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나님나라엔 차별이 없다(약 2:1-13)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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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엔 차별이 없다(약 2:1-13)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본보 논설위원)

주님은 성도를 개별로 만나시고 주목하시니 우리는 제 나름의 역할만 하면 된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했다. 나아가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 못 박았다(9절). 그러면서 부자와 빈자를 예로 들었다. 예컨대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와 누추한 옷을 입은 빈자가 함께 회당에 들어 올 때, 차별대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자에겐 눈여겨보며 좋은 자리를 권하면서, 빈자에겐 하찮게 여겨 하대한다면, 그건 같은 성도끼리 차별하는 악한 판단이라는 것이다.(2~4절) 더욱이 하나님은 빈자에게 믿음의 부요함을 더하시며,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신다고까지 했다(5절).

그럼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황당하게도 신앙생활의 엇박자를 보였나 보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난한 성도는 업신여기면서, 되레 성도의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며, 성도를 억압하는 부자를 존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6~7절), 그렇다면 당시 가난한 성도들이 부자 성도들로부터 비난당했다던 그 ‘아름다운 이름’(7절)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숨 막히는 영광의 칭호인 줄 믿는다(갈 3:26).

아마 당시 부자 성도들은 가난한 성도들에게 이런 비방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영광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난한 너희가 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도 안 돼!’라고. 이는 어쩌면 눅 16장의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가졌을 법한 비웃음이 아닐까?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점은 야고보 사도의 이 책망과 교훈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남녀노소 빈부격차 신분고하를 불문하고 우리를 평등하게 대하신다.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약자)에게 더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게 하나님의 약속이다(마 25:40, 45).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차별에 익숙하다. 사람들과 성도들을 차별하고 심지어 목회자와 교회까지 차별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무서운 고질병이다. 자신의 차별적 생각이 잘못이란 감각도 없고, 내 행위가 차별행위라는 인식도 없다. 남보다 우월적인 차별성으로 성취감을 느끼거나 열등적인 차별감으로 고통당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는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들이니까. 성도는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세상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야만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모든 사물을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차별은 오직 하나, 하나님 편에 속했느냐, 속하지 못했느냐의 거룩한 차별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교회를 차별해선 안 된다. 그것이 성도의 숫자든, 건물의 규모든, 목회자의 능력이든, 성도의 양육수준이든 말이다. 남보다 탁월하다고 으스댈 것도 아니고, 그렇지 못하다고 주눅 들 것도 아니다. 교회의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 영광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교회나 그렇지 못한 교회나 오십보백보임에 틀림없다. 눈에 보이는 영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영광에 비하면 태양 앞의 촛불밖에 되지 않는다. 내 교회와 내 존재가치가 이렇게 별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럽다는 사실 확인은 바로 설교를 통해 얻는 기쁨의 알짬이다. 그렇다면 열악한 현실마저 오히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진실로 작은 자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말이다.

또한 교회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조차 성도들 스스로 차별하며 혀를 차거나 차별당하며 가슴아파한다는 점이다. ‘우리교회는 노인들만 있어,’ ‘우리교회는 가난한 사람뿐이야,’ ‘우리교회는 저명인사 하나 없어,’ ‘우리교회는 앞장 서는 사람이 없어.’ ‘우리교회는 목회자 집안 밖에 없어’ 하며 아쉬워들 한다. 물론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건 교회를 세우거나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다양한 부르심의 한 방편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 약자들만 모인 교회가 있더라도, 그건 안타까움의 대상도 아니요, 자기비하의 빌미도 될 수 없다. 지극히 작은 교회도 강자들로만 모인 교회보다는 훨씬 유익하고 영광스러운 교회일지 모른다. 하나님 나라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함께 교회로 모이지만, 주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개별로 만나시고 주목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교회와 다른 성도를 차별해서도 안 될뿐더러 차별당할 이유도 없다. 교회와 성도는 각각 제 나름의 맡은 바 역할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