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골방으로 들어가라_조병수 목사

0
101

 

골방으로 들어가라

조병수 목사(전 합신 총장, 신약학교수)

신자에게는 불리한 상황도 일상이고,
불편한 환경도 정상이므로 자기 신앙을 지켜 실현해야

연초에 프랑스의 친한 목회자에게서 연하 메시지를 받았다. “걸리버가 소인국에서 한 걸음을 걷듯, 2020년이 특별한 기억 없이 단숨에 지나간 느낌입니다.” 이는 분명 지난해는 잃어버린 시간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세계적 감염병으로 유럽은 우리보다 훨씬 큰 타격을 받았기에 선뜻 납득은 간다. 이 상황이 도리어 사업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경우가 아니면 고통을 당한 대부분이 비슷한 상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지난해가 과연 잃어버린 시간인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뜬금없는 말이겠지만 이스라엘에게 광야 체류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얼른 보면 광야 사십 년은 잃어버린 시간 같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었다. 돌로 지은 집도 경작할 땅도 없었다.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의 물,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체험했으니 광야 시절은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것들은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은혜였다. 하지만 좀 더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말 놀라운 은혜는 광야 기간에 율법을 수여받고, 미래의 성전을 내다보는 성막을 건설하고, 제사장 제도를 확립하고, 지파의 체계를 갖추며, 치리 제도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일견 잃어버린 시간 같은 상황에도 신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수,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났던 폭풍의 갈릴리 바다,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 요한의 밧모 섬 유배 등이 다 그렇다.

그러면 역시 동일하게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돼 여러 제약을 받은 필자에게는 지난해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꽤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지난해는 합신에서 교수직을 무사히 마친 해로 기록된다. 외출이 줄어 글쓰기에 집중했고 감사하게도 서른 번째 책(신약성경 신학)을 출판하는 기쁨을 얻었다. 방대한 요한복음 주석 집필의 4분의 3의 지점에 이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주로 서재에 박혀 있었기에 전보다 기도 시간도 늘고, 감동이 되는 성경 구절도 제법 많이 암송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든 덕에 평소 읽고 싶던 교과서적인 책들을 여러 권 꼼꼼히 읽으며 지식 습득의 즐거움도 누렸다. 그 외에 필설로 다 못할 다양한 유익을 얻은 지난해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뜻깊은 한 해였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해를 감염병에 빼앗긴 해가 아니라 일상을 충실하게 영위한 해로 기억한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에서 각자에게 삶의 의미를 주시고, 우리는 모든 환경에서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이 정상이 아니라고 불평을 터뜨릴 필요가 없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타락한 인류는 한 번도 정상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고스란히 지배해 온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삶이었다. 미증유의 세계적 감염병 확산으로 일상이 깨졌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틈이 없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역사에는 깨지지 않은 일상이 한 번도 없었다. 어그러짐과 뒤틀림만이 역사의 모습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자유롭게 활보하지 못하는 갑갑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빨리 생활이 정상화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희망하는 정상의 회복이나 일상의 회복은 무엇인가? 혹시 부모는 제각기 맞벌이로 바쁘고 아이들은 밤늦도록 집밖을 떠도는 그런 식의 회복이라면 슬픈 일이다. 혹시 낮에는 노느라 하릴없이 쏘다니고 밤에는 먹고 마시며 향락을 즐기는 그런 식의 회복이라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도 집회가 정상화되기를 기도하는데 무슨 의미로 정상회복을 위해 기도하는가? 큰 교회는 전과 같이 다시 교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작은 교회는 늘 그렇듯 생존을 위해서라면 염려스럽기 짝이 없다.

신자도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구한다. 무슨 생각으로 그리하는가? 전처럼 교회에서 실력을 자랑하거나 세도를 부리고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 모아 세력을 장악하기 위함이 아닌지 자못 걱정스럽다. 우리는 그런 식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에서 자기의 믿음을 확립하고 자기에게 기념이 될 만한 삶을 이룩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신자에게는 어떤 상황도 일상이며 정상이다. 불리한 상황도 일상이고, 불편한 환경도 정상이다. 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신앙을 지키며 실현할 따름이다. 신자는 광야에서는 광야의 방식으로 살고, 폭풍 속에서는 폭풍의 방식으로 살며, 유배의 상황에서는 유배의 방식으로 산다.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감염병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산다. 모일 수 없다면 골방으로 들어가라. 소리 지를 수 없다면 은밀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골방에서 은밀하게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