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좌로나 우로나 가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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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좌로나 우로나 가볍지 말자

 

얼마 전 한 청년이 분당의 모 목사는 좌파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제작한 후 전문 채널에 올려 꽤 논란이 있었다. 신영복 교수의 책을 읽은 모 목사가 “그런 면(어떤 면)에서는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고 한 2016년 설교 내용을 소환하여 문제 삼고 좌파라고 질타한 것이다. 이 영상은 5백여 명의 회원이 있는 선교사들 SNS에도 올랐고 급기야 그 목사가 해명하는 일까지 있었다.

두 가지 면에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첫째는 어찌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부분만 따서 쉽게 단정을 할 수 있는가? 검증과 해석의 오류이다. 법적 과정으로도 1심, 2심, 3심 확정판결까지는 빠르면 수개월, 길면 수년이 걸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고와 피고 및 많은 증인들의 진술과 세세한 증거자료들을 검토하는 것이 심리과정이다. 각 교단에서 이단을 규정할 때도 최소 1년 이상의 조사와 심리를 통해 결정한다. 그런데 어느 사상가의 ‘어떤 면에 대해서는 존경한다’는 말 한 마디가 설령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라 쳐도 그것을 근거로 그를 좌파라고 규정하고 잘못된 목사로까지 매도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증상이다.

둘째는 우파는 옳고 좌파는 나쁘다는 지나친 등식의 문제이다. 언제부터 우파는 무조건 진리이며 좌파는 무조건 악마요 비진리인가? 동서 냉전도 오래 전에 끝나고 각국이 보호 무역으로 몸부림치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정책들을 도입하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까지 상표 이미지로 차용하는 시대이다. 좌는 사회주의이고 우는 민주주의인가? 어리석은 사족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우(혹은 진보와 보수)는 한 틀 안에서 상호보완적 가치추구이다. 이 대낮 같은 시대에 왜 편가르기를 하고 진영 논리로 서로 대적하는가? 이념 대립의 폐해 속에서 슬픈 역사를 지녔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해묵은 이념 논쟁에서 나아가 심각할 정도로 감정적 대립에 처해 있다. 국민들, 기독교계,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 화목에 힘써야 할 목회자들 사이에도 우파와 좌파로 갈등하곤 한다.

사실 시민으로서 개인이 양심에 따라 어느 가치들을 더 지향하는가는 헌법과 법률과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기본권적 자유이다. 또한 때론 좌우의 가치들이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 오늘날 사회 발전의 보편적 양상이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과 모순과 오류들을 담고 있다. 부분적으로 반대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기독교계마저 둘로 확연히 나뉘어 어느 한 편만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선동하고 대결하고 있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파든 좌파든 내용과 사안에 따라 하나님의 진리에 부합하면 지지하고 진리에서 벗어나면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판단의 첫 기준은 오직 성경이다. 그런 후에는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 좌나 우가 주장하는 논리와 기준 그 자체가 우리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아니다. 그런 것은 보편적 법 질서와 시민의 책임과 권리에 연관하여 우리의 생활을 부분적으로 규정할 뿐이다. 그런데 각 진영이 자기들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 범주에 들지 않으면 전적으로 나쁜 자들이요 타도 대상으로 모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 판단하에 성경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일리가 있는 사안에는 인정하고 서로 쉽게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일부 목사들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소위 ‘막언막행’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규명이나 확정되지 않은 내용들을 거친 표현을 섞어가며 마구 쏟아 놓아 위태롭기까지 하다. 헌법에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 권리가 있지만 거칠고 편향적인 언행들을 아무런 정제 없이 난사하는 것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그런 주장들의 근본 의도를 떠나 화평에 힘써야 할 목회자의 언행 중에 거칠고 적대적인 말이 여과 없이 나온다는 것은 사회 분열과 심지어 교회 분열의 한 과정에 힘을 싣지 않나 우려될 정도의 가벼움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진리에 근거하고 시민으로서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가치를 추구하며 또한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내린 결론을 외적으로 언표할 때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공히 겸허한 자세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막언막행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경적 성찰은 물론, 받은 정보에 대해 꼭 확인, 검증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런 수고와 신중함이 있어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확증편향적인 가벼움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자기가 추구하는 편은 무조건 옳고 다른 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척하는 것, 부분으로 전체를 평가하며 상대편을 악의 축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가벼운 처사이다. 더구나 존엄한 한 생명으로서의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무거워야 한다. 한국교회가 일정 부분 사회적 비판을 받는 현실에서 적어도 목회자들과 지도자들만큼은 언행을 신중히 하고 정치적 편가름의 논리에 매여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분노와 증오로 타올라 심각하게 분열적인 우리 사회 양상에 기름을 끼얹지 말아야 한다. 할 수만 있거든 사회적 화평과 화목에 기여해야 하고 좌로나 우로나 가벼움을 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