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동체적 연대로 희망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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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동체적 연대로 희망을 말하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의 행정적 권고에 타종교의 일체적 신속 대응이 호평을 받음과 비교하며 한국교회의 무력함을 과격히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일면 타당하기는 하나 그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교단마다 정치체계가 다른 한국교회의 엄연한 실정이다. 따라서 당장 하나의 통조직으로서 일사불란함과 기민함을 작동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번 일로 위기관리의 신학적, 논리적, 실천적 매뉴얼 제작을 위한 공동체적 연대의 중요성을 분명히 절감하고 있다.

큰 틀에서 어느 정도 한교총 등의 교단연합체와 각 교단 별로 비교적 시의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은 후일에도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대체로 총론이었고 각론의 내부를 보면 각자도생의 흔적을 부인할 수 없다. 속수무책과 고립무원의 비애를 느낀 교회들이 부지기수이다. 한국교회가 받은 충격과 혼돈은 교단을 불문하고 대형, 중소형, 도시, 농어촌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국가 비상시에 운신의 기준이 되는 매뉴얼을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해 두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금씩 입장 차가 있겠지만 국민의 안위가 달린 비상 상황에서는 정부에 협조할 사안은 최대한 협조하면서 차후의 선교적 양상까지도 감안하고 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단 연합적으로 무난히 잘 대처했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신앙의 자유와 결부하여 정부의 조치들에 쉽게 순응해서는 안 된다며 행정적 권고들을 교회 탄압의 성격으로 규정지으려는 의견도 상존한다.

물론 이런 의심을 살 만한 언사나 행정 집행을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해서는 안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태도보다는 큰 그림에서 협조하고 세부적인 데서 대화로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만일 정부의 의도가 실제로 교회 탄압에 있었다고 판명이 난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으나 애초부터 그런 의심을 품고 정부를 불신하며 협조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고 할 거라는 불안감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신사참배 같은 신앙적 신학적 기초를 흔드는 간섭과 강압이 아닌 교인들과 전 국민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일정 기간의 절제와 유예를 요청한 것이다. 이에 반응하는 것을 교회의 존폐와 결부된 절망스러운 치욕이나 굴종이라고 보긴 힘들다.

다만 정부는 교회에만 유독 까다로운 조건들을 많이 제시하고 마치 교회가 골칫거리라는 식의 여론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몇몇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였고 이미 신천지에 크게 놀란 정부와 국민들의 신경과민은 이해하지만 교회를 신천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정부도 갑작스러운 이번 사태에 당황하고 대응하는 여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보였잖은가? 한국 교회도 전례 없는 비상사태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다. 준비된 매뉴얼도 없는 미증유의 사태를 만나 급히 대응책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몸에 배인 주일 예배 습관이 있어서 더 힘들다. 아울러 신천지와 비교되며 한 통속으로 엮일지도 모른다는 초조감도 동반된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것이다.

이러할 때 정부 관련 부처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이런 교회의 난감한 입장을 잘 설득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수도권의 몇몇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에 대해 한교총(UCCK)과 교회협의회(NCCK)가 공동으로 3월 19일에 발표한 담화문이 적절했다고 본다.

담화문은 “몇몇 교회에서 교인과 지역 주민 안전을 해치며,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손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방역 당국과 국민 앞에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코로나19 확산 상황은 개별교회가 아닌 국민의 문제”라며 “교회 집단 감염은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므로 모든 교회는 책임 있게 행동해 집단감염이 재발하지 않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에 대해서도 “법적 권한을 사용할 때 강제적 명령 대신 대화와 협력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시급함을 이유로 교회에 대해 오로지 법적, 행정적 집행으로만 강압적으로 몰아치면 오히려 역반응을 초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행령에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탄압 논란이 불식된다.

코로나19 사태는 진행 중이지만 차제에 한국교회는 공동체적 연대의 기능적 실효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번 경험을 근거로 교계와 교단 그리고 각 노회와 교회별로 동참하여 생각들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합신 총회신학연구위원회의 두 번(2.28, 3.12)에 걸친 긴급 제안은 유익하고 적실성이 있었다.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이후로도 사안별로 긴밀히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주기를 요청한다.

어렵고도 어려운 시기이다. 국가 비상 상황이요 한국교회의 고통의 시절이니 더 그렇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어 봄꽃이 피어났듯이 코로나19 사태도 반드시 극복되고 이 땅에 밝은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절망보다 희망을 말했으면 한다. 이 위기를 오히려 구체적 논의를 통해 한국교회의 제반 사안들을 신학적으로 재정립하고 비상시 공동체적 연대를 통한 대응 방안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