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합신이 서야 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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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합신이 서야 할 자리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역시 다사다난했던 세월이었다. 유독 사회적 정치적 논란의 소용돌이가 컸고 한국교회 역시 몸살을 앓았다. 이런 몸살이야 이미 이력이 붙었지만 문제는 관점을 달리하는 논리가 한국교회 내에서도 과열을 빚어 자칫 심각한 분열을 야기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극심했던 점이라 하겠다.

이런 형편에서 합신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출발점과 목표점을 동시에 분명히 하며 내적 갱신과 연합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감사한 것은 합신을 향한 주변의 신뢰가 그래도 아직 축소되지 않았고 104회기 총회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방향점으로 기대감을 준다는 점이다. 104회기 문수석 총회장은 취임사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낮아져서 섬기고 말씀에 복종하며 희생하고 영혼을 살리며 화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본에 충실한 교단이 되자고 했다. 여기에 합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 골자가 잘 담겨 있다.

첫째,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우리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의 출발점은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개혁주의 사상이다. 이를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교단이 시작되었고 신학적으로는 말씀에 복종하는 보수적인 기초에 서 있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진정한 보수란 개혁주의에 충실한 것이다. 패권주의, 권위주의와 교단 정치의 폐해를 개혁하고자 했던 초심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요체이다. 우리만이 순수하며 바르다는 교만한 자세는 단연코 버리되, 겸손을 이유로 우리의 기초마저 역으로 무시하는 정체성의 와해는 늘 조심해야 한다. 이는 당연히 진보든 보수든 사회정치적 외부 세력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워야 함을 뜻한다. 자기 분열적 요소들을 멀리하고 서로 화목하도록 애쓰는 교단이 되도록 신중히 처신하며 정체성의 기본 위에 서야 한다.

둘째, 우리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이는 꼭 유형의 단체 활동만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니다. 교회가 사회의 연약한 부분들을 위해 봉사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드는 ‘세력’이 아니라 최소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섬기는 활동을 개인적으로든 교회적으로든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아이들’이라는 아이슬란드 영화가 있다. 주인공 노인은 노인이 존대 받지 못하는 사회를 안쓰러워하며 쓸쓸한 생의 마지막을 맞기 위해 옛 고향 바다를 찾아간다. 해변 길목에 불 켜진 교회당이 있다. 아름다운 찬송이 울려나온다. 노인은 그 교회당을 보란 듯이 지나쳐 버린다. 슬프게도 교회마저도 그에게는 도움이 못 된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그 ‘슬픈‘ 찬송을 배경 삼아 노인은 바다 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한 노인의 마지막을 붙잡지 못한 교회의 모습이 처연하다. 단순히 감독의 안티 기독교 의식으로 몰아세우기에는 그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도 잘 해 왔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회적 연약점을 돌아보고 더 섬겨야 한다.

셋째, 개척교회를 위한 대책과 협조 방향을 세워야 한다. 힘든 시대라도 합신은 부단히 개척하는 교단이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개혁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우리 교단만의 개척교회 매뉴얼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미국 URCNA(북미개혁교단연합) 선교위원회가 편찬한 ‘북미개혁교단의 교회개척 매뉴얼’은 도르트 신경,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등을 표준으로 삼은 핸드북 개념의 매뉴얼이다. 이는 건전한 개혁교회의 개척 과정과 필수불가결한 신앙적 내용들을 정리해서 제공한다. 우리도 이런 류의 구체적 개척 프로세스와 개혁사상을 기초로 예배와 직분을 포함한 교회 활동의 필수적 요소들을 제대로 안내하는 핸드북이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하려면 개척 단계부터 제자리를 잡아 나가게 도움을 줘야 한다. 헌법 책에도 있고 신학교에서 이미 배운 내용들이 포함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개척 과정의 행정적 절차나 여러 실제 사항들에 대한 안내를 첨부하면 개척 당사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 교단적인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입학 지원자가 대폭 줄어든 상황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현상이다. 따라서 학교와 운영이사회와 총동문회, 교단과 개교회가 한 마음으로 실제적 대책을 강구하며 원인을 다각도로 진단하고 상호 협조하여 때로는 특단의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학교가 든든히 서야 하는 문제는 교단의 존립과도 밀착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언급됐지만 아직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마저 보인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뜻을 모아 현실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전국 교회에 지원자들을 보내 달라 읍소하는 정도의 요청으로는 온전한 해결이 될 수 없다. 이는 사실 교단 내 다음 세대 교육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교육과정에서 인재들을 양육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일꾼이 되기까지 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연구 실행해야 한다. 교육부, 지도부 등과 연계하여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합신이 개혁교단의 기본에 든든히 다시 서서 한국교회의 신뢰를 받으며 교회적, 사회적으로 건전한 표상으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