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나눔과 비움의 삶, 카딩턴 이야기 _ 전한결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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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눔과 비움의 삶, 카딩턴 이야기

 

<전한결 학생 | 중1 | 목포장로교회>

 

네가 가지고 있거든 오늘, 지금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라. 내일은 늦는다.

 

거지 대장 닥터 카딩턴
<이기섭 지음 | 좋은 씨앗 | 2019>

 

닥터 허버트 카딩턴은 1920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카딩턴은 키도 크고, 잘생긴 데다가 독서를 좋아해 아주 똑똑한 청년이었다. 카딩턴은 의대로 진학하기 위해 노스 캐롤라이나 주 데이비슨 대학에서 프리메드 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지만 결국 미국 동부 코넬 대학교 의대로 진학하고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한후에는 군 복무를 마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에 있는 투어미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허버트는 이때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어느 날도 어느 때와 같이 성경을 읽던 중, 야고보서 4장 7절 말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라는 말씀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의 마음을 강타한 말씀, “선을 행하기” 위해 그가 결심한 것은, 의료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카딩턴의 마음이 더욱더 확고해 지는 와중에 미스 메리 리틀 페이지 랭거스터를 만나 1949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결혼을 하자마자 미국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한국 전쟁을 겪었다. 한국 전쟁을 겪은 뒤, 1951년 일제강점기 때 폐쇄되었던 광주 제중 병원을 재개원 하여 제 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때 시절에는 결핵 환자가 특히나 많아서 닥터 카딩턴은 결핵환자들에게 기적의 약, 항결핵약 이소니아지느와 파스를 미국에서 들여왔다.

닥터 카딩턴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사르지 않고, 직접 자기 피까지 뽑아서 환자를 살리기도 했다. 광주 제중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왔다. 환자들은 복도 끝까지 가득 차 순번을 기다렸지만 카딩턴은 힘든 내색 없이 모든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카딩턴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면 계란과, 생선을 사 먹으라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환자들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전도도 잊지 않았다.

카딩턴은 진료실 벽에 한글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를 크게 써서 붙여 놓았고, 혹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도 해 주었다.

카딩턴은 아마 이 참혹한 현장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것이다. 자기 아이를 버리는 비정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그 아이를 자기의 아이로 삼은 사람도 있었고, 친구를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죄악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넘쳤다.

카딩턴은 선교지에서 평생 지키고 살아갈 원칙들을 마음에 새겼다. “네가 가지고 있거든 오늘, 지금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라. ‘내일, 혹은 ‘다음에 말하지 말라. 그러면 늦는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말라. 열 명이 거짓말을 해도 그중에는 진실로 그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이 한 명은 있다.”, “이 세상 재물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쓰면 주님이 채워 주신다.”

카딩턴은 전쟁터 가운데 있는 환자들의 의사이고, 목자 잃은 양같이 헤메는 사람들의 작은 목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은 큰 목자이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카딩턴이 아침 예배를 마치고 병원으로 들어오면, 아픈 거지들이 그의 뒤를 쫓아 병원으로 들어갔다. 거지들은 달고 앞장서 가는 그는 누가 봐도 거지 대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낄 줄 모르고 퍼 주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인 줄 안다’고 생각했다.

카딩턴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말을 먼저 걸고 친절하게 지냈다. 닥터 카딩턴은 25년 동안 익숙지 않고 낯선 나라에서 의료봉사와 선교사 역할을 누구보다 멋지게 해냈다. 그는 아픈 한국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결핵환자들을 치료하고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1974년에는 더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로 자리를 옮겨 1999년까지 헌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는 스물아홉 살부터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한국과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옆에 머물렀다. 그동안 여섯 명 중 두 자녀를 잃었고, 아내는 병이 들었으며, 자신은 암에 걸렸지만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놓지 않고 선교 사역을 마쳤다. 닥터 카딩턴은 선교편지 이외에는 자신을 위한 어떤 기록, 재산, 기념물이나 심지어는 어느 단체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의료나 구제를 선교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에게 나눠 주며, 베풀며 살았다.

이 책을 읽고 카딩턴과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커서 의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나의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닥터 카딩턴이 말했던 말,

“네가 가지고 있거든 오늘, 지금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라. ‘내일, 혹은 ‘다음에라고 말하지 말라. 그러면 늦는다.”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베풀고 나누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생각 하나,

이 분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이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생각 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