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만 23년의 교회당 건축을 마치며 _ 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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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만 23년의 교회당 건축을 마치며

 

<박종훈 목사 | 궁산교회>

 

은혜와 신앙의 내적 성숙 체험한 건축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교회당 되길

 

1996년부터 시작된 교회당 건축이 이제 공식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토 흙으로 벽을 쌓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흙을 이기며 도와주셨던 아버님도 소천하셨고, ‘집 짓기는 밥 짓기’라는 말이 있듯이 장애를 가지고도 열심히 인부들 식사를 담당했던 아내도 먼저 하나님 품에 안겼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두 번이나 변화되는 시간에 걸쳐 이제야 마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시간이 될 줄은 몰랐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이 필자도 예상치 못한 장기적 건축을 하게 한 것 같다. 1993년도에 성남에서 살다가 빈 집을 구해서 내려와서 사실상 개척을 하게 되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아내를 위해서 오자마자 옛날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며 외양간으로 쓰던 작은 창고를 개조하여 우선 임시 예배당으로 시작된 건축일 이 이제야 마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건축을 한 것이라면 만 26년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건축만을 위한 사역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사역을 하면서 하다 보니 목회 활동 외에는 거의 건축 일에 매달려야 했었다. 무엇보다 세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는 아내로서는 모든 구조가 불편했기에 하루빨리 편리한 구조로 된 사택과 교회당이 필요했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처음부터 장기 목회를 계획했던 필자로서는 더 이상 미룰 형편이 안 되었다. 기초할 비용만 준비되면 시작하기로 하고 기도 중 1996년에 농어촌주택자금을 대출받아 과감히 사택을 건축하는 공사를 시작했었다.

사택을 먼저 시공한 것은 우선 목회자 가정이 안정되어야 하겠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은 교회당이 더 중요하기에 긴 호흡이 필요했고 사택을 공사하면서 전문 기술자들의 기술을 눈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도 잘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사택을 먼저 지은 일이다.

사택은 봄에 시작하여 그 해 가을에 마치고 입주하면서 사택 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여 입당한 것은 4년이 되어서 가능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무엇보다 건축 자금이 부족해서 장기적으로 갈 수 박에 없었다. 개척 초기이고 시골의 형편에서는 무리하게 할 수가 없었으며 또 인간적 쉬운 방법은 멀리하였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주님이 책임져주시라는 믿음으로 도시 교회나 성도들에게 기도 요청은 했지만, 직접적인 도움은 구하지 않았었다. 지금까지도 어느 한 교회의 전폭적인 후원이나 개인적으로 큰 액수의 건축헌금은 없었다. 그야말로 개미군단식 헌금으로 하다 보니 오랜 나날이 걸린 것이다.

적게는 수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의 건축헌금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신자들에 의해 기부되어 이루어져 값진 건축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가 막히게 적당히 때마다 채워주시는 물질적 체험을 수없이 경험하며 내적 신앙도 성숙하는 과정이었다. 건축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최대한 건축비가 적게 드는 방법의 하나로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인 황토 흙과 나무, 돌을 사용하는 엣 전통방식을 활용했다.

당시에는 더딘 작업이지만 지금 와서는 우리 정서와 맞고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 잘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몸이 불편한 아내가 일꾼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수고하기는 너무 어려운 형편이었다. 필자 혼자서 하는 건축은 평상시 식사하는 대로 하므로 오랜 시간이 걸려도 큰 부담이 없었다. 이 역시도 사택이 먼저 안정된 상태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건축비용이 생기면 공사를 진행했고 없으면 멈추기도 했지만 공사의 특성에 따라 때로는 외상으로 자재를 구입하고 나중에 갚는 식으로도 했었다.

그리고 또 오랜 기간 동안 공사를 하게 된 근본 이유는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당 입당하기까지는 전문가들의 손을 빌렸고 벽돌 쌓는 일이나 미장은 이웃 교회 집사님을 고정 인부로 도움을 받았었다. 그 분도 지금은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이다. 처음부터 냉, 난방 부분을 소홀히 하는 미숙함에 건물 관리 유지비가 갈수록 늘어가는 처지에서 최대한 유지비가 적게 들어가려면 냉, 난방 부분에서의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미진한 부대시설을 하나씩 지으며 친환경 재료인 나무 루바로 단열과 마감재를 하다 보니 이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비용이 생기면 작업을 했고 비용이 떨어지면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목회자의 본질적인 일에 치중했다. 그리고 교회당에 필요한 여러 성구 들인 강대상과 의자와 헌금함을 비롯하여 여러 기구들은 통나무로 직접 제작하면서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교회 비품을 갖추었다. 그 외 비품들도 옛 전통 가구와 중고 악기와 의자를 사용하면서도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며 교회당 모습을 채워 왔다.

준 이층의 작은 도서실과 다락방은 수십 년이 지난 목재를 재활용하여 골격을 사용했고, 나무의 자람을 고스란히 담은 나이테가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자연미를 살렸다.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면서 구하려고 하면 우리 형편에 얻을 수 없는 재료를 희한한 방법으로 구입하였다. 아니 주님이 미리 예비하고 준비했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건축을 오래 하다 보니 위험과 사고도 몇 번이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보호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교회당 상판을 공사할 때 펌프카로 믹서된 콘크리트를 넣다가 펌프카 지지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고 긴 봉을 뻗힌 채 넘어지기 시작했었다. 다행히 도로가에 심어진 은행나무 가지로 걸치는 바람에 완전 전복은 막을 수 있었다. 당연히 공사는 중단되었고 길게 늘어선 레미콘 차는 길가에 대기하며 온 동네를 놀라게 하였다. 가까운 인근 도시에서 백 톤 중량과 오십 톤의 중량을 가진 크레인이 도착해서 넘어진 장비를 세우며 겨우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종탑 바닥을 할 때는 펌프카 봉이 또 터지는 바람에 공사가 몇 시간이나 중단되었다. 또 공사 중에 강도사 인허식으로 필자가 비운 사이에 술을 먹고 일하던 목수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팔목 골절되는 사고도 났었다. 더 위험했던 순간은 인부들을 시켜서 보조 자재를 철거하는 중에 시멘트를 받쳐주는 가설재를 철거하면서 지붕에서 땅으로 내릴 때 0.5초만 빨랐으면 필자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을 뻔했었다.

이런저런 사고와 위험 속에 무사히 공사를 다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음을 인정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를 묵상하니 방주 건축 자체가 전도이고 기도이며 훈련이고 충성과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외롭고 고독했지만 하나씩 지어져가는 성취감에 낙심하지 않고 마침내 구원의 방주를 완성했으리라 추측된다.

이제 새롭게 지어질 건축물은 없겠지만 믿음의 건축은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계속 건축해야 할 건물이다. 외적 건물을 짓는 재료는 같은 재료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다양하고 품질 좋은 새로운 재료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적 건축 재료는 언제나 변함없는 고전 재료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재료이기도 하다. 이제 기도하고 바라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교회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총회유지재단에 이 교회당과 사택 건물을 출연하고 가입하려 한다. 그리고 좀 더 창조된 본래 인간으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본질을 추구하며 새로운 내일을 위해 기대감을 가지고 한 걸음씩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