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문학상/장년부 우수상] 시(포도나무)_김기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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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김기호 (포항성안교회, 장로)

태풍에 꺾인 가지 하나
꼭 껴안고 있는 포도나무

바람 불자
온몸으로 바람 막으며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부러진 가지 놓지 못한다
잎이 마르고
시름시름 야위어가는 가지를 향해
아가, 아가,
쉴 새 없이 말을 거는
포도나무

지금쯤 뿌리의 눈은
울어울어 퉁퉁 부어 있을 것이다

발소리

고구마 모종만 심었을 뿐인데
때때로 물만 주었을 뿐인데
웃자란 풀만 뽑았을 뿐인데
북을 주려 밭고랑만 밟았을 뿐인데
어느새 이랑엔
고구마넝쿨이 넘실넘실
땅속으론 붉은 고구마 두근두근
자라게 하는 이 누구인가

 

<수상소감>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피어난 꽃이 아닌 콘크리트가 갈라지기까지 안간힘 다해 피어올린 풀꽃 같은 생명력을 건네주시며 굳게 닫힌 시의 서랍을 열어주신 하나님. 앉고 일어서는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내가 가야할 나만의 길이 하나 있을 거라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 나를 지탱하고 성장하게 하는 믿음 속에서 사람도 사물도 새롭게 보게 하시어 문득문득 시를 깨워 저를 찾아오게 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기억의 서랍 속에 든 것들이 작은 빛을 볼 줄 몰랐습니다. 그 빛줄기가 다시 읽고 쓰기 위해 주어진 삶에 더 충실하라고 온 몸을 감아드는 은혜의 줄, 사랑의 끈임을 압니다. 만질 순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그 끈으로 연결된 누군가와 먹고 나누는 즐거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끓여진 한 그릇 국밥 같은 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얼음냉수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 영혼, 깊숙한 곳에 닿아 단 한번만이라도 출렁이게 하는 시가 여전히 간절합니다. 시의 불씨를 간절함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 은혜의 보좌를 더욱 사모하며 미천하나마 졸작을 우수작으로 과찬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신 심사위원님과 기독교개혁신보사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