기뻐하셨다(마 21:16). 그래서 예수님은 안수 받으러 나온 어린이를 “용납하라” 그리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중적으로 환영하셨다(마 19:14; 막 10:14; 눅 18:16).

이 말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어린이 신학을 표명하셨다는 사실이다. “천국(하나님 나라)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는 표현은 산상설교의 팔복에 나오는 첫 번째 선언 및 여덟 번째 선언과 동일한 말씀이다. 천국이 거기서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해되듯이, 여기서는 어린이와의 관계에서 이해되고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통해 천국을 바라보셨다. 물론 이것은 성선설을 주장하거나 어린아이가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강력한 관심을 보여준다. 어린이의 귀중함을 드러내신 것이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도 천국을 소유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른만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그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달을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영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Calvin). 천국은 결코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린이에게도 천국을 주어야 하며, 어린이도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 이것이 어린이도 천국을 소유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예수님의 어린이 신학이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금하지 아니하셨던 어린이를 별도의 존재로 간주하여 무시하거나 어린이의 일상생활과 신앙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어린이가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는 행위는 예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신앙심이 없는 오만한 행위이다. 어른이나 어린이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타락하였기에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도 구원에 초대를 받아야 한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멸망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구속의 은혜로부터 어린이를 배제시키는 것은 매우 잔인한 처사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해서도 죽으셨으므로, 어린이도 어른처럼 예수님의 구속 죽음을 명확하게 알아야 할 자격이 있다.

우리는 감히 예수님의 어린이 신학을 외면하거나 거절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이 신학에 동의하고 동참해야 하며, 어린이 신학을 이룩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여러 사안 가운데 한 가지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도 어린이 신학을 간과하지 않았다(행 2:17, 38~39). 어린이 신학은 예수님이 시작해 사도들이 시행하였기에 말세를 사는 우리도 어린이 신학을 실현해야 한다. 어린이를 안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처럼 교회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는 교회, 어린이를 부르는 교회, 어린이가 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 교회가 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어린이를 좋아하는 교회와 어린이가 좋아하는 교회가 될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