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 다시 만난 주님을 사모하며_조혜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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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주님을 사모하며
다시 만난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 진솔한 신앙이 내 생애에 늘 함께 할 것을

조혜숙 집사(창원 참좋은교회)

 

2016년 10월 3일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전날 저녁 보통의 일상적인 모든 일들을 하고 걷기운동도 열심히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온몸을 휩싸는 극심한 통증으로 눈이 번쩍 떠졌다. 생전 처음 느끼는 통증. 뭐지? 일어날 수도, 누워있을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심한통증이 하반신을 덮고 있었다.

내가 간호사이니 엄청난 통증과 가능성 있는 모든 질병들을 연관시켜 생각해 보았다.
직선으로 연결되는 질병은 생각나지 않고 극심한 통증 해결을 위해 10월 3일은 공휴일이니 우선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가야했다. 시간이 좀 흐르면서 복부가 아닌 허리와 다리 통증임을 가까스로 분별해 느끼니 척추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아, 디스크! 얼마 전 문제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때부터 운동과 관리에 전념했기에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통증은 시작되었고 응급실 진료로는 통증관리가 되지 않아 결국 전문병원을 찾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 아니 의료인인 나도 마음 중심에 허리는 수술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걸을 수 없어 내 생애 처음 휠체어를 탔고 상태를 보려면 MRI를 찍어야 하는데 다리를 펼 수가 없어 진통제 중 가장 강한 모르핀을 맞고서도 통증 조절이 되지 않아 영상실에서 엄마 배속에 있던 자세로 잔뜩 웅크리고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4, 5번 요추사이의 디스크 탈출인데 신경을 정확히 누르고 있단다.

주치의는 시술과 수술 중 선택하라고 했고 처음에는 수술과 똑 같은 절차지만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주치의는 시술의 성공률이 51%라고!! 수술과 시술의 결정은 환자가 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난 확신했던 것 같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강력한 확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49%가 아닌 51%의 성공률에 줄을 설 것이라고. 시술 후 부분마취가 풀리면서 정신이 들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통증 유무를 감지하는 것. 51%에 해당되면 통증이 바로 줄어든다고 했으니.

다리에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었는데 불행히도 나의 통증은 줄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그 순간 온몸을 잠식하는 절망과 원망! 살아가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난 그때 세상 끝에 선 듯 어둡고 칙칙한 절망감을 느꼈다. 주님 어디 계시냐고 화가 난 듯 찾기도 했다. 이 지긋지긋한 통증. 어떤 이는 디스크가 완전히 터져 엉망이라도 신경만 안 누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주치의가 며칠 두고 보자 해서 일단 퇴원을 했는데 밤낮으로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시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렇게 시술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를 며칠 사이에 두번 받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 당시 내 생각은 수술을 대기 없이 제일 먼저 받는 것이 최대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통증으로 잠 못자는 밤낮동안 계속 기도했다. “~ 주소서, ~하소서”

