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교회사 이야기 (1)] 페르페투아의 순교사화_안상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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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페투아의 순교사화

안상혁 교수(합신, 역사신학)

‘사랑할 자유’,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자유’를 가르치는 순교자 이야기

페르페투아는 로마의 고위 귀족 가문의 딸로서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살다가 202년 기독교인이란 죄목으로 붙잡혔습니다. 이듬해 3월 7일 원형경기장에서 사나운 짐승과 검투사의 칼날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품 안에는 젖먹이 아기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여러 차례 찾아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간곡히 애원하며 부탁했습니다.

어떤 날은 페르페투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기 보이는 것이 무엇이죠?” “꽃병”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꽃병을 꽃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으로 불릴 수밖에 없답니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현재 당하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을 위한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비록 사람의 눈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으나, 우리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아버지를 간곡하게 위로합니다. 많은 초대 교회 신자들은 페르페투아의 순교사화를 읽으며 서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승리의 날이 밝아왔고, 이들은 마치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기뻐하며 평온한 얼굴로 감옥에서 원형경기장으로 행진했습니다. 이들에게 떨림이 있었다면 이는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기쁨의 떨림이었습니다. 페르페투아는 그리스도의 참 아내로, 하나님의 연인으로, 빛나는 얼굴과 조용한 발걸음으로 따라 나섰고, 그녀의 강렬한 눈길로 모든 사람의 눈길을 압도했습니다. 남자들에게는 강제로 사르투누스의 옷을 입혔고 여자들에게는 케레스의 옷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페르페투아는 이를 마지막까지 저항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자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 대신 우리의 목숨을 내어 놓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불의도 의를 인정했습니다. 지휘관이 이에 동의해서 이들은 평상시의 의복으로 격투장에 끌려갔습니다. 페르페투아는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이집트인의 머리를 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집정관] 힐라리아누스 앞에 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자, 이에 대해 군중은 더욱 분노하여 검투사들 앞에서 그들을 채찍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사탄은 젊은 여인들[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을 위해 미친 암소를 준비했습니다. 이는 이례적이었는데 이들의 성별에 맞추어 모욕을 주기 위해 암소가 선택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벌거벗겨졌으며 그물을 씌워진 채 격투장에 나왔습니다. 군중들도 그들 중 한 명은 젊은 귀부인이요, 한 명은 가슴에서 젖이 떨어지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이들은 다시 들여보내져서 벨트 없는 옷을 걸친 채 다시 끌려 나왔습니다. 먼저 암소가 페르페투아를 받았고 그녀는 등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똑바로 앉아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잡아당겨 자신의 허벅지를 가렸습니다. 고통보다도 정숙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에 그녀는 풀어진 머리를 메기 위해 땅에 떨어진 핀을 집어 들었습니다. 순교자가 자신의 승리를 애통하는 것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죽은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펠리키타스가 땅에 내동댕이쳐진 것을 보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일으켜서 둘이 함께 섰습니다. 이 때 군중들의 잔인성이 잠시 가라앉았으므로 이들은 생명의 문으로 들여보내졌습니다. 거기서 페르페투아는 루스티쿠스라고 하는 자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당시 예비신자였고 페르페투아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페르페투아는 마치 잠에서 일어나듯 깨어 (그녀는 완전히 성령 안에서 무아경에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녀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이 놀라게 “우리가 언제 그 암소에게 던져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몸과 옷에 상처를 볼 때까지는 이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녀의 동생을 불러 동생과 그 예비신자에게 말했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 서로 사랑하라. 우리의 수난으로 나약해지지 말라.”

군중들은 이들의 몸을 칼로 베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이들이 보이는 곳으로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일어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스스로 나아갔습니다. 이들은 서로 입을 맞추었고 평화의 입맞춤의 예식으로 그들의 순교를 인 쳤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조용한 가운데서 움직이지 않고 칼을 받았는데, 특히 계단을 처음 올라가서 첫 번째로 처형당한 사투루스는 그러했습니다. 다음은 페르페투아의 차례였습니다. 그녀의 경우 아직 고통의 맛을 더 보아야 했는지 칼날이 그만 뼈 사이를 빗맞았을 때 페르페투아는 크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아직 초보였던 검투사의 떨리는 손을 잡아 자신의 목에 갖다 대고 제대로 찌르도록 도왔습니다. 아마도 너무나도 고귀한 그녀이기에 오직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페르페투아의 순교사화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자유로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타락 이후 우리는 자유를 ‘죄지을 자유’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새 피조물로 거듭난 신자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자유’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페르페투아와 같은 순교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할 자유’가 주어졌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이 자유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자유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조차도 그 분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을 자유입니다. 또한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할 자유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자유와 사랑을 가지고 페르페투아는 순교의 자리까지 기쁘게 나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