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칼럼| 하루 또 하루 _ 정창균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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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총장

신년칼럼

 

하루 또 하루

 

<정창균 총장 | 합신, 남포교회 협동목사>

 

새해 첫날도 어제의 그 태양이고, 작년 그 시간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생전 처음 보는 태양인 것처럼, 마치 처음 경험하는 새 세상인 것처럼 새로운 기대와 결심으로 또 하나의 기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다만 우리 하나님의 은혜 일 뿐입니다. 사실, 시간의 흐름 속에 간간이 매듭을 두셔서 하는 만큼 하고 돌아서서 마무리를 하고, 사는 만큼 살고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도, 지나 온 삶들이 의미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10여 년 전, 빈둥빈둥 살아온 세월이 하도 허통하고 하나님께 죄송해서 여러 달 눈물로 회개하며 지낼 즈음이었습니다. 유학중인 딸네 집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사야 43:18-19의 말씀이었습니다. 과거를 망각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행하려 하시는 새 일을 기대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에서 하나님이 펼치실 새 일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사실을 전제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며 이런저런 소망과 기대와 결단을 품는 근거는 시간이 바뀌어 새해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고 나타내신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러므로 새 일은 막연한 소망 사항도 아니고, 혹시 하고 바라는 요행수도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자동적인 산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를 절대적인 신뢰로 붙잡는 자의 자신감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신자들에게는 한 해 또 한 해가 아니라, 하루 또 하루가 날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은혜이고 소망입니다. 하루 또 하루를 마치 새해의 그 심정과 그 기대, 그리고 그 결심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바대로 하루 또 하루를 묵묵히 그리고 담대히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답게 살고자 한다면,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대로,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긴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 국민으로서 새해를 시작하며 품어 보는 가장 크고 절박한 소원이 있습니다. 정치현실이 좀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지난 몇 해는 이 나라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립으로 말미암은 괴로움과 분노가 넘쳐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괴로움과 분노는 단순히 개인 사이에서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강하게 표출 되었습니다. 특히 지난 한 해는 “초갈등사회”라는 신조어 하나로 요약이 될 정도로 갈등과 대립이 온 나라를 뒤덮다시피 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거의 모든 국민이 패가 갈려 고통 하는 한 해를 살아야 했습니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금방 죽여 없애기라고 할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와 천박한 말들을 쏟아내며 사람들이 패를 갈라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이제는 대립과 갈등과 분노가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갈등이 조장되는 근원은 늘 정치판의 사람들입니다. 정치는 게임을 하듯이 해야지 전쟁을 하듯이 하면 안 됩니다. 보는 국민이 불안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민주사회에서 정치가는 전쟁터의 투사가 아니라, 토론장의 세련되고 멋진 설득가여야 합니다. 논리를 따라 조근 조근 말할 수 있고, 증거를 놓고 명료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리를 더 크게 질러서 말하고, 사나운 막말로 압도하고, 무조건 억지를 써서 우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이고, 그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유일한 방편이라면 그것은 불쌍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정치판의 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목사요 장로요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품위가 있고, 교양수준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목사나 장로나 성도들은 처신을 결정짓는 최종의 기준이 잇속도, 진영도, 여론도 아니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성도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역정을 내며 매우 특이하게 설명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게 심판을 받을 것인데, 너희가 지극히 작은 사건 하나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냐?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하물며 이 세상일들은 어떻겠느냐?”(고전 6:2,3). 우리는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이고, 심지어 천사들을 심판할 자들로 불림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시며,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야만 하고,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성도 곧 신앙인입니다. 상황의 호불호에 상관없이 그 믿음을 몸짓으로 선포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동하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특히 성도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라면, 자신의 정치성향이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의를 내세워 처신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우리 편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 외의 모든 세상도 심지어 천사들도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심판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새해에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좀 더 사람다워지고 나아가 좀 더 세련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어 봅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목사와 신자들이 더 목사다워지고, 더 신자다워지고, 그리하여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면 좋겠다는 소원을 품어 봅니다. 그것이 하루 또 하루 이어져서 2020년 일 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