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성경 고고학으로 조명하는 성경 –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2)_고양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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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 단지파 이야기

(수원선교교회)

단 지파는 지파의 이름이 도시의 이름으로 남겨진 독특한 지파로서 몇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끌어왔다. “길의 뱀, 첩경의 독사”(창 49:17),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신 33:2) 등 지파의 앞날에 관한 예언부터가 그렇다. 뱀에 대해 가진 전통적 이미지 탓에 축복인지 저주인지 갸웃거리게 된다. 단일한 동물이 사용된 타 지파와는 달리 사자와 독사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물들이 상징으로 쓰인 것도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14만 4천의 인 맞은 자들, 곧 말세에 구원받게 될 12지파의 ‘대표’들을 언급한 요한 계시록에서 단지파가 사라진 것이 흥미롭다. 일부 한국인들은 심지어 한반도의 단군신화가 실종된 단 지파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현장에 대한 역사, 지리적 이해와 고고학적 고찰은 이런 궁금증과 관련하여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길의 뱀, 첩경의 독사 축복인가 저주인가?
야곱이 12명의 자식들을 축복할 때 단을 향해 선포한 말씀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서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트린다”는 것이었다(창 49:17). 히브리어로 슈피폰, 악카드어로 쉬푸(sippu)로 표기되는 이 독사는 일명 뿔 뱀(Pseudocerastes persicus fieldi)으로 불린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등지에서 흔히 발견되며, 모래 속에 눈만 내 놓은 채 완벽히 은닉해 있다가 먹이를 습격하는 것으로 악명높다. 북이스라엘을 침공한 바 있는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셋 3세의 전승비문에는 ‘마치 뱀 쉬푸와 같이, 내가 좁은 산 사이의 경사를 따라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아갔도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즉 고대 근동의 문화 속에서 이 뱀은 탁월한 전투기술과 치명적 공격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단 지파가 북쪽으로 이주하기 전 1차적으로 상속받은 곳은 소렉 시내에서 아얄론 골짜기를 따라 욥바에 이르는 중부지역(수 19:40-43)이었다. 오늘날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잇는 아얄론 고속국도가 지나는 지역이다. 이 아얄론 골짜기는 해안평야에서 예루살렘 쪽으로 올라가는 가장 중요한 도로 중 하나로서, 예로부터 많은 군대와 대상(caravan)들의 이동이 빈번했던 곳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요 길목에는 언제나 상권과 이권을 놓고 충돌하는 세력들이 있기 마련, 고대 근동의 아얄론 도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로를 중심으로 언제나 약탈세력들이 기승을 부렸고,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은 이 위협자들로부터 재산과 생명을 지키려고 지역 세력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주전 14세기의 국제 서신인 엘-아마르나 문서와 같은 고대 문헌에도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에 보내는 조공이 아얄론 골짜기에서 약탈당했다는 내용이 적힌 예루살렘의 왕 아브디헤바의 상소문이 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게셀을 다스리는 왕의 두 아들들이 아얄론 골짜기와 소라 부근에서 아피루라 불리는 떠돌이 약탈 세력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그렇다면 단 지파 역시, 이 지역의 도로들을 지나는 가나안 상인들을 공격하거나 혹은 통행세를 받아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으리라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야곱의 축복은 단지파가 정착하게 될 영토의 지형적 상황 및 경제적 역학관계에 대한 예견으로 이해 가능하다. 길목을 지키고서 가나안의 상인들을 공격했던 그들의 삶을 묘사한 표현으로 말이다. 약탈의 형태든, 통행세의 형태든 가나안인들의 시각에서는 말 그대로 풀숲에 매복해 있다 튀어나오는 독사를 만나는 것 같지 않았겠는가?

바산의 사자

한편 신명기에서 모세는 단을 가리켜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신 33:22)라고 일컫는다. 길의 뱀이었던 지파의 상징이 바산의 사자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단 지파 이야기의 나머지 반쪽, 곧 북쪽으로의 이동에서 얻어진다. 단 지파는 아모리족 세력에 밀려 최초의 분배지 장악에 실패하고, 일부가 북쪽으로 이주한다. 거기서 라이스(삿 18:20) 혹은 레센(수19:47)라 불리던 가나안 도시를 점령해 새 정착지로 삼는다(삿 18장). 단지파에 의해 ‘단’으로 개명된 이 라이스(라이쉬: שיל)는 ‘사자’(Lion)란 의미를 지닌다. 성경에서 바산으로 일컫는 골란고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다. 이 라이스를 정복해 근거지로 삼고 바산 지역 패자로 등극할 단 지파에게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사자란 예언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