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취할 때와 놓을 때를 아는 지혜 _ 박동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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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할 때와 놓을 때를 아는 지혜

(출 29:29-30)

 

<박동근 목사 | 안양 한길교회>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어 우리의 생은 맡겨진 것이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위해 주신 것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과 말씀을 수종드는 청지기적 원리를 영육간의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한다

 

<본문>
“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이레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출 29:29-30)

 

본문의 “성의”는 ‘그리고 그 거룩한 의복들’(KJV, And the holy garments)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여러 부분으로 겹쳐 있도록 된 제사장 의복 전체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 때 처음 시내 산에서 만들어진 후에 대제사장이 바뀌어 직분을 계승할 때마다 새로운 제사장은 아론에게 입혀졌던 그 성의를 물려받아야 했다. 이렇게 명령받은 이유는 먼저, 시내 산에서 처음 주어진 대제사장 의복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성별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의 가문이 제사장직을 계승하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처음 제작된 거룩한 성의를 이후의 대제사장들이 새롭게 제작하지 않고 물려받게 하셨고, 동일한 의복을 아론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명령하시므로 이 직무가 아론의 계열에 속한 것임을 강조하려 하신 것이다. 이렇게 제사장의 가문을 정하시고, 성의를 물려받도록 정하시므로, 제사장 가문과 제사장의 의복과 제사장직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성별하신 것이다. 실제로 민수기 20:22-29절을 보면, 아론이 죽을 때가 되어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대제사장 직을 넘겨주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 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 산에 오르니라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 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더라

 

본문을 보면, 입을 때가 있고 벗을 때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오늘 성경에서 교회와 성도들과 관련된 경건의 교훈을 전하고 있지만, 성도의 모든 삶이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영원히 남는 것이 있고, 사라지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의 규례는 남지만 사람은 사라졌다.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수종 드는 수단일 뿐이다. 입을 때와 벗을 때를 잘 아는 것이 경건이고 지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규례를 보고 있노라면, 직분도, 은사도, 모든 것이 인간에게 잠시 주어지지만 결코 그 모든 것이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필요에 의해 잠시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을 세우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들을 죄를 속하시고, 그들의 손에 제사장의 직무로 채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입히었던 의복들도 하나님께서 입히셨다. 그러나 때가 되고 기한이 되면, 대제사장도 제사장도 의복과 직무와 그와 관련된 규례들을 내려놓고 떠나가게 된다. 직분은 남지만 사람은 간다. 아론이 나이 들어 임종이 가까워지자 하나님께서 호르 산에 올라 그 의복을 모세의 손으로 벗기게 하셨다. 그리고 엘르아살에게 입히셨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제사장의 규례와 직무는 남고 아론은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 안식하게 되었다. 신앙의 삶, 교회의 사역, 그리고 성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시작하고 수고하고 결산하며 안식하는 삶의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이어져야 함을 느낀다. 성의도 은사도 직무도 그리고 그의 손을 가득 채웠던 성물과 직무들은 대대로 이어졌지만, 아론은 그 모든 것을 놓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의 역할도, 어머니의 역할도, 아내의 역할도, 남편의 역할도 다 이와 같은 이치 안에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생을 떠나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할 때가 주어져 있다. 그 때를 위해 우리는 우리에게 입혀진 성스러운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가족과 이웃을 향한 소명을 다해야 한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며 주어진 삶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이 모든 수고를 위해 입은 옷을 벗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은사라는 것이, 더 넓게 보자면, 하나님께 받아 가진 영적이고 육적인 삶의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인제사장이라고 불리는 성도들이 지상의 삶을 살아갈 때, 깊이 생각해 볼 사안이라 생각한다. 영원한 안식,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의 생명, 우리의 소유, 우리의 재능, 우리들이 가진 관계,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과 영광을 위해 잠시 맡겨진 것이어서 우리의 생이라는 것이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청지기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의 생은 맡겨진 것이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삶이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지상에서 주어진 모든 것들이 일시적으로 맡겨진 것이라는 의식이 또렷해야 한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세워졌지만, 유한한 인간이요, 한 번 죽을 인생으로서 이제 그 연한이 다하여 대제사장의 성의를 다 벗어내야 했다. 청지기로서 일시적인 지상의 의무와 소명을 다한 후, 제사장 위임식 만큼이나 거룩한 의식을 치르는데, 그것이 모세의 손으로 입혔던 성의를 모세의 손으로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목적은 영원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 날까지 지속될 테지만, 제사장 직분을 지탱할 사람은 청지기처럼 잠시 그 직무를 감당하다 사라지곤 한다.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진 뜻과 규례는 영원하지만, 그 뜻과 제도를 받들고 섬기는 사람은 잠시 청지기로서 감당하다가 떠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인생에 적용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리라 본다.

