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정체성이란 무엇인가_이동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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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은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에서 찾아야 한다

“정체(正體)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필자 강조)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할 수 있다.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위키백과).

정체성이란 말은 에릭 에릭슨(1902~1994년, 미국인 발달심리학자)이 사용한 용어이다.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지만 통상 정체성은 인간의 정체성을 말한다. 따라서 이 용어를 다른 영역에 사용할 때는 심리학 용어 그대로를 다 포함할 수 없고, 부분적으로 차용할 수밖에 없다. ‘나의 정체성’이라 하면 나는 남과 무엇이 다른가를 먼저 생각하지만 위의 위키백과의 설명에서 보는 ‘고유한’(특수성) 요소와 ‘공유하는’(보편성) 요소 모두를 포함한다. 정체성을 말할 때 ‘고유한’ 것과 ‘공유하는’ 것을 함께 논의해야 마땅하다.

합신에서 많이 듣는 말 중에 ‘합신의 정체성’이 있다. 이 때 말하는 정체성은 ‘고유한’이 강조되는 것 같다. 다른 교단과 우리 교단이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필자도 이런 경향이 강한 편인데 어느 단체에서 분리해서 나온 단체일수록, 사람일수록 초기에 이런 경향이 강하지만 넘어서야 할 과제다. 개인의 정체성에서도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단체의 정체성을 논할 때 ‘특수성’을 강조하면 다른 단체와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정체성은 ‘특수성’보다 ‘보편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고신 교단은 신사참배를 반대한 특수성이 그 교단의 정체성인 것처럼 비칠 때가 많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고를 치른 소수 사람이 아니라 신사참배를 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 곧 이 보편성이 정체성이 되어야 마땅하다. 처음 시작은 회개였지만 이를 거부하는 다수로 상황이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다. 80여 년 전의 역사적인 일을 여전히 정체성으로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마땅하다.

합신의 정체성은 ‘역사적인 어떤 일’(교권의 횡포에 항거, 공의를 세우는 개혁 등)보다 장로교회로서의 보편성에 더 집중하고 강조해야 한다. 합신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미 헌법을 통해 천명한 내용을 합신 구성원들이, 특히 목사와 장로들이 잘 구현해야 한다. 합신의 목사는 안수 받을 때 선서한 대로, 장로와 안수 집사는 장립할 때 선서한 대로, 권사는 취임할 때 선서한 대로 충실히 살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예식의 한 절차로 여겨지는 것이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예식 때 제목 한 번 읽고 끝나고 마는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목사된 이들은 이렇게 선서를 했다. 1) 본인은,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습니다. 2) 본인,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은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교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할 것을 선서합니다. 3) 본인은, 본 장로회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범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 신종할 것을 선서합니다(이하 생략).

이렇게 선서한 이가 동성애 문제로 자기 교회 목사, 장로를 노회가 징계했다고 교단을 탈퇴하면서 교회 주보에 “노회는 교회를 지도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선서 1)은 지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서 2) 3)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장로교회 목사 신분이면서도 전혀 장로 교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회중교회적인 발언이지 장로교회적인 발언이 아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지만 장로교 목사의 정체성이 희박하거나 없는 사람이 많음을 확인한다.

필자는 ‘합동신학교’ 시대를 마감하기 직전인 19회 졸업생이다. 1999년 2월에 졸업을 했고, 20회는 그 해 12월에 졸업하여 ‘합동신학교’ 시대가 끝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 합신의 출발에 대한 신화는 잊히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신화의 재현이 아니라 개혁 신학을 표방하는 학교답게, 교단답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재학 시절보다 교수진이 훨씬 개혁주의 신학에 더 충실한 것 같아 기쁜 한편, 신학생들은 더 개혁주의 신학 교육을 잘 받고 합신을 떠나는가? 질문을 하게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합신의 3년이 신학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합신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학생들의 맹성(猛省)이 필요하다. 그저 자격증만 받으면 목사, 선교사를 잘할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과거의 예로 보면 합신의 3년 전이나 후나 별 다를 바 없이 그 모습 그대로 교정을 떠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우리가 표방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 묵묵히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표방하는 신학이 현재에도 유용하며, 우리 후 세대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공이산(寓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남들은 어리석게 여기나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의 주인공처럼 함께 이 길을 가자!

이동만 목사(대구 약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