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래도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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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래도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방한하여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의 극적 재회가 있었다. 속단은 금물이나,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회담 이후 경직된 북미간은 물론 남북 대화도 재개의 계기가 될 듯하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반도가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와 평화의 길로 가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 여기엔 지속적 인내와 냉철함이 필요하다.

존 폴 레더라크는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서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신념이다.”라고 했다. 그는 “갈등과 폭력이 여러 세대를 거쳐 축적되어 온 만큼이나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단기간에 성취되지 않고 장기적인 작업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여차하면 부정적 결론을 내리곤 한다. 단기간에 답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는 비관에 익숙하다.

레더라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의 시급한 문제를 먼저 다루고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것은 현실론적 해법이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평화통일에 찬성하면서도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며 현 북한 정권의 조속한 붕괴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지향적이며 현실적 해법이 아니다. 6.25를 포함한 전쟁과 갈등의 역사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 상상력을 갖고 현실의 틀 안에서 남북, 북미 간의 발전적 변화 가능성을 믿으며 평화 공존의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굳이 과거를 돌아보면 전후 한반도의 평화 공존의 노력은 꽤 오래 되었다. 5.16 이후 박정희 정권은 북한을 불승인하는 자세를 취했다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제반교류를 전격 제안하며 평화 공존을 지향했다. 이어진 1973년의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7항에 보면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평화실현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고 했다. 즉, 폐쇄적인 통일정책을 탈피하고 관련국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 적극적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이는 바로 최근 우리가 실행하는 외교노선이요 진취적 자세이다.

특이한 일은 당시 북한 정권은 정작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정부를 인정할 수 없고 분단고착행위로 간주한다며 이를 비난하였다. 최근 일부에서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두 개의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평화통일정책 기조와 역설적으로 배치된다.

그 후 1974년 평화 통일 3대 기본 원칙, 1982년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 나왔고 노태우 정권 때인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를 통해 상대방의 체제 인정, 내정 간섭 불가, 상호 무력 사용 금지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이런 과거 위에 2000년, 2007년, 그리고 2018년에만 세 차례에 이르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주재우 교수가 설파했듯이 최고위급 인사들의 소통만이 평화의 길은 아니다. 민간 활동의 교류와 평화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 한국교회도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평화와 통일 대책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독일 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의 역할은 잘 알려진 바이다. 1992년부터 1995년에 이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보스니아 지역 사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이슬람 지도자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위해 갈등을 넘어 서로 연합하도록 힘썼다. 한국교회도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진영논리와 종파를 넘어 현실적 교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기여해야 한다.

과거엔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론만이 주류였지만 이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돌발 변수가 많아 불안정하다. 이제는 문화교류와 NGO의 역할이 큰 시대이다. 이리에 아키라는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책에서 21세기가 평화의 세계가 되려면 그것은 국가 간의 세력균형뿐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개인이나 집단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 말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민간교류와 평화 운동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크다. 최근에 한기총 대표회장의 행태를 염려하며 한국교회 원로 31인이 선포한 호소문을 보면 따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원로들은 분단 속에서도 선진사회를 이룬 것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렇게 호소했다. “냉전적 적대주의를 버리고, 서로 협력하여 공동선을 이룹시다. 한국사회는 지난 세월 동안 정치계를 중심으로, 냉전적 대결논리로 적대주의를 강화하고 이를 악용해 왔습니다. 이제 빈곤과 독재를 넘어 부요하고 민주적인 강국이 되었으며, 분단을 극복하여 힘 있는 평화 통일을 이루려고 결단하는 시점에 와 있으니,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정치 경제적 셈법에서만이 아니라 누가 말했듯이 삶의 질과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이며 한국교회가 간절히 기도하며 추구하는 주제이다. 그 과정에 종종 예측 불허의 사건과 장애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일희일비 조급해 말고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쉽게 버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