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문학상/목회자부 대상] 논픽션_상봉과 이별_한 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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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과 이별

한 돌 (합신세계선교회 HIS, 선교사)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날짜까지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한국의 여름, 오스트레일리아의 겨울날이었다. 브리즈번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서 서 박사가 유학생들과 캠프미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 영어가 서툰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이국땅의 문화를 향유하며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은 채 분위기에 깊이 빠져 들었다.

자리 잡고 앉은 들판이 목장으로 둘러싸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은 타운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것은 흩어져 있는 물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십여 명 젊은이들이 열흘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싱싱한 양고기, 엄청난 양의 은박지에 싸인 레인보우 트라우트, 숯불에 굽기 위해서 가지고 온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감자, 목장용 알루미늄 통에 담아 온 신선한 우유, 거기에 주인을 따라와서 모닥불 옆에 점잖게 앉아 있는 송아지만한 몸집에 비해 눈망울이 어린애처럼 순한 누런 색깔의 털 많은 개.

금방이라도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깊어가는 초원의 밤을 한결 우아하게 장식해 주었다. 몇 채 안 되는 적막하고 평화로운 민가는 이전의 코리아의 시골마을과 많이 닮았다는 사색에 잠겨 있을 때였다.

“에니바디 케이임 프러엄 코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청년이 세차를 하지 않아 흙이 덕지덕지 묻은 장갑차 같은 짐차에서 맥주 박스를 내리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아이 허드 브레이킹 뉴스, 김일성 다이 인 노오쓰 코리아”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있던 일행이 뜻밖의 소식에 한 목소리로
“리얼리?” 하면서 말을 받았다.

서 박사에게 그 뉴스는 남달랐다. 자신이 코리언이래서가 아니다. 지난주에 캔버라 연방정부에서 보낸 레터 때문이다. 아세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서 박사를 평양으로 보내기로 최종 결정했다는 오피셜 레터가 지금 배낭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중국 선양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순안비행장에 내렸을 때는 초겨울의 저녁바람이 유난히 차가왔다. 국제공항터미널이라고는 하지만 평양순안공항은 여느 소도시의 비행장처럼 조용했다. 낡고 투박한 활주로에서 움직이는 비행기는 지금 타고 들어 온 비행기뿐이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창밖의 풍경도 단출했다. 비행기가 몇 대 서 있긴 했지만 하나같이 기수부위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 위를 움직이자 청사 중앙에 있는 <평양>이라는 글씨가 묘한 메시지를 던지며 검문소의 군인처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옆에 걸려 있는 김일성의 대형초상화가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서 박사는 마치 특수임무수행을 위해서 적진에 뛰어든 요원처럼 몸도 마음도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입국장으로 들어서면서 말로만 듣던 인민군 군관(장교)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난생 처음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셨을 때처럼 가슴도 얼굴도 확확 달아오르고 기분도 묘했다. 입국수속은 계급장을 단 군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여권을 건네주자 페이지를 넘기며 꼼꼼하게 살피던 민 소좌(소령)가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느 대표단입네까? 초청단위는 어디야요?”
따지듯이 날카롭게 물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단입니다. 평양종합대학에 사업이 있어 들어옵니다.”
“거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하셨구만요.. 들어가면 안내원이 나와 있을 겝니다.” 하고 여권 안에 붙어 있는 사증에 날짜가 표기된 빨간색 도장을 찍어서 되돌려 주었다. 승객은 많지 않았지만 부친 짐이 나올 때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옆에 서있는 흑인남자 얼굴을 보니 잘 닦아 놓은 구두처럼 반짝거렸다. 입국장 밖에서는 까치발을 하고 칸막이 너머로 도착한, 자기가 맡은 손님들을 찾느라고 안내원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입국신고서에는 생년월일을 뜻하는 칸에 ‘난 날’이라고 낯선 단어가 인쇄되어 있었다. 가지고 들어 온 돈의 액수도 정확하게 적어야 한다는 권위적인 안내문이 서 박사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부친 짐은 몇 개이며 짐 속에 들어있는 물건이 뭔지를 조목조목 적도록 되어 있었다.

