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자신의 본분을 대하는 기본_이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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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분을 대하는 기본

이은숙 시인 (본보 문화부 객원기자)

지난(持難)한 팬데믹의 여름, <목민심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본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첫 단추는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일 게다. 이것은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는 기초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이기는 첫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릴 때가 많다.

행동거지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흔히 복장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는 것, 말을 차분하고 온화하게 하는 것, 절도 있고 위엄 있는 것, 예의를 알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며 감정을 잘 다스려 불쑥 화내지 않는 것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성경을 배움으로 수양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것이 아닌 필요에 따른 외식적 연출일 뿐이라면 그것은 진정으로 바른 경건과 행동거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른 행위란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욕을 이겨내는 자세이며 시행착오에 의한 수많은 채찍질을 거쳐 연단된 자기통제능력을 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기절제, 오래참음과 인내는 꽤나 훈련을 요하며 묵직한 것이어서 일시적이고 가벼운 연출로는 나타낼 수 없다. 꾸며진 모습은 열악한 환경에서 여지없이 썩은 뿌리를 드러내며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목민심서>에서 다산은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관만은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은 개인이 구하고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수령의 의무는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비록 하고 싶은 뜻이 있더라도 현명하지 못하면 해낼 수 없다네. 그러면 백성들이 피해를 입고 괴로움을 당하지.” 배움과 훈련을 통해 닦은 덕과 위엄, 지혜를 겸비하여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타인 즉 백성도 잘 다스리는 수령의 역할을 감당해낸다는 말이다. 즉 ‘목민’의 기본자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목민’은 맹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가축을 기르는 일에 비유한 것에서 차용한 말이다. 이리, 승냥이 같은 무서운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듯 국가나 여러 기관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백성과 나라를 바르게 이끌고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성경에서 양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푸르고 신선한 풀밭으로 인도하여 먹이는 ‘목자’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조선시대 때 목민관을 ‘목사’라 불렀고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목사’역시 이 ‘목민’의 의미에서 번역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 한국교회도 이 ‘목민’의 의미를 헤아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기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해 보면 좋겠다.

다산은 일반적인 직업과 숭고한 일을 구분 짓기 위해 “목민관이 되겠다고 함부로 구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이 사람을 살리고 이웃과 더불어 의미 있는 삶을 만드는 일이 되며 자신을 명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단순히 성공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돈 버는 일에 그쳐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대하는 자세가 과연 어떠한가?

위태로운 상황 속에 썩은 뿌리를 드러나는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 안에서 스스로를 이겨내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이웃에게 소망을 주는 ‘목민’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팬데믹의 여름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재정악화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무더위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거리의 사람들이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대중교통에서 마음을 누그리지 못하고 싸우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게 되는 요즈음, 도서 한 자락 ‘마음으로 읽는’ 다산의 정신이 참으로 도전이 된다.

“성인이 되어 직책이 주어지면 자신의 몸이 화살의 표적이 된 것과 같아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성급하여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반드시 ‘화가 나거든 가두어라’는 의미의 ‘노즉수(怒則囚)’ 세 글자를 마음에 새겨라.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최소 하룻밤정도 생각하거나 사흘 동안 생각한다면 실수가 없으리니 다른 이는 화를 면해 좋고 나는 허물이 없게 되니 좋지 않겠는가?” 목민심서의 한 구절이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그리스도를 따라 마음과 행동을 다스려 진정한 ‘목민’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참 목자되신 예수님의 심정이 우리의 마음이 되고 삶이되길, 깊은 수심 속 고요한 심연과 같이 강인한 정신과 믿음을 소유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