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 ❷ (요 7:37-39)
도지원 목사(예수비전교회)
오순절 이후의 성령의 임재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풍성함으로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남은 설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의식한 설명이다. 이때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이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말은 오순절 이전과 이후에 성령의 임재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 차이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심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본문에서 그 차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성령을 받게 된다. 본문에는 이 사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구약 시대에 성령의 임재는 그 범위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었다. 성령은 선지자, 제사장, 왕과 같이 특수한 직무를 위해 주어졌다. 모세는 민수기 11장 29절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의 이 희망이 이루어진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설명하면서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행 2:17-18). 그리고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이처럼 오순절 이후에 성령의 임재는 그 범위가 모든 믿는 자에게로 확대된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성령을 받는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행 11:17).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둘째, 성령에 관한 예수님의 약속은 풍성하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여기 “성경에 이름과 같이”라는 말은 구약의 특정 본문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약속과 관련된 두 개의 중요한 말씀이 있다. 하나가 스가랴 14장 8절이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이것은 구약에서 생수가 언급된 유일한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은 초막절과도 관련이 있다(슥 14:16, 19).
또 하나, 더 중요한 말씀은 에스겔 47장 1-12절이다. 먼저, 에스겔이 본 것은 성전에서 발원한 물이 이룬 강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1-5절).
그 다음, 에스겔이 본 것은 이 강이 생수의 강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6-12절).
이 광경의 마지막 부분은 사도 요한이 본 광경과 아주 흡사하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그런데 이 강은 “생명수의 강”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것은 생수의 강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처럼 본문에서 성령에 관한 예수님의 약속은 에스겔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에스겔의 말씀에서 생수는 성전에서 나왔지만 예수님은 생수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 나올 거라고 말씀하신 점이다(겔 36:26-27; 37:14 참조).
따라서 예수님이 성령의 약속을 신자 안에서 흘러나는 생수의 강으로 표현하신 것은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나타낸다. 에스겔이 본 물이 점차 발목에 오르고,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오르다가 마침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 된 것처럼 성령의 은혜는 풍성하다.
이 점에서 오순절 이후에 성령의 임재는 그 정도가 이전과 다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차이를 내다보고 이렇게 예언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 44:3). 특히 선지자 스가랴와 요엘은 성령의 부어 주심을 예언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슥 12:1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그래서 신약의 저자들도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행 10:45).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 3:6). 존 오웬은 “복음시대 이전에는 하나님이 성령을 조금 주셨지만, 복음시대에는 성령을 부어 주셨다”고 말하면서 “부어 주신다는 말은 완전히 족한 충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오순절 이후의 성령의 임재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풍성함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본문에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이 주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렇게 풍성한 성령의 은혜를 아는가?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은 우리 믿음의 수용 능력이 얼마나 작은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혜는 겨우 한 방울씩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로 모신다면, 즉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성령의 은혜는 강같이 흐를 것이다.”
우리가 성령께서 주시는 부흥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흥은 생명의 역사이다. 부흥은 죽은 자를 살리고, 잠든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역사는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