특히 손전화기(휴대폰)는 공항에 맡기고 들어가야만 했다. 담당직원이 내미는 ‘손전화기 억류증’을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얼떨결에 받았다. 맡겼다는 생각보다는 압수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짐을 찾아 입국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안내원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서 박사님이시디요?”
“예 맞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네다. 이번에 박사님을 모실 안내원 오창용입네다.”
“반갑습니다. 서광현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자마자 깡마른 40대 중반의 안내원은 사무적으로 자기 말만을 계속하였다. 숙소는 중구역에 있는 ‘해방촌호텔’이라는 것과 호텔 위치가 대동강과 근접해 있어 산보하기가 좋다는 것 그리고 대학엔 하루 쉬고 월요일 오전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과 평양은 예로부터 살기 좋기로 소문난 곳이라는 것, 수령님과 장군님 계신 혁명의 수도 평양은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혼자서 관광 가이드처럼 길게 늘어놓았다.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보니 호텔 옆에는 ‘로동신문’이라는 대형 글자가 걸려 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한복판에도 비행장에서 본 것처럼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웃음 띤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지만 거기엔 이미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행인들은 하나같이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훈련받는 군인처럼 팔을 앞뒤로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길거리를 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식당 밖으로 나오자 대동강 건너편에 있는 주체탑 꼭대기에는 이글거리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체탑을 중심으로 양 옆에는 ‘일심’과 ‘단결’이라는 엄청나게 큰 붉은색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마치 “여기가 평양이오.” 하고 방문객을 향하여 큰소리로 말하는 것 같았다.

안내원에게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좀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물론입네다. 선생님! 남조선(남한)에서는 평양에 가면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다고 선전한다디요? 자! 어딜 보시기 원하십네까? 어디든지 모시고 가겠습네다.”
“그렇다면 대동강으로 나가서 강변도로를 좀 걸읍시다.”
“거 좋습네다. 그렇게 하시라요.”

서 박사는 안내원과 함께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지하도를 빠져나와 강변으로 접근하였다. 강물에서 올라오는 상큼하고 친숙한 냄새가 가슴과 코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 냄새는 소년시절 한국에 살 때 개울에서 송사리와 미꾸라지를 잡으면서 맡았던 냄새였다. 싫지 않았다. 아니 그 냄새가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서 박사는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며 강변의 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여 마셨다. 정말 와 보고 싶던 평양에 왔다는 것을 자축하면서. 가슴엔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이 차오르며 갑자기 정신이 맑아졌다.

어둠속에서 대동강은 야간 행군을 하는 군인들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2~300미터쯤에는 대동교, 멀리 왼쪽으로는 옥류교가 보였다. 강변을 따라 올라가자 김일성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자 대동문과 련광정이 나왔다.

“박사님! 옥류관이라고 들어 보셨갔디요. 저기가 랭면으로 소문난 옥류관입네다.”
지붕 색깔을 초록색으로 단장한 조선식 건물이 조명을 받으며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박사님! 오늘은 여기서 돌아섭시다요..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이 쯤 해서 들어가 쉬시지 않갔습네까?”
“좋습니다.”

되돌아오는 길에 젊은 남녀가 강물을 만지작거리며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였다. 희끄무레한 어둠속에는 여기저기에 또 다른 아베크족들도 눈에 들어왔다. 서 박사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 하기야 전쟁 중에도 사랑은 싹트고 꽃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양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몇 걸음을 걷다가 안내원에게 말을 건넸다.
“안내원 선생! 나도 대동강 강물에 손 좀 적셔봅시다.”
“거 안 되는데요. 강물을 만지갔으면 100달러는 내셔야 합네다.” 하고 농담을 했다.

평양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게 첫 학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신입생 같았다.

연구실에서 학술토론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첫눈은 환영파티에 참석한 신입생처럼 12월의 평양하늘을 기분 좋게 춤추며 하강하고 있었다. 눈 내리는 캠퍼스의 겨울풍경은 닥터 지바고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북조선(북한)과 계절이 정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는 서 박사에게는 거의 십여 년 만에 보는 함박눈이었다. 서 박사가 재빠르게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라고 쓴 돌비석 쪽으로 이동하면서 황 교수와 배 선생을 불러 세웠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시지요.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함박눈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드니에서는 일 년 내내 눈 구경을 할 수 없거든요.”
황 교수가 말을 받았다.
“그럽시다. 배 선생도 같이 서자요.”

