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 아래 옛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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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옛것은 있다

올해는 세칭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부르는 임인년이다. 세월을 조각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마는, 그런 식으로라도 뭔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벌써 항간에는 여러 운세가 설왕설래하면서 임인년의 의미를 찾는 어떤 소망과 기대감이 나돌았다. 하지만 이런 희망 사항과는 달리, 조금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올해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망이 그다지 밝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이미 두 해 동안 지구상 전역에 코로나 감염병이 지속되면서 그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기미가 좀처럼 선명히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만사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적응되기 마련인데, 이 감염병은 우리가 웬만큼 적응하여 물러가는가 싶으면 다시 폭풍우처럼 달려들어 극성을 부린다. 그러니 올해도 예년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전 1:9)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전도서는 만물의 존재와 인간의 활동에 근본적인 갱신이란 없다고 진단한다. 존재로 말하자면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을 것이고, 활동으로 말하자면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것이라고 부를 만한 무엇이 없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해 아래 옛것은 있다는 뜻이 된다. 무엇인가 후에 다시 있기 전에 이미 있었고, 누군가가 후에 다시 하기 전에 이미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역사 전체가 옛것이다. 그런데 옛것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옛것 가운데는 버려야할 것이 수두룩하게 많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길거리에 한 사람 두 사람 무단 투척해서 집채만큼 쌓인 쓰레기더미는 미관에도 안 좋고 악취가 나서 주민과 행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수년 동안 더 이상 입지 않고 벽장만 채우고 있는 옷가지는 살림에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 믿음을 갖기 전에 몸에 밴 세속적 삶은 신앙 성장에 발목을 잡는다. 미신에 찌든 인습은 정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부정부패로 질서를 갉아 먹는 관행은 사회를 침체하게 만든다. 이런 옛것은 신속하게 제거할수록 유익하다. 특히 신자에게 이런 시도가 당연지사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옛것 가운데는 “좋은 옛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많이 있다. 개인이든 사회든 지식과 경험과 물질 또는 관습과 예법과 전통 등에 좋은 옛것을 많이 확보하고 있으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풍부해진다. 특히 진리와 관련해서는 옛것으로 돌아갈수록 유익할 때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자들은 교부를 넘어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구약성경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셨다. 개혁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험 정신이 풍미하던 시대에 성경으로 귀환하였고,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을 때 도리어 가장 옛것을 말하였고, 예수님은 새것만큼이나 옛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은총의 섭리 가운데 창조 때부터 선사하셨던 옛것에는 모든 좋은 것이 들어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수여하신 옛것에서는 끊임없이 새것이 흘러나온다. 이런 점에서 비록 성경의 두 언약과 관련된 표현이긴 하지만 “옛 것에 새것이 숨어있다”(novum in vetere latet)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구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늘날 기독교의 치명적인 문제 중 하나는 옛것과의 단절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는 데 있다. 험준한 산맥 같은 거대한 절연체가 끼어 있어 거기와 여기가 끊겨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로 현대 교회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옛것에 상당히 무지한 상태가 되었다. 성경의 종교라 하면서도 성경의 교훈에 무지하고, 종교개혁의 후예라 하면서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무지하다. 이런 현상은 신자의 삶 전반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교회의 구조와 예배의 실행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열심이지만, 개혁자들이 목숨을 담보하면서 성경으로부터 추출한 옛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적용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만일 교회가 좋은 옛것으로 돌아가기만 해도 영위할 수혜가 엄청나게 큰데도 말이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이하며 절실히 필요한 것은 좋은 옛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옛날 유다 왕국의 풍전등화 같은 위기 앞에서 옛길 율법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질호가 귓가에 쟁쟁히 울린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렘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