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람쥐야 미안해_ 박순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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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다람쥐야 미안해

박순옥 작가 (시인, 수필가)

문화생활이라는 미명으로 저지른 탐욕과 죄악의 흔적들은 수많은 다람쥐들을 슬프게 만든다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떠나고 난 뒤의 집안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다음처럼 어지럽다. 여기저기 널려진 옷가지와 열린 신발장, 식탁 위의 식기들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부자리 등 무엇 하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서너 시간이 더 지난 후의 모습은 전과는 전혀 다르다. 적막이 나른한 게으름까지 동반하며 깔린다. 실내에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베란다에 널린 눈부신 빨래, 깨끗하게 정돈된 모든 것들.

그러고 보니 건강이 약해 바깥 구경을 해 본 지도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을 닫고 있어도 온몸으로 감지되는 이 가을의 냄새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코스모스는 이미 무리지어 피어나 바람에 하늘거릴 테고. 새벽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들국화는 그 이슬처럼 맑고 고운 꽃봉오리를 키워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을날 내가 놓아 주었던 다람쥐 녀석은 지금쯤 낙엽 위를 뒹굴 채비를 하고 있을까. 나의 가을은 어김없이 그 다람쥐의 영상이 가슴에 잔잔히 파고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그때 그 다람쥐와의 이별은 벌써 아득한 세월이 되었지만 늘 어제 일처럼 새롭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건이다.

오래전 맑고 청아한 휴일 오후 나는 숲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정릉의 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옷을 벗기 시작한 나무들의 사이사이로 비껴드는 햇살을 손으로 받으며 오르는데 갑자귀 다람쥐 두 마리가 후다닥 발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깜짝 놀란 우리가 채 가슴을 쓸기도 전에 “덜커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덫에 걸린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누군가 숲에 덫을 놓은 모양이었다.

내가 야생 다람쥐를 그렇게 가까이서 관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람쥐는 르나르의 “박물지”에서는 새털장식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고 일종의 귀한 포획물 목록에 종종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민첩하고 귀여운 다람쥐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게 너무도 짠하여 그 녀석을 일단 덫에서 꺼내 품에 안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한 마리가 도망칠 생각을 않고 동료를 걱정하는 듯 우리 주위를 맴돌지 않는가. 느낌상 둘은 부부 사이일 거라 짐작되었다. 그렇지만 자신도 잡힐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함께한 친구는 나머지 한 마리마저 잡아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녀석들을 한 마리씩 나누어 가슴에 안고 승리의 깃발처럼 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저 신이 나서 숙녀의 품위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귀가한 후 우리는 다람쥐에 대한 지식을 더 얻기 위해 백과사전을 펼쳤다.

*다람쥐 : 토끼 목에 속하는 포유동물. 나무를 잘 타고 번식률이 강함. 과일, 솔씨, 도토리, 곤중 등이 주 먹잇감이. 애완용으로 기르기는 하나 모피는 별 쓸모가 없음.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거의 상식적인 것만 기술돼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아마도 애완동물 사육 지침서 같은 것을 구입해야만 할 터였다. 아무튼 다음날부터 아침에 해 뜨면 보드랍고 윤기 나는 그 작은 녀석들을 돌봐 주는 일이 우리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처음엔 생소하긴 했겠지만 조금씩 한 집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우정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이들 부부의 사랑의 행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암컷의 등에 피가 흐를 만큼 끔찍한 상처가 생기곤 하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거기에 대응해 맞서지 못하는 암컷이 오히려 밉기까지 했다. 날마다 새로운 상처가 생가는 걸 지켜보며 더 이상은 이들이 함께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린 결국 그들을 격리시키고서야 한숨을 돌렸지만 상처에 발라 주었던 항생제의 강한 성분 탓인지 아니면 상처가 너무 깊었던 탓인지 암컷은 끝내 죽고 말았다.

숲속에, 창조세계에 내 맡겨 두었으면 잘 살아갔을 다람쥐들을 인위적으로 데려다가 그 지경이 되게 했다는 커다란 죄책감이 엄습해 왔다. 결국 홀로 남은 수컷은 고독에 못 이겨 살아갈 의욕이 전혀 없는 듯 하루하루 야위어 갔다.

어느 늦가을 우리는 별 수 없이 그를 안고 정릉 골짜기로 다시 갔다. 숲에 들어선 우리의 얼굴은 어느덧 붉은 단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말없이 낙엽을 밟으며 산 깊이 올라갔다. 거기에 그를 비로소 놓아 주면서 무거운 감회가 밀려 왔다.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여전한 죄책감이었다.

“잘 가라. 다람쥐야 많이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잠시 어리둥절하던 그는 이내 자신의 고향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천천히 숲속으로 멀어졌다. 화려한 단풍숲과는 어울리지 않은 그 다람쥐의 여위고 초라한 뒷모습이 화살처럼 가슴에 날아들어 박혔다.

그 후 가을만 되면 그 다람쥐가 떠오른다. 자신이 왜 혼자가 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어느 산언저리에서 까칠한 모습으로 낙엽 사이를 헤매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를 원망하며 인간들을 더 멀리하고 살지도 모르겠다.

인간 문명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급급하지만 뒤를 생각하고 사는 것도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문화생활이라는 미명으로 저질러 놓은 탐욕과 죄악의 흔적들은 수많은 다람쥐들을 슬프고 쓸쓸하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일 때가 많다. 특히 창조 세계는 더욱 그렇다. 가을이 깊어지면 항상 다시 새기며 가다듬는 교훈이다.

 

* 박순옥 시인: 수필집 <살아가면서 아는 얼굴들이>, 시집 <어느 날의 쉼터>가 있다. 오랫동안 건강이 연약한 중에도 신앙을 바탕으로 시와 동시와 수필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의 삶의 가치와 따뜻함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