지나가는 학생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부탁을 하자 정중하게 카메라를 받아들고 우리 일행이 채비를 할 때까지 기다려 줬다. 학생의 왼쪽 가슴에는 ‘평양종합대학’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배지와 대학 배지 위에는 김일성의 사진이 인쇄된 붉은색 배지를 달고 있었다. 하교하는 학생들은 교정에 서 있는 김일성의 동상 앞에서 하나같이 걸음을 멈추었다. 교모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유치원 원아들처럼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어떤 학생은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꽃다발을 동상 앞에 정중히 갖다 놓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식당은 식사를 하면서 노래도 할 수 있는 널찍하고 제법 고급스러운 음식점이었다. 배 선생이 먼저 마이크를 잡으며 일어섰다.
“제가 오늘 멀리서 우리 공화국(북한을 사무적으로 일컫는 말)을 찾아오신 박사님을 위하여 노래 한 곡 불러 올리겠습네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처음 들어 보는 북한의 노래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가볍게 좌우로 움직이면서 부르는 배 선생의 노래 솜씨는 제법이었다. 그녀의 노래에는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신비한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첫인상은 군복을 입은 여군 장교 같았다. 꼿꼿하게 서있는 자세며 똑똑하고도 분명하게 묻고 대답하는 말솜씨가 돋보였다. 렌즈에 푸른 색깔이 도는 안경을 낀 느낌이 차갑고 약간은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평양 토박이말을 하는 배 선생의 말씨와 행동은 첫 날 첫 대면을 하는 그 순간부터 서 박사의 가슴에 깊이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의 영상이 더 크고 진하게 서 박사를 사로잡았다. 마치 지인에게 얻어온 강아지가 날이 갈수록 친숙해지듯이 그리고 마침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 가듯이 어찌된 일인지 배 선생도 서 박사를 각별히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 선생은 대학을 방문하는 모든 해외동포 학자를 도맡아 사업하는 대외사업부의 책임부원이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천리마동상을 지나서 김일성동상이 자리 잡고 있는 만수대 언덕 아래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서행하였다. 뒷자리에 앉아서 속도계를 넘겨다보니 30킬로도 되지 않았다. 서 박사는 무슨 일인가 해서 긴장을 하고 조용히 지켜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 수령님 동상 앞을 지날 때, 모든 차량은 최고속도가 30킬로 이하로 달려야 하는 것이 그 땅의 규정이고 교통법규였다.

승용차가 대동교를 건너 호텔을 향해서 로동신문사 앞쪽으로 들어섰다. 그 때였다. 길에 서있던 교통보안원(교통경찰관)이 야간 지휘봉을 요란하게 흔들며 우리가 탄 차를 멈춰 세웠다. 앞자리에 탄 안내원이 재빠르게 차창을 내리면서
“대표단입네다.” 하고 소리쳤다.
“어느 대표단입네까?”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대표단입니다.” 하고 말을 주고받았다.
잠시 교통보안원은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살피고는 거수경례를 하며 차를 보내 주었다.

운전기사가 출발을 하면서 말했다.
“박사님 덕분에 살았습네다. 야간운행을 하자면 반드시 야간통행증을 끊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만……”
그 말의 뜻은 해외동포가 타고 있을 때는 웬만하면 교통보안원이 봐준다는 것이었다.
옆자리에 있던 안내원이 한 마디 했다.
“거 운전수 동무! 똑바로 하라우 앞으로는 그런 실수 되풀이 하지 말고…….”

그 이듬해 겨울이었다. 아침에 산보하는 습관이 있는 서 박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찾아낸 것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배 선생에게 제의를 했다.
“미란 선생! 내일 토요일 아침, 연광정에서 만납시다. 아침산보를 같이 합시다.”
의외로 배 선생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예, 알았습네다.”
“꼭 나오셔야 합니다.”
“근심하지 말래두요.”

