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_ 정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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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정요석 목사 | 세움교회>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크게 누려야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전문>

 

여러분들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말했던 때와 대상이 있을 것입니다. 중고생 무렵 갑자기 다가오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럴 즈음에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도 이해하게 됩니다. 삶의 일상사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우리에겐 많고, 이것들이 우리에게 지혜와 분별을 줍니다.

사람마다 기호와 가치관이 틀립니다. 그 다양함을 인해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닫는 내용도 시점도 다를 것입니다. 누구는 돈과 권력의 중요함을, 누구는 예술의 기쁨을, 누구는 운동과 건강의 중요성을 먼저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함도 나이에 따른 일반적인 인식 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시행착오를 줄이며 본질적인 것을 일찍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야 합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욥 5:9-10)

욥기 5장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과 기이한 일로 비와 물이 밭에 보내지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를 평범한 일로 여깁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른 아침 들에 나가면 만나가 내리니 얼마나 신비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신비감은 만나만 계속해서 먹자 투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미련하고 강퍅합니다. 호의가 두 번 반복되면 권리로 아는 것이 사람이고, 햇빛과 공기와 물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공짜로 주어졌건만 그 가치를 모릅니다.

광야 40년 동안에 태어난 아이들은 만나를 “자연”과 “일상”으로 여깁니다. 태어날 때부터 만나가 있었기 때문에 큰일과 기이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자연과 일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큰일이고 기이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나는 하룻밤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작물은 몇 달에 걸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작물 재배를 위해 노동한다고 하여 결코 농사를 농부가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농사를 짓는 능력을 주시며 하나님의 일에 참여시키십니다. 사람이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능력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로서 모든 것을 좋게 만드시고, 섭리자로서 지금도 만물을 붙드시고 통치하시고 인격적 존재들과 협력하십니다. 이것들을 이해하고 음미하고 추구하는 능력을 사람에게 지정의(知情意) 형태로 주셨습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화려하게 하는 일이 있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임을 겸손히 인정하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것들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감탄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음악과 미술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지 모르고, 모든 것을 의심하고 정리하는 철학의 장악력 또한 큽니다. 순간의 감정까지도 포착하여 묘사하는 문학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것들 외에도 세상에는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보니 세상 사람들은 세상 재미에 빠져 그리스도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을 해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안 이후로 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선이 얼마나 귀한가를 바울처럼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크게 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