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거위의 꿈
<송동민 집사 | 부천평안교회>
내 힘으로는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없지만
주님이 인도하시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수 년 전, 한 가수가 불러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입니다. “난 꿈이 있었죠”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지금의 현실이 “끝이 정해진 책처럼” 차갑고 냉담하지만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고 날아오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늘을 힘차게 날아갈 수 있는 독수리가 아니라 땅 위를 뒤뚱거리며 걸어야 하는 거위이지만, 그럼에도 이 꿈을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1997년 IMF를 겪은 이후 무척이나 팍팍해졌고, ‘나는 세상을 이기고 날아오르겠다’는 말은 노래 가사에나 나올 법한 불가능한 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기대도 점차 더 희미해지고, 모든 것을 물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사회의 현실이 참 마음 아픕니다.
저 역시 신앙의 부푼 꿈을 안고 세상을 헤쳐 나가려 했지만,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몇 번이고 좌절하면서 점차 용기를 잃고 체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왜 삶이 달라지지 않는지, 왜 어디서도 소망을 찾아볼 수 없는지 계속 고민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욥기에 관한 책을 읽다가, 우연히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7-11)
저에게는 몇 가지 면에서 이 말씀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먼저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말씀이 그랬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속도와 경쟁에 익숙합니다. 누가 더 먼저, 누가 더 빨리 하느냐의 싸움터가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길이 참을” 것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욥의 인내”와 “주께서 주신 결말”이라는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구약의 욥기를 예로 들면서 독자들에게 인내를 권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욥기에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닥쳐왔을까?’ 아무런 설명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고통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울부짖게 됩니다.
우리는 물론 욥이 행복한 결말을 맞은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욥기는 흔히 ‘고난 끝의 축복’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욥의 삶을 그렇게 인도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 줍니다. 곧 회오리바람 가운데서 욥 앞에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때로 이해되지 않는 인생의 고난을 감수하며 오래 참을 수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이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에 부딪히고 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게 될 때, 차가운 세상의 현실 앞에서 한 마리 거위처럼 날아오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 때. 그럼에도 우리가 소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이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농부가 열매 맺힐 때를 기대하고 기다리듯이 너희도 오래 참아라. 너희를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은 지극히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다. 너희는 늘 그분의 손길 안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더더욱 많은 고통과 한계를 느끼고 있는 이 시절. 힘들 때마다 종종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없지만 주님이 인도하시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