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사모로 산다는 것은 _ 윤순로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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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뜨락

 

사모로 산다는 것은

 

<윤순로 사모 | 예사랑교회>

 

사모라는 귀한 사명을 주셔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사모로 산다는 것은 나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였다. 자유분방하며 독신주의자였던 나에게는 놀라운 삶이었다.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것도 어색한데 남편과 결혼하는 동시에 사모라는 호칭이 나를 따라 다녔다. 초신자를 겨우 벗어난 나는 사모라는 호칭 속에 갇혀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 부교역자의 아내로는 그래도 그저 교회 안에서 조용히만 지내면 별 탈이 없었다. 그러나 단독목회를 하면서 부딪치는 일들로 인해 온갖 고통과 시험이 나를 아프게 하였다.

34세에 이곳 천안에서 시작된 목회를 지금까지 한 교회에서 31년째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한 곳은 18평의 초라한 건물의 예배당과 그 뒤에 지어진 단칸방의 무허가 사택이었다. 삼십 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듦이었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는 처지였다.

22세에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기쁘고 좋았다. 그리고 신앙의 가정이 너무 좋아 보여서 독신주의가 아닌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주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종을 배우자로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당시 신학생인 남편과 성가대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마음이 끌리고 사랑하였지만, 사모의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저 어떤 어려움도 둘이서 잘 헤쳐 나가면 되겠지 하는 맘으로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했지만, 아직도 나의 속은 너무나 이기적이며 독선적이었다. 교사로서 교만함도 가득하였고 누구에게든지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또한 나는 열정적인 반면에 남편은 조용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남자였다. 너무나 상반된 성격으로 결혼 전에는 그것이 매력이었지만 살면서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도 열심을 내어 전도하여 한 명 두 명 오는 성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초신자인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아이 돌보기와 교회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였다. 끝없는 뒤치다꺼리로 나의 자존감은 땅바닥에 던져졌고, 반복되면서 몸과 맘이 지쳐갔다. 물론 이것도 기쁨으로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나의 신앙 수준은 그것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작은 예배당에 30여 명이 되니 가득 차서 새로운 곳을 꿈꾸며 기도하였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한 동의 아파트 단지 안에 상가인 데 30평씩 이층 삼층을 얻어 새로운 맘으로 또 열심을 내었다.

40대를 이곳에서 지내면서 많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 연세 드신 분들은 멀다고 오시지 않고, 이사하시는 분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나가셨다. 새로 개척한다는 맘을 갖고 또 다시 열심을 내어 전도하고 가르치면서 아파트의 젊은 새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일대일 전도로 나왔는데 모든 면에 돌봄이 필요한 어린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를 힘썼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은 성숙해서 그런대로 감당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5년, 10년이 흘러도 성도들은 잘 자라지 않았고 우리 가정경제는 너무나 어려우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 둘 다 고등학생인데 기본적인 생활비도 되지 않으니 점점 숨통이 조여 오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 들을 보냈다. 기간제 교사를 하려고 해도 남편이 반대해서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이런 형편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사례비는 적은 금액을 책정하더라도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선교비는 교회 형편에 비해 넉넉히 보내는 것에 화가 났고 남편이 너무 미웠다. 성도들은 어려서 그렇다 해도 남편마저 우리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고 사모의 자리가 내겐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나의 부모님, 형제 아무도 믿지 않기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고, 또한 나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기댈 곳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다. 혼자서 밤마다 교회 방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러면서도 매일 열심히 전도하고 또 전도하였다. 40대까지 깨어지고 또 부서지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있는 사모 세미나를 통해서 은혜를 참 많이 받았다. 나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세미나를 통해서 사모님들과 소통하였고 목사님들 말씀으로 힘을 얻었다. 다시 힘을 얻어 교회와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교회에서 교육비가 나오지 않아 아이들 대학교육 때문에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의 20년 만에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를 10년 정도 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을 빚이 없이 마칠 수 있었고, 교회 건축할 때 하나님께 힘껏 드릴 수가 있어서 감사했다.

50대 중반에 교회당 건축을 하면서 참 많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여유 있는 가운데 지으면 덜 어렵겠지만 없는 재정을 맞춰 가면서 하느라 9개월 동안 정말 많이 울면서 기도했다. 몸이 지친 상태에서도 학교에 계속 근무하면서 가정, 교회, 학교에 신경을 쓰느라 몸이 점점 쇠약하여 졌다.

그러다가 건축 후 2년쯤 지날 무렵이었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밤에 자다가 가슴과 배의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그동안 스트레스와 과로로 위와 간의 기능이 약하여 모든 음식을 먹으면 통증이 끊이지 않아 병원에 3주 입원하였다. 병원에서도 내내 통증에 시달려서 진통제로 다스렸다. 먹지도 못하면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계속 아프니 나는 차라리 하늘나라로 불러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보게 하시고 회개케 하셨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너무나 부끄러웠고 사모라는 자리에 서기에 참으로 부족한 종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서 살기보다 나의 열심과 노력이 앞서서 고통도 겪고 낙심과 좌절을 수도 없이 겪었다. 병원에서 차도가 없고 진통제에만 의지하여 퇴원을 원하니 의사가 허락하지 않아 고집을 피워 나왔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고 싶었다. 집에 와서 일체의 약을 끊고 음식과 걷기를 꾸준히 하면서 서서히 나아지게 되었다.

이제 6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때때로 통증이 일어나 음식을 조절하고 여전히 걸으면서 다스려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마음은 평안하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된다. 요즘 기도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참 많이 참으셨구나 하는 생각이다. 자격 미달인 내가 사모라는 자리에 겁도 없이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며 살아갔는데 주님은 나를 꼭 붙들고 계셨다.

주님께서 나를 한없이 참으신 것처럼 성도들을 사랑하며 오래 참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힘들다고 투정할 때도 함께하셨고 혼자라고 외로워할 때도 곁에 계셨다. 늘 함께하셨는데 나의 믿음 수준이 어린아이 같아서 깨닫지 못했다.

사모이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꾸준히 하고 모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것이 이제야 복임을 깨닫는다. 이런 오랜 습관이 나의 삶을 지배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나를 변화시킨 것은 사모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 것을 새삼 느껴본다.

벗어날 수 없기에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주님 앞에서 씨름했던 수많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남편과의 갈등, 자녀들의 문제, 성도들로 인한 아픔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주님께 통곡하면서 부르짖을 때 나의 마음을 만져주시곤 했다.

이제 나에게는 사모의 자리가 너무 과분하고 귀하다. 남편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같이 삼십 팔 년간 동고동락할 수 있도록 삶을 허락하신 주님께 무한 감사하다.

나같이 미천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이 너무 좋다. 말씀 앞에서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 좋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 시간이 참 좋다.

하루하루 주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다가 주님이 오라 하시면 주님을 만나고 싶은 심정이다. 사모라는 귀한 사명을 주셔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사모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