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신총동문회 30주년 기념수련회<개강 예배 설교 요약> |

0
4

 

 

DSC_3388.jpg

개혁신앙의 우수성 (시 105:17-19)

| 박영선 목사·남포교회 |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신앙의 우수성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는 것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하심 속에서 그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친히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부르셨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낸 인물로는 요셉을 들 수 있다.

 

성경은 요셉을 가리켜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시 105:19). 요셉 또한 자신이 성공을 꿈꾸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요셉을 형통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요셉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형통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요셉은 자신의 영혼이 쇠사슬에 메였을 정도였다고 지난 시절의 아픔과 고통과 고난을 회상하고 있다. 후에 형들에게서도 이 사실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 일은 형들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시 105:17-18).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의 노력과 조건과 상관 없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곧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비하심을 바라보게 된다.

 

성공한 요셉을 보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요셉을 요셉되게 하신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희망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요셉과 같은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곧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바로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지금도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요셉과 같은 인물이 바울이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결코 성공한 인물이라 할 수 없다(빌 2:20-21). 하지만 그의 실패한 삶을 통해, 심지어 그의 죽음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가치관과 그 기준이 다르다. 때문에 바울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았다(갈 6:12-14).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다.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만 그 가치를 찾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손중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이다. 이 순종을 하나님께서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종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고 심지어 죽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내가 살고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이익이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것이 소위 세속적인 성공이 가져다 주는 성격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 없이 기독교 신앙을 가치있게 만들자는 운동이다. 더

 

순결하고 성실하고 겸손하자는 것이다. 예수님 없이 그러자는 것이다.

 

신학이라는 과정은 생각을 하자는 것이다. 감격과 감동은 이러한 생각하는 작업을 배제시킨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설교자들은 한 영혼을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영혼이라도 결코 우리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어떤 권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 속에서 보상을 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롬 14:7)고 여겼다. 그리고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말한다.

 

여기에서 산 제사의 대상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범상한 나날이다. 바로 오늘 살아가는 그 삶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으로부터 나온다. 매일의 삶속에서 도전을 받고 있는 그 현실을 바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요셉과 바울의 삶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8)고 하셨다. 어떤 권력과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후 산상수훈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은 이미 상급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종교 행위를 권력으로 확보하려고 한다. 곧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과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구제, 기도, 금식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명분이었다. 즉 그것들을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 구별하는 권력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은밀하게 행하는 이들에게 은밀하게 갚으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지 않다면 그 어떤 성공으로도 영혼 구원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작정과 어떠하심이라고 하는 그 터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의 이론과 상식과 논리로 증거되는 것에 대해 무척 염려했던 인물이다(고전 2:1-5). 사실 기독교 신앙은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통치와 그 우월성이 증거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울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 없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교단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