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교회 내에서 합신 교단의 위치 _ 박형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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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교회 내에서 합신 교단의 위치

 

<박형용 박사 | 합신, 명예교수>

 

신학교는 교회를 위하고

교회는 신학교를 위해야

 

한국에 크고 작은 수 백 개의 교단이 있다. 장로교만 100여 개가 넘는다. 그 수많은 교단 중에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교단은 숫자적으로 하나의 교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적인 소망과 외적인 기대는 교회 숫자와 상관관계에 있지 않다. 우리는 합신 교단이 합동이나 고신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한다. 합신 밖에서 합신에 거는 기대는 합신 교단이 숫자적으로 작은 교단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교단으로 생각하고 다른 장로 교단들에게 본이 되는 교단으로 자라는 것이다. 합신 교단은 비록 작은 교단이요 짧은 역사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성장했다.

합신 교단이 현재의 위상을 지킬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합신 교단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세 가지 모토를 가지고 시작했다. 바른 신학이란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는 개혁주의 신학을 뜻한다. 바른 신학은 “하나님을 바로 경배하는 신학”(God-honoring Theology)이라는 뜻이다. 바른 신학이란 모토는 우리가 바르다고 주장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우리의 신학을 바르다고 인정해 줘야 성취되는 것이다. 바른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모든 생각과 결정과 행동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교회를 뜻한다. 바른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Christ-centered Church)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른 교회 또한 우리가 주장으로가 아니라, 타인이 바른 교회임이 틀림없다고 인정해 줄 때 성취된다. 바른 생활이란 성경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뜻한다. 바른 생활은 “성령이 충만한 삶”(Spirit-filled Life)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른 생활이란 모토 역시 우리가 바른 생활한다고 주장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우리가 바른 생활을 한다고 인정할 때 성취된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40년 전 합신 교단이 설립될 때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도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0년 동안 합신 교단은 상대적으로 생각할 때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실천해 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합신 교단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합신 교단의 위상은 바른 신학적 전통을 지켜 온 데서 기인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합신 교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합신 교단의 현재의 위상은 수에 있지 아니하고 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들의 겸손이 요구되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합신 교단이나 다른 장로교단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고 말 할 것이다. 얼핏 보면 그렇게도 보일 수 있다. 물론 합신 교단 안에도 고칠 것이 많이 있다. 개혁되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합신 교단 내에는 다른 교단에 없는 것이 많이 있다. 항상 총회 때만 되면 마음을 슬프게 하는 여러 교단의 비정상적인 총회장 선거가 합신 교단에는 없다. 어떤 교단은 총회장 선거와 돈과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 고육책으로 신약 교회의 제도로 인정 할 수 없는 제비뽑기를 활용할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적어도 합신 교단은 이런 잘못된 관행은 없다. 그리고 합신 교단에는 악성 교회 정치가 없다. 합신 교단에 속한 노회들이나 총회에서 패거리 정치나 지방색 정치가 아직은 없다고 생각된다. 합신 교단의 이런 관행들이 합신 교단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합신 교단의 위상이 더 높아지려면 교단 행정의 투명성과 민주성 그리고 협동성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합신 교단의 현재의 위상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위상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합신 교단의 명칭만 해도 “개혁”에서 “합신”으로 바꾼 것은 합동신학대학원의 위상이 한국교회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내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현재 합동신학대학원이 이루어 놓은 발전을 이룬 신학교는 없다. 합동신학대학원은 1980년 11월 11일 연약하게 출발했다. 오로지 합동신학대학원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성실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침묵정진했다. 하나님은 많은 좋은 성도들의 기도와 지원에 힘입어 현재의 합동신학대학원을 이루셨다.

합동신학대학원의 발전은 합신 교단의 헌신으로 가능했고, 합신 교단의 위상은 합동신학대학원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는 합신 교단의 미래도 합동신학대학원의 미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합신 교단은 합동신학대학원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교회는 건실한 신학교가 있을 때 그 위상의 제고와 발전을 할 수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교단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비록 큰 그룹은 아니지만 손에 손을 잡고 다른 교회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며 존경받고 인정받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