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어머니 장례식_가정호 목사

0
25

어머니 장례식

사망을 사망시키고 승리하신 부활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정호 목사(부산 세대로교회)

 

어머니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빈소를 장만할 수 없어 안치실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이튿날 빈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화장을 하시는 분들은 4, 5일 장례식이 예삿일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인 충남 태안 선영에 매장례를 행하는 관계로 비교적 수월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보령에서 안면도까지 새로 개통한 해저 터널을 통과하여 갔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태안까지는 6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먼 거리를 하루 만에 왕복하는 일에 고단하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 친지와 성도님들, 그리고 노회와 지인 동역자님들과 합신 동기님들의 기도와 격려로 장례식을 무사히 잘 감당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에 정성스런 기도와 조의를 표해 주신 귀한 지체들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가족의 선례를 따라 매장례를 실행했습니다. 근래 들어 매장례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젠 묘지를 다듬고 관장할 후손들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지라 매장례보다는 화장례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최근 좁은 국토가 무덤에 잠식당한다는 조사보고가 있고난 후 부터는 더욱 매장보다 다른 장례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역시 매장이나 납골당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수목장이나 정원의 장미장 같은 유형을 원하는 편입니다. 최근 장모님의 경우는 해양장을 했었습니다. 해양장이 아직 공식적으로 법제화 되지는 않았으나 인천이나 부산의 경우는 빈번하게 행해지는 추세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가족의 전례를 따라 매장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9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대략 6년 4개월 어간을 요양병원에 누워서 지내셨습니다. 뇌농양 수술 이후에 신경망 마비로 거동을 하지 못하셨을 뿐 아니라, 말로 의사를 전달하시지 못하는 지리한 세월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처음 2년 정도 제 이름을 부르며 소통을 조금 하시다가 영영 감각을 잃은 채로 지냈습니다. 4년을 넘게 소통하지 못하고 누워 계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고도의 의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유지에 집착할 뿐, 기능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에는 한계가 여실했습니다. 

이젠 돌아가실 어른이 제겐 없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소천하셨기 때문입니다. 막상 돌아가셨을 때는, 오랫동안 병상에 계셔서인지 감정이 메말라 있어서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자꾸만 슬픔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도 이젠 고아가 되었구나” 하고 가벼운 탄식을 했더니 공감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헤아려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나는 한마디 더 했습니다. “우리 딸이 아빠 나이 쯤 되면 나와 같이 고아가 되겠구나” 했습니다. 딸은 그랬습니다. “아빠 그런 말은 당겨서 하는 거 아니에요”자식이 크니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할 수 있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생명을 인간의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이 말기 환자나 죽어가는 가족을 둔 이들이 느끼는 통증이고 고통입니다. 저희의 경우에도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할 당시 병원 측에 분명히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폐렴으로 극단의 위기를 감당할 때는 기계호흡 장치를 부착했습니다. 그 정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가족들은 의사들의 행동을 제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면 자가 호흡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병원 측에서는 자가 호흡을 하는 한 어쩔 수 없다고 하며 그대로 생명을 거둘 때까지 법정 보호를 했습니다.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너무 길게 붙들어 놓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가 비록 거동이나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살아 계셔서 저희가 근신하며 함부로 살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 점은 영적으로는 유익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제간에 벌어졌던 우애와 틈도 새롭게 메꾸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샛강에 서식하는 우렁이처럼 자기 살점까지 자식에게 다 내어 먹게 해서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희생의 모습을 어머니에게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감사하고 고마움뿐입니다.

어머니 빈소에 찾아오셔서 위로와 격려해 주신 여러 귀한 분들께 깊은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인들과 벗님들의 응원이 커서 어머님 장례식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한 분 한 분 엎드려 절하며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나니 마치 한 세대가 단절된 느낌이 듭니다. 잠자는 중에 종종 죽음의 세력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었습니다. 어제는 제가 꿈속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쫓아다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의 조직적인 폭력에 대해서 승리를 선언한다. 나는 이제 자유다.”

꿈에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너희는 이제 내게 어떤 폭력적인 행위를 자행할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너희의 불의에 대해 이미 승리하셨다.” 나 자신의 큰 소리에 스스로 깜짝 놀라 잠을 깨었습니다. 그리고 선명한 의식 가운데 조용히 기도하며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90수를 넘기며 참으로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와 고난뿐인 땅에서 이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사를 가셨으니 그곳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평강을 누리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망을 사망시키고 승리하신 부활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