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등에 조력 말고 화평에 기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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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갈등에 조력 말고 화평에 기여해야

 

지난 10월 30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개신교인 1000명과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19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 조사를 했다.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인 79.5%가 반대했다.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10월 3일 한국교회 기도의 날에 우리 교단은 총회에서 정치색을 배제한다는 조건부로 어렵사리 참여를 결의해 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당일 시간차를 두고 열린 한기총 전광훈 씨 주도의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의 광화문 집회에 자연스레 합류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밖에서 볼 때 광화문 집회는 한국 개신교의 전적인 합류라고 부풀려질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인 이번 여론 조사의 결과는 그 실상이 다름을 말해 준다. 전 씨의 언행에 개신교인 64.4%가 그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기독교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우려가 된다.’는 입장도 22.2%였다. 부정적 반응이 86.6%이다. 아울러 전 씨의 ‘문 대통령 하야’ 발언에 대해서는 개신교인의 71.9%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이번 조사가 아니더라도 전 씨의 행각에 대해 지난 6월 18일 교계 원로들이 탄식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호소는 단순히 정치적 무관심을 촉구하고 정교분리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가 정치를, 정치가 교회를 활용하는 불순함에 대한 경고였다. 원로들은 이데올로기를 도입해 정파적 편향성으로 상대를 공공연히 매도하고 거친 언행으로 교회와 국민의 갈등을 부추기는 그의 행태는 정치야욕적이며 반교회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 씨는 최근에는 자신들이 주도하는 대통령 하야 운동에 범교단 대형교회와 지도자들이 동참한다 선전하면서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가 50만 명의 서명지를 보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4일 여의도 순복음교회측은 전 씨의 주장을 극구 부인하며 “동성결혼 반대운동에 약 50만 명의 서명을 받았는데 이를 대통령 하야 서명이라고 정치적으로 오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어떤 단체나 개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교회를 이용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또한 다른 대형 교회 지도자들도 일제히 전 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지난 10월 3일 전 씨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신도들을 대거 참여 시킨다고 약속했다는 전 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님이 해명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을 감안하면 전 씨 측은 어떻게 하든 한국 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을 정치적 동력으로 끌어드려 판을 키우려는 의도를 보인다. 해당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지금까지는 그나마 선을 긋고 잘 대처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후로도 정치에 휘말려 드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교단도 금번 104회 총회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긴 하지만 이단을 옹호한다는 합리적 의심까지 받고 있는 전 씨 측의 활동에 우호적 태도나 심정적 동조를 보이는 언행을 삼가야 옳다. 오해 받을 일은 안 하는 게 좋다. 혹시라도 전 씨가 많은 문제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일을 한다며 응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특히 목사 장로들이 나서서 외부 활동이나 SNS로 왜곡된 정보들을 퍼 나르고 공유하며 교회를 정파적 운동의 중심으로 이끄는 일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갈등에 조력하는 일이다. 동성애나 인권법 독소조항, 낙태 등 근자에 이슈화된 문제에는 정책적 사안별로 반대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정당정파적인 활동으로 연계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목회자가 정치적 편향성으로 교회를 공공연하게 정파적 활동에 참여 시킨다면 그 교회의 다른 정파적 성향을 지닌 교인들은 버리겠다는 뜻인가?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목회자에 대한 신뢰와 성도 간의 교제가 막히는 결과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가 내적으로 어떤 성향을 갖는 것은 개인의 양심에 속한 일이요 자유이지만 그것을 외적이든 암시적이든 쉽게 표명하는 일은 절제함이 지혜롭다.

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교회의 정파 정치화는 다른 문제이다. 전 씨가 꾀하는 것은 교회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 정권의 퇴진을 위해 선동하며 물불을 안 가리는 언행을 하는데 이것이 정권을 교체하려는 야당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우군으로 생각되는 접촉점이다. 이는 최근의 양측 간의 우호적 연합 활동과 태도에도 잘 나타난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한국 교회는 정파적 집회에는 나름의 관심을 갖고 큰 소리도 내 왔지만 남북은 차치하고 동서 갈등의 문제에라도 뭔가 가치 있는 큰 역할을 감당한 일이 없다. 오랜 세월 정치공학적으로 빚어진 우리 사회의 동서 갈등의 해결을 위해 한국 교회가 근사하게 해 놓은 일이 무엇인가. 교인들마저도 그저 편가름의 폐해를 뒤집어 쓴 채 살아온 세월 아니었던가.

게다가 계층, 성별, 세대 간의 갈등까지 겹쳐 혼돈에 빠진 작금의 한국 사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복음의 결과인 사랑과 화평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해야 할 그 어떤 책임도 전혀 없다는 말인가. 이제라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교회가 정돈된 마음으로 본질에 귀착할 때이다. 어느 시대든 교회는 복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케 하고 또한 이웃 간 국민 간에도 화평케 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