다행히 배 선생의 살림집이 연광정 근처에 있다고 했다. 서 박사는 모처럼만에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꿈꾸며 당일 새벽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포근하던 겨울 날씨가 그날따라 몹시 추웠다. 거기다 강바람까지 매섭게 불어댔다. 그러나 배 선생을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씨가 얼마나 맵짠지 십여 분 서 있는데도 손과 발이 시려오고 귀가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거기다 싸락눈까지 날리는 새벽날씨는 여간 춥지 않았다. 약속한 7시가 되자 인민대학습당 쪽에서 시보가 징소리처럼 은은하게 들려왔다.

7시 5분, 10분…… 장갑을 낀 손으로 두껍게 끼워 입은 옷소매를 간신이 밀어 올리니 손목시계 얼굴이 나왔다. 어느 새 7시 25분을 지나고 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의 대동강의 풍경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무대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강 건너 노동당탑이 흩날리는 눈에 가려서 희미하게 보였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배 선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해두었는데… 서 박사는 배 선생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벌겋게 언 귓불을 두 손으로 비비며 한 시간을 버티던 서 박사는 더 이상 추위도 소변도 참을 수 없어 돌아섰다. 오는 길에 몇 번을 뒤돌아보고 뒤돌아봤지만 배 선생의 모습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날 그녀는 약속 장소에 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지 못했던 것이다. 거침없이 대답을 했던 것은 모든 걸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처지에서 대답이나 시원하게 해주자는 마음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평양에서는 대학 캠퍼스를 떠나서 단둘이 개인적인 시간을 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서면 언제나 공동연구 집필을 하는 선생들과 자리를 같이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일과를 마치고 대학 캠퍼스를 벗어난다 해서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기다리고 있던 안내원이 같이 있기를 원했다. 그건 규정이었다. 평양에는 규정도 참 많았다. 여자들은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여자들은 바지를 입고 출근 할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그 누구도 공무 이외에는 외부에서 해외동포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그 땅의 엄격한 규정이었다.

배 선생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쪽지에 쓴 손 편지뿐이었다. 문장마다에는 때 묻지 않은 사랑의 감정도 차츰 배여 들었다. 서로의 감정은 이렇게 가을날의 모란봉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 깊어지고 마음속에 사무치는 감정이 대동강 건너편에 있는 주체탑의 횃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서 박사는 어린 시절 잠시 농촌에 살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서울의 대형교회의 장로인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대기업의 임원인 아버지 덕분에 남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에 해외유학을 떠날 만큼 자본주의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배 선생의 친정아버지는 평생 군대에 몸담고 있던 장군이었다. 서 박사와 배 선생은 뿌리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극이 다른 N극과 S극이 반사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북과 남에서 태어나 서로를 알 길이 없는 상대였지만 놓치려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배경이 오히려 관심을 증폭시켰다. 서로의 호기심은 날이 갈수록 더 커져만 갔다. 하지만 해외동포인 서 박사가 평양에 계속 눌러 살 수도 없을 뿐더러 배 선생 역시 마음대로 해외에 나갈 수 없는 조건이었다. 때문에 서로는 어쩔 수 없이 잠시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상봉과 이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가슴엔 그리움이 쑥쑥 커갔다. 그런 세월이 어언 10년 넘게 흘려 가고 있었다.

배 선생이 중국 길림대학으로 총장과 해외출장을 떠날 때 서 박사가 공항에 나가서 배웅을 해 주었다. 며칠 후에는 서 박사도 3개월이나 되는 긴 겨울방학을 집에 가서 보내기 위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에서 중국 심양에 도착한 서 박사는 급하게 마음을 바꾸었다. 곧바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지 않고 길림으로 우회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한 편 밖에 없는 비행기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하는 수 없이 12시간이나 걸린다는 밤기차를 타야만 했다.

