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교회사 이야기 8] 종교개혁이 낳은 성직자 교육과 교육 개혁_안상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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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 낳은 성직자 교육과 교육 개혁

안상혁 교수 (합신 역사신학)

칼빈은 성령 하나님이 진리의 유일한 원천임을 선언한다

 

종교개혁 당시에 살았던 신자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종교개혁이 초래한 즉각적인 변화는 예배의 개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일마다 목격하는 성직자의 주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신자들이 주일에 만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는 주로 미사와 성례를 집례 했습니다. 사제는 일종의 제사장과 같았습니다. 미사 때마다 신자들은 회중을 등지고 제단 앞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재현시키는 기적을 행하는 사제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종교개혁을 수용한 지역에서 주일 예배에 참여한 신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예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개혁된 교회의 성직자는 더 이상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였습니다. 설교자는 회중을 향해 섰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교회의 성직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신자들을 목양하는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강단에서 성경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와 구별되는 개혁된 교회의 성직자를 가리켜 흔히 ‘말씀의 사역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예배개혁은 성직자의 교육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개혁된 교회에서 말씀의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는 예비 성직자들은 무엇보다 성경 원어를 공부해야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원어로 읽을 뿐만 아니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신학 수업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선포하기 위해 수사학적인 훈련도 필요했습니다. 한편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각종 이단으로부터 복음을 변증하기 위한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성직자들은 본격적인 성경과 신학 수업을 받기 전에 기초적인 학문과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아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목회 현장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종교개혁 초기부터 비텐베르크 대학은 루터와 멜랑히톤의 지도아래 성경과목과 성경원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개편했습니다. ‘말씀의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대학 교육을 마친 성직자의 비율이 높게 증가했습니다. 중세 말 대학 교육을 수료한 사제는 도시의 경우에도 약 40% 를 밑돌았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비해 1590년대에 이르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수용한 도시 성직자들의 약 86%가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1609년 어떤 도시에서는 이 비율이 거의 94% 정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개혁파 도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16세기 후반 부써가 사역했던 스트라스부르크의 경우 목회자 132명 중 97명이 석사학위 이상을 소유했습니다. 츠빙글리의 취리히 역시 동일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츠빙글리는 1525년부터 신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예언 학교(Prophezei)를 열어 도시 안의 성직자를 교육했습니다. 사역자들은 주로 성경 원어와 라틴어 및 독일어 성경을 읽고 대조하며 성경주해를 훈련받았습니다. 개혁파 학교들 중에는 특히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Geneva Academy)가 유명했습니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목회자 양성만을 목표하는 신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초급 및 중급 학교에 해당하는 과정(schola privata)과 대학에 해당하는 과정(schola publica)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신학 수업이 이루어지는 상급과정에서도 신학과 더불어 고전 언어, 시, 철학, 수사학, 변증법, 물리, 수학, 의학은 물론 이후 법학 수업까지 이루어졌습니다. 1559년 정식으로 개교할 당시 약 600명의 학생이 등록하여 말씀 중심의 개혁파 신앙에 기초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칼빈이 사망한 1564년에는 그 수가 무려 1500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가운데 신학생 규모는 약 300명이었습니다. 인접한 프랑스를 포함하여 타국에서 온 상당수의 유학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네바 아카데미는 칼빈의 종교개혁과 개혁주의를 유럽 전역에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 했습니다. 종교개혁이 낳은 이러한 변화를 검토해 볼 때, 종교개혁은 예배와 교육개혁이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개혁의 수혜자는 점차 교구민들에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복음진리에 대한 무지야말로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라는 인식이 종교개혁가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었습니다. 교회 개혁이 시작된 후 에른스트 작센 지역 교구민들의 실태파악에 나섰던 루터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제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를 보았습니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루터와 함께 했던 멜랑히톤은 다음과 같이 탄식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엄청난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 방치하여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 것인가! 이 불행한 사태를 목격하면서 나의 가슴은 피를 흘리고 있다. 우리가 한 지역의 조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종종 구석으로 가 눈물을 흘림으로써 나의 마음을 달래곤 한다.” 루터와 멜랑히톤은 무지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요리문답을 통해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열심히 교육시켰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칼빈은 세상이 발견한 자연과학과 수학 그리고 인문학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우리가 불경건한 자들의 일과 사역으로 자연과학, 변증법, 수학, 그리고 기타 학문들에 있어서 도움을 받게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셨다면, 그것들을 사용하도록 하자.” (『기독교강요』2.2.16) 일반 학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는 세상의 모든 진리가 결국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칼빈은 디도서 1장 12절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설사 악인이 말한 진실과 정의라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이상 우리는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선용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하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칼빈은 성령 하나님이 진리의 유일한 원천임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한다면 진리 자체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모욕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진리가 어디에서 나타나든지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선물들을 과소평가하면 성령님 자신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강요』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