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이제 곧 통씨아오로 간다_김형남 선교사

0
88

 

이제 곧  통씨아오로 간다

바울의 처지가 나를 위로한다. 바울처럼 찌기가 되어도 좋다

김형남 선교사(대만)

 

이제 곧 통씨아오로 간다. 한국의 순창과 비슷한 3만여 명의 인구가 있는 곳이다. 기독교인 인구는 0.2%이다. 그곳 향촌의 교회에 예닐곱 명의 신도들이 있다. 그들의 처지는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퀴벌레와 쥐 오줌똥이 교회 주방의 곳곳에 있다. 일부 화장실은 타일이 일어나 부서져 있다. 발을 디딜 틈이 없다. 예배당은 먼지로 수북하고, 마이크 스탠드 목은 부러져 마이크가 매달려 있다. 교회 안은 버려진 창고와 같다. 예배실 철제의자는 녹슬어 페인트가 모두 벗겨져 있다.

결혼 이주민 여성은 정서적으로 힘들어한다.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데 자주 운다. 그보다 30살 많아 78세 된 남편은 아프다. 그녀는 남편과 문화 차이로 평생 힘들어했다. 그의 큰딸은 고3이다. 이주민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많았다.

두 명의 여집사는 40대 전후인데 아직 미혼이다. 그중 한 명은 조금 먼 곳으로 이사했는데 ‘목사님’이 왔다고 구경삼아 예배 끝나고 왔다. 또 다른 사람은 회계 담당 집사인데 예배 시간에는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 혼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 헌금만 가져간다. 

지적 장애가 있는 19살 처자가 있다. 그가 SNS에서 찬양을 찾아 예배 시간에 띄운다. 장애가 아주 심하진 않은 모양이다. 40대 노총각이 있는데 그는 정신분열로 고생한다. 놀란 눈으로 내게 “북한 사람이냐?”고 묻는다. 나름 그게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한참 전에 은퇴한 전직 목사의 사모도 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남편과 같이 지내지 않는다. 아들과도 같이 지낼 형편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혼자 교회의 한 공간을 빌어 잠을 청한다. 그녀의 어지러운 짐이 교회 안에 가득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87세된 할머니는 교회가 무엇 하는 곳인가 해서 구경삼아 나온다. 62세 된 그의 아들은 효자인데 치아가 거의 없다. 인지 능력도 나이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역시 교회를 탐색하기 위해 나오는 그는 “내 딸이 의사이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자기 딸을 통해 자신의 구겨진 존엄성을 펴보려는 듯하다. 

그곳에 우리가 간다. 그런데 우리나 그들이나 처지가 같다. 내 오른쪽 눈은 이미 글씨를 볼 수 없다. 외눈박이가 되었다. 왼쪽 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락없는 김 봉사이다. 시야까지 좁아 혼자 거리로 쉽게 나서질 못한다. 차에 부딪혀 죽기는 싫다. 

아내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항암 약을 먹는다.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도무지 자라지 않는다. 통증이 전신을 돌아다닌다. 두통이 올 때 가장 힘들어한다. 투병으로 예전의 총명함도 건강도 보이지 않는다. 2년 전의 그 고운 모습이 이젠 오간 데 없다.

이젠 우리도 잘난 척할 것이 없다. 목이 쉬도록 하는 기도도 힘이 부쳐 잘 안 된다. 머리를 땅에 박고 컥컥 신음을 쏟는다. 나와 아내는 성경을 죽도록 읽는다. 그것마저 없으면 우리는 버틸 재간이 없다. 오늘 읽는 말씀에 은혜가 많다. 바울의 처지가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나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나는 미련하게 되었다.
나는 주리고 헐벗고 정처가 없다.
나는 찌기 같이 되었다.   

이사야에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멋진 말로 위로할 것도 없다. 미천한 사람들끼리 모이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애써 헛기침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면 충분할 일이다. 바울처럼 미련하고 정처 없는 찌기가 되어도 좋다. 아, 꼴찌의 축제에 우리가 초대되었다. 바보들의 행진에 작은 북 하나를 꺼내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