먼저 길림에 도착한 배 선생은 길림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외국인 숙소에 짐을 풀고 쉬고 있었다. 서 박사도 대학 정문에서 멀지 않은 북조선(북한)사람과 중국인이 합작운영 한다는 봉화산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식사나 같이 하자며 배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배 선생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부터 하였다. 총장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쉬웠지만 둘은 차를 마시자마자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곤이 겹친 서 박사도 호텔로 돌아와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기다리자 다시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미등을 밝히고 살며시 문을 여니 배 선생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고 옷소매에 두 손을 집어넣은 채 추워 보였다. 안경엔 김이 서려 겨울등산을 하고 막 내려온 등산객 같았다. 서 박사는 말없이 배 선생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잡아 방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배 선생이 귓속말로 아주 작게 말했다.
“선생님! 이 방에는 여기저기 장치가 있습네다.”
“뭐라고요?”
서 박사가 약간 큰 소리로 말을 받자, 배 선생은 화장실로 급히 뛰어 들어가서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놓고 나오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호텔은 좀 그런 곳입니다. 위에도 밑에도 귀가 있습네다.”
“그럼 시간이 좀 이르지만 식당으로 내려갑시다.”
“식당으로 가기엔 아직 너무 이릅네다. 그리고 저는 곧 가 봐야합네다. 몰래 빠져나와서 절 찾을 수도 있습네다. 그냥 잠시 있다가 가겠습네다.”

배 선생은 방에서 나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는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눈치였다. 작은 목소리로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 저녁때 시간을 다시 낼 수 있겠느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 시간이 십 분처럼 지나갔다. 모처럼만에 단둘이서 나누는 이야기인지라 서로는 작은 기쁨과 흥분을 가지고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배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서 박사가 같이 일어서면서 배 선생의 허리를 가볍게 잡고 포옹을 하자 문 밖에서도 충분히 들릴 만큼 거친 숨소리를 냈다. 의외로 민감한 체질 같았다. 배 선생의 거친 숨소리는 서 박사의 마음을 번개처럼 천둥처럼 자극하였다.

배 선생의 안경을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아 당겨 벗긴 서 박사가 침대 위에 배 선생을 누이고 마주 보았다. 얼마나 기다리고 원했던 시간들인가! 배 선생의 눈망울이 밤하늘의 별처럼 방안의 어둠 속에서 영롱하게 반짝였다. 그 눈빛 속에는 기다림과 간절한 갈망과 더불어 망설임과 불안과 도덕과 윤리가 뒤섞여 노래방의 조명처럼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서로의 뜨거워진 가슴으로 점점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깊은 침묵이 흘렸다.

배 선생도 서 박사도 더 이상 진전을 시키지 못하고 빨간 신호등 앞에 자동차처럼 멈춰 섰다. 평소에 당과 수령 앞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한다는 배 선생의 분명한 가치관을 서 박사가 무허가 건물처럼 쉽게 허물수가 없었다. 그런가하면 어려서부터 누가 보든 말든 청교도처럼 살아야한다는 가정교육을 받은 서 박사 역시 심하게 출렁거리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그리고 단념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가치관에 눌려서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끙끙거릴 뿐 한 걸음도 앞으로 전진 하지 못했다. 서로는 그야말로 각자의 명예를 걸고 자기 자신과 치열한 전투를 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자제하고 얻은 공동우승을 축하라도 하듯이 커튼 사이로 밝고 환한 햇살이 스며들어와 두 사람을 격려하는 것 같았다. 틀어놓은 수돗물도 힘찬 응원의 박수소리처럼 들렸다.
서 박사가 승강기까지 전송을 하려하자 배 선생은 서 박사를 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혼자서 잽싸게 방을 빠져 나갔다. 전투는 이렇게 휴전이 되었다.

좀처럼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북조선(북한)에서의 해외 출장은 대단한 특권 중에 특권이다. 하지만 해외출장을 떠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리고 다녀와서 처리해야 될 성가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배 선생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서 박사를 항상 부러워했다.

서 박사는 사흘을 길림에서 보내고 싱가포르를 거쳐서 시드니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한 달 가량이 지난 후였다. 한 밤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기 화면에 ‘국제전화’라는 글씨가 보였다. 전화를 받자 뜻밖에 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 속에서는 울먹이면서 무엇엔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 미란입네다. 며칠 전에 상하이에 왔습네다. 제가 죽을병에 걸렸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서 박사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상하이행 항공권을 샀다. 갑자기 구매하는 것이라서 값이 비쌌지만 한 시라도 빨리 날라 가고 싶었다. 환승을 거듭하면서 거의 24시간 만에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119구조대원처럼 신속하게 병원을 찾아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배 선생은 인사대신 뜨거운 눈물만 흘렸다.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지만 귀밑으로 삭발한 것이 처참하게 드러났다. 사실은 삭발을 한 것이 아니고 항암주사를 두 차례 맞았을 뿐인데 그렇게 길고 아름답던 머리털이 몽땅 빠져 버렸던 것이다. 배 선생은 수술을 앞두고 금식을 하고 있었다. 병명은 유방암 말기였다. 미모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여 있었다.

