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교회사 이야기 (3)] “오직 성경”-중세 교회에서 종교개혁으로!_안상혁 교수

0
354

“오직 성경”-중세 교회에서 종교개혁으로!
“오직 성경”의 원리는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성경을 읽고 배우며 가르침에 목숨 건 신자들의 피 묻은 구호

안상혁 교수(합신, 역사신학)

1. 중세 교회의 “오직 불가타 성경”

중세 가톨릭교회의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식자층이 아닌 이상 일반인은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라틴어를 고집했을까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통일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라틴어는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상징했습니다. 오늘날 서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 중세 유럽의 각 도시들을 여행하며 각 교회를 탐방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여행자들은 모든 예배당에서 같은 언어로 예배가 진행된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정작 대다수의 예배자들은 라틴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죠. 결국 교회가 자랑하는 통일성은 허울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가톨릭교회는 안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교회와 전통의 성경해석을 그대로 신뢰하고 따르기만 하면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가톨릭교회의 성경인 불가타 역본은 전반적으로 훌륭한 번역이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원문을 오역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위 “원 복음”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에 등장하는 “여자의 후손”을…메시아를 지칭하는 남성 혹은 중성 대명사가 아닌…여성대명사로 오역했습니다 [ipsa 논쟁, 1979년 Nova Vulgata 판본에서 정정됨]. 이 때문에 중세시대에는 성모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성화나 조각상들이 중세에는 널리 유행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다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은 원문성경을 자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개혁을 위한 최우선의 과제라고 느꼈습니다. 각 나라의 개혁운동이 성경번역과 더불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이에 위협을 느낀 가톨릭교회는 라틴어 성경 이외의 모든 번역본들을 불법화합니다. 심지어는 평신도가 성경을 자국어로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경을 아예 금서 목록에 포함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가톨릭교회는 “오직 불가타 성경”의 논리로 교회 개혁 운동을 탄압했습니다.

2.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

독일의 보름스에는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루터의 발밑에 네 명이 앉아 있습니다. 피터 왈도, 존 위클리프, 얀 후스, 그리고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경에 기초한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입니다. 특히 왈도와 위클리프는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대중에게 배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애초에 왈도는 프랑스 리용에 살았던 부유한 상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마 19:21)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구제를 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왈도를 따르는 많은 이들은 번역된 성경을 들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지역까지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국의 위클리프는 옥스포드 대학의 학자였습니다. 모든 영국인이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그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합니다.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영어성경을 들고 영국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설교운동을 일으킵니다.

성경말씀을 직접 읽게 된 신자들은 가톨릭교회가 그동안 성경말씀과는 무관한 내용을 가르쳐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연옥, 마리아와 성인숭배, 화체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등은 성경에 근거가 없는 잘못된 것이며 전통적인 7성례마저도 세례와 성만찬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라할지라도 이것이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할 때, 신자는 사람의 전통보다는 성경의 진리를 따라야 했습니다. 물론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은 철저한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위클리프의 제자들은 설교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왈도파의 경우 1215년 라테란 교회회의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이래 수세기에 걸쳐 유럽 곳곳에서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학살당한 왈도파 성도의 규모가 100만에 이른다고 추정합니다. 후스와 사보나롤라 역시 성경말씀에 근거한 교회 개혁을 설교하다가 붙잡혀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 교회개혁에 앞장선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뱅과 같은 후대의 종교개혁가들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번역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읽게 하는 것을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요컨대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 이라는 원리는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읽고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참 신자들의 피 묻은 구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