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_ 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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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박종훈 목사 | 궁산교회>

 

겨울을 준비하며 놓아야 할 때에 놓는 결단이

진정한 평안함을 안겨 주는 비결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가을이고 당연히 단풍잎들은 자기 할 일을 하고 낙엽이 되어가지만 올해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십 여 년 동안 공력(功力)과 애정을 가지고 가꾸던 무궁화동산과 경작한 밭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알고 말들을 하지만 막상 내 자신에게 다가오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작은 텃밭 외에는 농토가 없는 필자로서는 묘를 벌초해주는 조건으로 800평 남짓의 경사진 밭농사를 호락질 하게 되었다. 무슨 큰 소득을 얻기 보다는 친환경으로 재배한 안전한 농산물을 얻는 것과 성경적 가치관으로 농사를 귀농 귀촌인 들에게 지도할 수 있도록 먼저 실험해보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었다.

목회자로서 농사에 메이지 않는 범위에서 하기 위해 최대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과실농사를 선택했다. 잡초와 싸워야 하는 다른 밭작물과 달리 감나무는 큰 장애 없이 자라 주었다. 오히려 자연농법은 잡초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주기에 서로 공생(共生)하며 더디지만 충실하게 자라서 올 해는 십 년 만에 열매다운 열매를 얻게 되었다. 전에 경작하던 농부들이 임대로 하는 특성 때문에 표토(表土)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조금만 비가와도 씻겨서 아래 밭과 경계를 이루는 둑이 방천(防川)이 나서 피해를 주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흙이 살아있어 많은 비가와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로 되돌리게 되었다.

이제 원주인에게 돌려 주게 되었지만 생명을 살리는 목회자로서 사람의 영혼은 물론 육신의 근본인 흙을 살리는 일을 했다는 보람으로 만족해야 했다.

처음에는 장기임대로 계약을 했기에 그것을 믿고 과일나무를 심고 가꿨었다. 문중 책임자분들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기에 그동안 과수 농사를 지었다. 또한 마을사업으로 수풀로 우거진 날땅을 문중의 허락을 받아 마을 주민들과 무궁화동산을 조성했었다. 처음 심을 때는 주민들과 공동 작업했지만 그 이후 필자가 십 년 동안 혼자 관리하여 이제는 꽃을 활짝 피며 동네 가치를 높여주는 꽃동산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궁화를 괴롭히는 가시덩굴과 거세게 올라타는 칡넝쿨을 제어하기 위해 흑염소를 키우며 나무도 가꾸고 가축도 키우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때론 삶이 힘들어 잠간의 낙심이 될 때도 무궁화동산을 가꾸는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였었다. 누가 시키지도 안했지만 오직 마을 품격을 높이고 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기 위한 순수한 맘으로 시작하였다. 이제는 무궁화 꽃이 화려하게 피어났고 지면(地面)에는 꽃무릇이 나며 년 중 두 번의 꽃을 피우는 동산으로 변화되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가치를 모르는 주민들의 무관심속에 더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 앞에 목회자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이 동네 출신의 젊은 일꾼이 주민들 소득과 연관된 마을 사업을 할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 나타나길 기도했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났다. 전직 언론인 출신으로 귀촌한 분이며 무궁화동산의 소유인 문중에 속한 같은 성씨를 가진 분이다. 고향의 자연 자원을 알며 무궁화동산의 가치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궁화동산에 국화를 심으며 관광소득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국화모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목적은 필자와 같지만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방법으로 여러 기득권을 내세워 강제로 가져가는 무리수를 두었다.

더불어 문중 밭을 경작하는 권리도 중단하며 그 동안 키운 흑염소를 다 철거해야 했다. 필자 나름대로 합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역사회에서 이득을 가지고 목회자가 문중 유사와 싸우는 자체가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삭이 힘들게 확보한 우물을 포기하고 양보한 것처럼, 바울이 악의든 선의든 전파되는 것은 복음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긴 것처럼 모든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비용을 들여 설치한 모든 울타리와 염소 우리를 허무면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올라갈 때는 내려올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설치할 때는 성취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했지만 막상 철거하면서는 왜 그리 치울 것도 많은지 여러 날이 걸렸다. 다행히 흑염소는 한 번에 처분했고 과일나무는 연말까지 기한을 두고 열매는 거둘 수 있었다. 물질적, 육체적 손해는 물론 경우(境遇)에 어긋난 그들의 행동에 인간적 분노가 잠시 있었지만 지금은 평안한 마음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기대한다. 동물 사육과 농사지으며 나름대로 매이지 않게 한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매이고 있었다. 이제는 좀 더 목회의 본질에 충실하고 그동안 좋은 경험을 한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어차피 이 세상 보이는 일은 헛되고 헛되다고 했던 전도자의 고백을 실감했던 일이었다. 때가 되면 떨어지는 잎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잎들이다. 봄에 새싹을 내고 그 뜨거운 여름에도 몸에 햇볕을 더 많이 받으려고 시새우던 많은 잎들이 이제는 한풀 꺾이며 아름다운 단풍이 되어 마지막으로 조용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낙엽이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죽은 것 같은 나무지만 새봄의 부활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만약 활엽수 나무이면서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늦잎이라면 이미 죽은 소망 없는 나무일 것이다. 입으로는 부활을 외치며 천국을 말하지만 내려놓을 때도 놓지 못한 신자가 있다면, 그 신자는 부활을 믿지 못함을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평생을 존경받는 성직으로 일한 분들이 아름답게 장식해야 할 마지막의 자리에서 일부 지도자들의 추한 뒷모습은 끝이 좋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결과이다. 숲속을 거닐다 보면 낙엽은 바닥의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쌓여 있다.

벌거벗은 나무의 앙상한 가지는 처량해 보이지만 그 나뭇잎을 이불 삼아 수많은 생물들이 겨울을 나며 자신을 떨군 나무들의 자양분이 되어 준다. 그동안 경작하며 관리한 모든 농자재를 필요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밀림에서 덩치 큰 초식동물이 쓰러지면 많은 육식동물이 혜택을 받는 것처럼 내려놓는 것은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기도 한다. 자연은 때를 알고 때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도 겨울을 준비하며 놓아야 할 때에 놓는 결단이 진정한 평안함을 안겨 주는 비결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