그녀는 수술을 하고 한 달이 지나서 평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는 강한 생명의 애착을 가지고 몸에 좋다는 것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차가버섯과 오메가 3, 홍삼엑기스, 수용성 키토산…… 거기에다 서 박사가 처방전이 없이는 살 수 없어 어렵게 구해 간 타목시펜까지. 그래서 그런지 몇 달 사이에 새싹 같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이 드러났다. 서 박사가 자청하여 배 선생의 주치의가 되겠노라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과일을 많이 드세요, 그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고기보다는 생선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산보도 빼놓지 말고 하고요. 무엇보다도 수면제를 끊어야 합니다.”
그녀는 산적한 업무로 불면증 때문에 디아제팜이라고 하는 수면제를 밤마다 다섯 여섯 알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세월을 20년 이상 살아왔다고 언젠가 태연하게 고백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언젠가 말씀하신 그런 나라가 정말 있긴 있습네까? 정말 알고 싶어요.”

 

그 이듬해였다. 대학창립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발표할 논문 준비를 위해 묘향산 초대소(모텔)로 며칠간의 지방출장을 떠났다. 배 선생도 따라 나섰다. 승용차가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총을 멘 군인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어떤 검문소에서는 차를 세우고 통행증 제시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대표단이란 말입네다. 대표단이래두…….”
통행증을 보여 주면서 안내원과 운전기사가 합세하여 검문하는 군인과 실랑이를 벌렸다.
지켜보고 있던 서 박사가 뒷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서 검문하는 군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수고하십니다. 군인 동무!”
악수하는 손바닥 안에는 달러가 들어 있었다. 악수하는 군인이 아주 태연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달러를 낚아챘다.

묘향산의 5월은 아름다웠다. 상원암 입구에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산새들이 만들어내는 깊은 산 속의 자연의 음악소리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선율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 저기 누워있고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소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나 조선시대의 무대장식이었다. 흘러가버린 역사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배 선생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를 했고 서 박사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하는데 눈앞에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꿩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배 선생이 살구나무 둥치를 잡고 만발하여 떨어져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습네까? 1년……? 3년……? 5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50년도 더 살겠구만……”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땐 려행을 하고 싶어요. 남조선(남한)에도 가보고 싶고, 동남아에도 가보고 싶어요. 물론 통일이 되어야 그런 자유가 주어지겠지만…… 정말이지 죽기 전에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건 말기 암 환자의 순수한 그러나 가련한 희망사항이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나란히 앉아서 여행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그런데 먼저 어딜 갈까? 남조선 아니면 동남아? 아니면 유럽? 그렇지 언젠가 미란 선생이 말했었지, 1년 내내 춥지 않은 나라에 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추운 것이 정말 진저리가 난다면서, 사계절 중에 나는 겨울이 좋은데 미란 선생은 겨울이 제일 싫다고 하셨지…… 그리고 꿈에도 소원이, 언제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공화국의 수족관 같은 삶을 벗어나서 새처럼 훨훨 창공을 자유롭게 날라보고 싶다고 하셨지…….”

강과 산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 묘향산과 청천강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초저녁별이 막 얼굴을 내미는 시간대의 야외식당의 분위기도 특색이 있었다. 옆자리에 떡 버티고 있던 안내원이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
배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 결심했어요. 더 늦어지기 전에…… 솔직히 제가 얼마나 더 살지 앞날을 담보할 수 없잖아요.”
그녀는 갈망하고 있었다. 그녀가 목말라하는 것은 육신의 것도 이 땅의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신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태양이 둘이나 되는 그 땅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갈망했던 행복에 대한 욕구였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언젠가 말씀하신 그런 나라가 정말 있긴 있습네까? 정말 알고 싶어요. 이젠 출국준비(?)를 해야 될 것 같습네다. 이건 진심입네다.”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 챈 서 박사는 어떤 말로도 응수 하지 않았다. 그녀는 꺼져가는 육신의 등불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듯했다. 육신을 벗어놓고 훌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흠모하는 서 박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그 길 밖에 없다는 것을 판단한 것 같았다.
“…… 제 방을 채우지 않고 열어 두겠어요.”