구약의 제사장직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성도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고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변함이 없고 그 뜻이 성취될 때까지 영원하다. 그러나 지상에서 인생은 잠시 청지기적 삶을 살다가 인생을 결산하고 떠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호르 산에서 모세의 손으로 입혔던 성의를 모세의 손으로 벗어낸 후, 눈을 감았던 아론처럼 말이다. 늘 짧고 짧은 잠시의 인생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이 짧은 인생 안에서 생명을 주시고,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우리를 서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우리의 생명의 연한이 다하여 떠나가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부름을 받아 서 있는지 꼭 묻고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론의 성의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맡겨진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벗어놓고, 이생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살아야 한다. 성의는 남겨졌지만, 아론은 죽어 흙이 되었고, 그의 영혼은 성부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을 하게 되었다. 지상의 짧은 삶의 영역이라는 것은 진실로 잠시 맡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어지고 입혀졌을 때, 그 때를 두려움과 감사로 성실하고 조신하게 청지기처럼 살아가야 하고, 또 이생을 떠날 때를 기억해 맡겨진 것, 주어진 것을 다 내려놓고 벗어내고 떠날 때를 의식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모세는 지상 청지기 삶이 다 되었을 때 쯤, 이스라엘의 중보자 직을 내려놓고 느보 산에 올라가 임종을 맞았고, 아론도 호르 산에 올라가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겸손히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했다. 지상의 삶은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취할 때가 있는 동시에 놓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옷을 입고 손에 일을 취하며 인생을 경영하여 영육 간에 결실을 맺지만, 진정 모든 일의 시작과 보존과 성취가 하나님께만 있으며, 그저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막대기 도구 이상이 아님을 겸손히 깨닫고 사는 것이 신앙이다. 내가 사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내가 소유했으나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의도하고 계획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답에 보면 사나 죽으나 성도의 영원한 위로의 내용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우리가 그분의 것, 그분의 소유가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기쁨을 누리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것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섰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살다가 죽어야 구원을 받는다. 그래야 죽음이 엄습할 때,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안 돼, 못가, 어떡하지” 이런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죽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참한 것이다. 그러므로 청지기처럼 하나님께 맡겨진 것을 가지고 사는 인생은 그 모든 생과 행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영되고 지어질 때 영원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아론은 죽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대제사장직은 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영원하였다. 그 때까지 대제사장직을 맡은 인생은 이슬처럼 왔다가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고, “더 큰 목적을 위해 주신 수단”을 전부로 여기고, 나와 소유가 영원할 것이라 믿고, 하나님 아닌 그 어떤 것이 누군가의 전부가 될 때, 그런 자아는 하나님 아닌 자아와 그들을 둘러싼 가시적인 어떤 것들 속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없어 결국 때가 되면 자신의 의지하던 것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절망과 허무를 느끼게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와 일에 중독되고, 술과 쾌락에 중독되고, 수많은 어떤 것에 집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된다. 모든 풍랑 같은 삶의 동요와 붕괴의 중심에는 이와 같은 우상이 자라잡고 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그 어떤 것에 갇히어 참된 삶의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느보 산과 호르 산에서 모든 것을 벗어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했다. 아론에게 대제사장 성의는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기쁨으로 성의를 모세의 손에 의탁해 벗었다.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되 하나님의 명령으로 입고, 그의 기력과 총명과 생기가 남아 있는 순간까지 청지기처럼 손에 직무를 부여잡고 성실히 하나님과 백성들을 섬겼지만, 때를 알아 성의를 벗은 것이다. 즉, 인생은 시작할 때를 알아야 하고, 취하여 진행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내려놓을 때, 곧 벗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구원받는 성도,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는 성도의 삶 속에는 이 세 가지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 그래야 죽음은 안식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고, 이생을 떠나되 홀가분히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수단을 수단으로 알았고, 그 의복의 주인이 하나님이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아 성의를 입고 사용했지만, 그것을 벗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늘날 장로교의 직분 제도도 이와 같은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교회의 통치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그분이 머리시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를 돌보고 양육하며 봉사를 주도하는 것은 직분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청지기고 도구들이다. 그래서 사람이 돌보고 양육하고 봉사하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규례대로 섬긴다. 사람이 목회하고 봉사하나 사람은 성경과 교리와 교회의 질서를 받들고 수종들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라져도 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성 삼위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능력을 통해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당신께서 통치하고 계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말씀 아래서, 하나님과 말씀을 수종 드는 청지기일 뿐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청지기적 원리를 영육 간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고 살아야 한다. 칼빈과 장로교도들이 교회의 직분제도를 인정하면서도, 오직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과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오직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교회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원리 아래서 확신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아론도 이후의 대제사장들도 끊임없이 죽고 교체될 것이지만, 대제사장직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었다. 사람은 유한하고 사라질 존재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정하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늘 성도들은 기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고 믿고 살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