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와 신앙]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_권오훈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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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권오훈 안수집사 (남포교회, 한솔병원 순환기내과)

어두운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질병을 헤쳐 나가도록 교회가 더 관심을 갖기를

우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예배와 찬양이 하나님의 큰 은혜였으며 성도들의 교제가 큰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뼈속 깊이 깨닫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오늘날처럼 일관된 적도 없었을 것이다.

깊어 가는 이 혼돈의 시기에 많은 제약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하루도 주의 자녀답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하루 종일 환자들을 대하면서 내가 하는 일은 마치 안내자의 역할과 같다. 건강상태를 파악해서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좋을지 안내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만 그 선택은 항상 쉽지 않다.

어느 날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오래 다니던 70대 남자분이 오셨는데 혈압이 매우 높고 당뇨가 급격하게 나빠진 상태였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2달 이상 처방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본인은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함께 다니시던 80대 후반과 초반의 부부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부인이 잘 보이지 않았고 진행된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매주 면회를 가신다는 남편은 이제 90대 중반을 넘어섰다. 젊어서 뇌출혈로 수술 받은 후 얻은 언어장애로 평생 고생하시던 친구 어머니께서는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 소통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고 이번 팬데믹으로 면회금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급격하게 악화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문제, 기후 변화 등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문제로 비추어 질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인생이란 관점에서 말년을 아픈 것만이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었지만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딱 제정신으로 내 몸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이런 비극을 예방할 수 없고 누가 이런 일을 겪을지도 알 수 없다. 수십 년 간 목회, 선교 혹은 교회 봉사를 해 오시던 분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번 걸리면 파괴력이 커서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겪는다. 국가적인 차원이라야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세상 나라는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잘 죽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떤 교단에서는 신학교와 함께 요양원을 함께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친구 선교사는 실제 선교 사역지로 요양원을 택하기도 하였다.

나는 오래 전 보았던 미국의 SF 코미디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응용한 해결책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을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속에 넣어 두고 그 모든 삶에 관여하고 있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진실을 찾아가게 되고 제작진은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영화와 다른 점은,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대신 일상생활이 가능한 한 마을을 꾸며서 가족 혹은 가족 같은 관계를 가진 치매환자들로 하여금 평상시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다. 함께 사는 건강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곳에서 환자들을 위하여 일하는 직원이나 봉사자라는 것이 현실과 다른 점이다.

어둡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일에 교회가 선교 혹은 봉사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