밤이 깊어지자 낮에는 들리지 않던 강물소리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103호실 방문은 약속한대로 걸려 있지 않았다. 옆방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여 두 사람은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적진에 뛰어든 요원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사상신봉자의 성벽은 높고 가팔랐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않겠다.’는 그 결심과 다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심야의 전투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연장전에 연장전 그리고 또 연장전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와 같던 그 예식은 예상 외로 시간이 흐를수록 순조로웠다. 주체사상신봉자의 가슴 속 깊이 박혀있던 지뢰를 하나 둘 제거하자 한 인간의 실체가 어둠속이지만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결국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치열한 전투와 같은 그 예식은 거룩한 진통의 아픔을 동반했다. 하지만 심연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사와 기쁨이 더 컸다.

서 박사가 성경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했다. ‘이 세상에서야 죄를 지으면 감옥에 들어가지만,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은 죄를 지어서 가는 게 아니며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한 세상 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지요.’ 배 선생은 경청하고 있었다.
서 박사는 작은 소리로 배 선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나라는 특별전용기를 타고 들어갑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입국하자마자 영주권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는 자청해서 배 선생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겁니다.”

배 선생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은 천신만고 끝에 자유를 찾은 탈북자의 눈물보다 더 진했다. 아니 그녀는 어린애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날이 밝기 전에 한 사람은 천사처럼 돌아갔고 절망 가운데 사로잡혀 있던 여인의 심장엔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병상세례를 주다가 쏟은 물이 침실바닥에 아직 흥건히 고여 있었다. 형식적인 교회건물만 한두 군데 있을 뿐 신자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나라, 몇 십 년이 지나도록 도무지 세례를 주지 않는 나라에서 이들은 중차대한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던 주체사상 신봉자와 믿음의 전사의 싸움은 이렇게 총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끝났다.

아침이 되자 강 건너편에서 노란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를 입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바람결에 손을 흔들며 환한 얼굴로 축하인사를 했다.

서 박사가 여름방학을 맞아 평양에서 돌아와 혼자서 동남아여행을 강행한 것은 순전히 배 선생과의 약속을 의식한 사전답사였다. 여행기간 내내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색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밤이 되어 쉴 때에도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베트남의 호치민시를 여행하던 날이었다. 종일토록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닌 탓에 피곤이 겹쳐 저녁을 먹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깊은 잠에 떨어졌다. 이튿날은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으로 가서 인도네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너무나도 생생하였다. 배 선생이 샤워를 하고 들어와 서 박사 옆에 누웠다. 미소를 머금고 젖은 머리를 매만지다말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상당히 큰 그림이었다. 풍속도와 같은 화폭엔 겨울 풍경의 대동강의 연광정과 묘향산의 오월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묘향산 초대소(모텔)식당 대형 수족관 안에 있던 잉어 한 마리가 밑그림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한 줄의 글씨가 보였다 <잘 가시라 안녕히 다시 만나요>. 예감이 심상치 않았다. 머리와 가슴에 아직 생생하게 영상이 남아 있는 그 때였다. 베이징 조선(북한)대사관에 나와 있는 교육참사 황정식으로부터 위쳇 메시지가 날라 왔다.

<어젯밤 10시쯤에 배미란 선생은 박사님에게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먼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상! 경의를 표하며!>
마음이 참 쓸쓸하고 심란했다. 손전화기(핸드폰)의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녹음파일을 찾았다. 이전에 배 선생과 함께 불렸던 노래를 클릭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남는 이 없고
잠간 만나도 잠간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배 선생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 나왔다. 서 박사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전화기를 귀에 바싹 갖다 대고 떼지 않았다. 발걸음을 호텔 안에 있는 바버숍으로 향했다. 삭발을 했다. 바버숍 거울 속에는 병원에 누워 있던 배 선생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