주치의는 다행히 나를 우선 수술 순번을 잡았는데 그날은 우리지역에 엄청난 비가 온 날이었다. 병원이 위치한 큰 도로 옆 제법 큰 하천 물의 범람을 걱정할 정도였으며 병원 지하 주차장에도 물이 차기 시작했다. 지역도 물 피해가 심해 안전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전기가 문제가 생기면 수술실 가동이 안 되니 병원은 목숨이 위태롭지 않으면 수술도 연기해야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이러한 여러 위험한 환경은 모두 내 관심 밖이었고 ‘오로지 수술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내 소원기도는 한 구절뿐이었다. “수술을 받게 하소서 주님!” 한 가지 절박한 소망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시술 때와 마찬가지로 주치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태를 이야기 하고 수술은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수술 집행 중이었는데 전기가 나가 버렸다. 모든 병원이 자체 발전기를 가지고 있기에 우려 상황은 아니라고 했는데 전기가 나갔다는 것은 자체 발전기가 지하에 있어서 침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나고 무서운 생각이 전신을 휩싸기 시작했다. 비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온다고 방송 시간마다 주의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고 수술 중이었는데 전기가 끊겨 버렸다. 병원 관계자들은 수습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때는 붙잡을 곳이 주님뿐이었다. 아마도  내 평생 그렇게 간절하고 진실되고 절박한 심경으로 기도를 한 적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통증도 생각에 잡히지 않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부르고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날 수 있도록 해달라던 기도의 제목도 바뀌어 “주님 내 곁에 함께 하소서!” 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는 깨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공포 그자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의 절박한 심정은 옅어졌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난다.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모두가 숨을 멈춘 캄캄한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전기가 들어 왔다. 나는 너무나 겁에 질려 있어서 아주 긴 시간인 줄 알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리라 자가 발전기이든 공급 전기이든 멈추었던 수술도 다시 재개되어 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왔다. 급박한 순간이 몇 시간이라도 된 듯한 엄청난 경험을 끝냈다. 그런데 난 내 병실을 가지 못하고 이동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 옆 이상한 공간에 대기했다. 아직까지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아 엘리베이터도 안 되고 모든 게 스톱되어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있을 수가 없어서 인지 간호사가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난 저절로 주님을 찾는 기도가 온 가슴을 적셔 왔다. 수술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통증이 잡혔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꽤 오랜 시간 지나자 전기 공급이 안 되어 엘리베이터가 계속 가동되지 않았으므로 직원들이 나를 업고 병실 침대로 돌아왔다. 나의 관심은 오직 마취가 풀리게 된 시점의 통증 유무였다. 수 시간이 지나서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가능해지자 아픈 쪽 발가락을 살짝 움직여 보니 통증이 없는 듯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렇게 주님은 내 곁에서 함께 하시는구나. 나의 기도를 듣고 계셨구나. 언제나 나를 간섭하시고 나의 환경을 주관하시고 나는 붙드시는 구나! 나는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구나! 나의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그런 다음 정말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하고 시술 후 한 것처럼 재차 아팠던 다리 쪽 발가락을 움직여 보고 살짝 들어 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수술이 끝나고 그날 수술은 모두 취소되었다. 나는 인간의 역경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또 한 번 체험했다. 인간의 화려하고 야심찬 계획들은 주님 뜻과 맞지 않을 때 주님의 한 번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무지하게 간사하고 이기적인 나 자신을 반성했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복만 구하는 기도는 초보라고, 신앙이 영글고 성숙될수록 기도의 성숙도가 깊어진다는 것을, 기도 성취는 주님의 계획대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나도 알고 믿고 있었지만 다급하고 절박하니 “~하소서, ~주소서” 하는 기도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많은 이들이 첫 번째 시술 후 통증이 줄고 좋아졌다는데 나는 시술 후 1주일도 안 되어 다시 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하는 상황을 겪으며 잠깐 주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부끄러웠다.

환경에는 주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당시 왜 이런 환경에 내가 처했을까? 주님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는 뭘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단지 밤에 전혀 잠을 못자고 아무리 강한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통증에서 벗어나려고만 발버둥 친 내 모습을 생각하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이면적 사고, 인간의 간사함. 이런 것을 주님은 모두 보시고 모두 이해하시고 모두 보듬어 주신다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지만 목사님 말씀처럼 아직도 유아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나를 보는 것 같아 어디론가 숨고 싶은 부끄러움뿐이었다. 두 번의 시술과 수술을 겪고 통증과의 싸움에서 늘 지곤 했지만 그래도 동아줄처럼 주님 손을 잡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내 마음 속에 주님계신 것을 느꼈다.

당시의 절박한 심정과 통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는가? 내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렇게 애쓴 적이 있는가? 내 물질을 계산 없이 포기한 적이 있는가? 진실로 부끄러워졌다. 내가 주님을 막무가내로 찾을 때 언제나 주님은 대가없이 나의 손을 잡아주시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었던 몇 개월 동안 주님을 다시 만났고 유아적 신앙의 자세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만난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 그리고 진솔한 신앙 자세가 앞으로 나의 생에 늘 함께 할 것을 믿으며 오늘도 진심으로 일상적인 범사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