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모여 있어야 _ 정요석 목사

0
45

시론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모여 있어야

 

<정요석목사 | 세움교회>

 

너무 많은 모임, 단체에 속하지 말고

성운처럼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에 법원행정처로 발령됐다가, 판사들을 뒷조사한 문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사표를 제출했고, 이것이 사법농단 사태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1월에 아래와 같은 사직의 소감을 전하며 사직하였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법관이 추종해야 할 것은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적인 가치입니다. 가치에 대한 충심이 공직자로서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가치에 대한 배신은 거부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물러서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모여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판사보다 더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목사이다. 목사야말로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영광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다. 장로교 목사는 국회의원이나 판사보다 더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목사는 노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는 순간부터 삼권(三權)이 주어진다. 목사 말고 사회의 어떤 직위자에게 삼권이 주어지겠는가?

필자는 이것을 영예롭고 무게 있게 여겨,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동기 모임도 조심스럽게 나갔다. 동기라는 관계와 정을 인하여 어떤 사안을 판단하거나 어떤 사람을 추천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동기 모임도 조심하였다. 노회와 총회가 아닌 사적 모임 참여도 최대한 조심하였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탁구도 사적으로 운동모임을 만들지 않았다.

어느덧 담임목회 21년과 외래교수의 경력 때문인지, 후임 목회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가끔 받는다. 그때마다 최대한 사적인 관계나 이익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어떤 후임을 가장 기뻐하실 가를 생각하여 추천하려고 노력한다. 신학연구위원회와 지도부 등과 같은 총회 일도 하게 되는데, 비록 능력은 부족하지만 교단 전체의 유익을 위해 일하려는 자세만은 늘 가지려고 노력한다.

삼권이 주어진 목사와 장로가 사적인 관계나 이익을 우선하면 교회와 노회와 총회와 신학교는 제대로 서지 못한다. 합법이란 명목으로 얼마든지 부정한 일을 할 수 있고, 패거리와 향우회 정치를 할 수 있다. 장로교 정치는 목사와 장로가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할 때만 가능하다. 그 어떤 제도보다 이상적인 장로교 정치는 목사와 장로가 사적인 관계와 이익을 떠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9월 총회에서 임원과 상비부장과 특별위원장을 뽑고, 여러 정책과 사안을 결정한다. 총대들은 성운처럼 흩어져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 어떤 결정이 총회에 유익한지를 결정해야 한다. 총회장은 설령 부패해도 임기가 1년이고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 이외에 집행할 권한이 없으므로 그 영향력이 한정적이다. 오히려 3년 임기의 총회와 교육부와 선교부의 총무들이 실행에서 영향력이 크므로 잘 뽑아야 한다. 4년 임기의 신학교 총장은 더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교수는 65년 정년이 될 때까지 3년간의 신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적합한 분들이 담당하도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무려 70세 정년이 될 때까지 교인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므로 가장 적합한 분이 수행해야 한다. 같은 동기이거나 동향이기 때문에, 같은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선정하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매고 푸는 것을 하늘에서 매고 푸는 것으로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고하고 행해야 한다. 목사는 성운처럼 흩어져 살아야하기에 때로 외롭고, 때로 계속하여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의 영광스러운 숙명이고, 기쁨으로 지어야 하는 짐이다. 목사는 너무 많은 모임이나 단체에 속하면 안 되고, 성운처럼 서로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대신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대로 집행되는 것을 즐거워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