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 _ 구정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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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

 

<구정오 목사 | 미래로교회 | 부산노회장>

 

약하기에 주님께서 사용하시니

더욱 겸손히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함

 

제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잘 막힌 못과 같이 지금도 심령골수에 박혀 있는 말씀은 “진리를 알게 되면 진리가 너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리라!”(요8:32)입니다.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원치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도 주시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 편에서도 날마다 종으로서 자기위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미래로 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저를 부목사로 딱 생각하고, 목회방향을 담임목사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들은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기도시간을 늘였습니다. 담임목사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독대하는 시간, 왕 앞에 나아가는 어전회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자 점차 목회에 자유함이 생기고, 목회결과에 대해서도 염려를 하지 않고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담임목사이신 주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평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주님의 은혜 안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자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체질적으로 거룩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후 성령의 능력으로 퇴폐적인 욕구를 극복한 경험도 있었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죄의 소욕과 싸워야 합니다. 때문에 저는 목회자들이 죄를 짓고 넘어질 때에 “어쩌면 목사가 그럴 수가 있어!”라고 비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다 뿐이지, 저도 얼마든지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죄로 인하여 넘어지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주님의 교회에 엄청난 파괴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래서 “성품이 착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선택하여 교회를 맡기시지, 왜 나같이 성질도 못 됐고, 부패한 성품을 가진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다치게 할 위험부담을 감수하십니까?” 하고 투정부리듯 기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약한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후12:9). 바울도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빌 3:8).

많은 크리스천 리더가 죄에 넘어지는 이유가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는데,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고 나면 자신이 유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다가 잠재해 있던 약점들이 드러나면서 무너져 버립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겸손히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합니다. 그러면서 타락된 본성이, 언제 머리를 쳐들고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제 삶과 사역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을 안고 삽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한 바울의 고뇌가 남의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날, 영광의 날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날에야 비로소 연약성과 부패성으로 찌들어진 육신을 벗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덧입기를 소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주님의 종이 되고자 할 때 누리는 자유와 평강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