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돌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 되어_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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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뜨락]

돌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 되어

– 접붙임의 은혜로 천국을 거닐다

김현숙 전도사(나룻배터 선교회장, 송월교회)

 

아름다운 빛깔의 꽃처럼 접붙임의 은혜로 귀한 열매를 맺는 식구이길 소원하며 남편을 추모한다

 

가을은 언제나 가슴 한 편 멍울을 지우고 그리움을 담아 두는 추억의 상자를 꺼내게 하는 계절이 된 지도 벌써 10년째다. 매년 이맘 때 10.9일 결혼기념일이면 어김없이 가방을 꾸려 불타는 산의 풍광을 즐기며 남편과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이 컸는데 이젠 먼 여행길을 혼자 떠나보내고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남는 시간들을 되돌리며 하늘 향해 그리움을 삭인다. 노랑 은행잎 팔랑이며 떨어져 누운 고창 선운산 여행을 마지막으로 담아낸 필름 속 남편을 애써 꺼내려도 하지 않은 채 맞이하는 시월이다. 오전엔 고운 한복, 오후에는 검은 상복을 입었던 결혼기념일이자 추모일이 된 그 날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머물던 풍경은 사라지고 시간은 흘러갔지만 보고픈 사람의 흔적은 그림자 되어 따르며 지금도 곳곳에서 향기를 내는 것 같다.

참 감람나무의 향기는 진했다. 온 맘을 다해 믿음을 고백하며 열심히 찬양하는 성가대 속에서도 기쁨의 자원으로 주일 아침이면 일찍 채비를 하고 차량 봉사를 했던 승합차 속에서도 열심히 참여한 늦은 오후 구역예배 모임 가운데에도 퇴근 후 피곤함을 물리치고 수요예배 금요 심야에 참석하며 하늘 은혜를 절절이 사모했던 모습에서도 참 감람나무의 자태는 그윽한 그리스도의 향기로 남았다. 돌감람나무로 살았던 지난날을 목 놓아 회개하며 접붙임의 사랑이 어찌 이리 큰지 수없는 고백을 담아 내던 남편은 영정 사진 속에서 날마다 활짝 웃고 있다.

웃음이 주는 평안함을 느끼기까지 남편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에돌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예배를 중단하고 조상이 섬겼던 신을 모셔야 한다며 우상숭배를 시작한 남편은 한동안 교회와 가족들에게 등 돌리며 살아간 흑역사를 썼다. 내리막길을 치닫던 사업이 망해 간다는 이유였다. 얼마 후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님의 강권적인 되돌림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렸지만 돌아와 십자가 앞에 서서 말씀으로 성찰해 가는 숭고한 모습을 보며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덩달아 맛본 우리도 함께 행복했다. 썩어져 갈 세상 것에 접붙임 하던 가지를 쳐 내시고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신 주님 사랑 덕분에 예전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반전의 모습으로 영적일기를 써 내려가던 남편의 신앙은 참 멋졌다. 돈도 집도 남은 것 없이 산처럼 쌓인 빚만 남았어도 오너에서 말단으로 급 추락한 자존심을 추스르며 겨우 풀칠할 만큼 받는 수입에도 행복해 하며 부족했던 아내와 자식을 위한 사랑을 늘 표현해 주었다.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은 남편의 마지막 영적 열매는 풍성했다. 부활을 소망하면서 오늘 주심을 감사하는 천국 시민권자임을 확신하며 하루하루 사는 기쁨이 컸기에 사랑하는 이들을 지상에 남겨 두고 가는 아쉬움이나 예고 없이 찾아 온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도 결코 두렵지 않았으리라. 금요심야예배를 드리고 집에 온 그날 밤 마지막을 직감해서일까 유독 자식을 향한 축복의 멘트는 길었다. 축복한 대로 반주자로 쓰임 받는 딸은 합신 출신 신랑을 만나 강도사 아내가 되어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환경을 원망하며 주님을 불신하던 아들은 접붙임의 은혜로 거듭났다. 휴일을 반납한 채 마커스집회에 참석하는 등 영적 성장을 위한 발돋움에 열정을 쏟으며 지금은 새벽예배로 하루를 열며 성경을 완독하면서 비즈니스 선교를 꿈꾸는 멋진 신앙인이 되어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든든한 영적파트너 됨이 큰 은혜다 10년 전 남편이 가꾸고 두고 간 감람나무의 풍성한 소출일 것이다.

오십 중반에 멈춘 빛바랜 사진 속 남편 얼굴은 그대로인데 머리에 내려앉은 서리두께가 두툼해진 모습은 소리 없이 흐른 10년의 세월을 말해 준다. 요즘 동병상련의 맘으로 호스피스 사별 가족을 지원하는 선교회 리더로 사역할 때마다 때론 먼저 간 남편이 부럽기도 하다. 출근하기 전 식탁에 앉아 성경책을 읽던 기억 속 남편은 멀어지지만, 전철역에서 호스피스 병동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아내를 기다렸던 남편처럼 설레던 여행길은 멈춰졌지만, 함께 여행할 천국을 기다리며 사는 소망은 더해진다. 추모 10주기는 화려한 꽃으로 강단에 헌화했다. 하늘 길을 걷는 남편은 꽃 속에서 활짝 웃는 듯했다. 반쪽 없는 38주년 결혼일이 외로워 보였나 사위가 꽃을 내밀어 마음을 채웠다. 아름다운 빛깔의 꽃처럼 접붙임의 은혜로 귀한 열매를 맺는 식구이길 소원하며 남편을 추모해 본다. 

 

* 김현숙 전도사는 나오미와 룻처럼 배우자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쉼터란 뜻을 지닌 <나룻배 터 선교회> 회장이다. 회원들과 함께 호스피스병동 환우 토털 케어(영적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지원)와 호스피스 사별 가족 (미성년자 가정)에게 매월 경제적 지원을 하며 병원 예배 등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