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교회 이해_황대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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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교회 이해

황대우 목사_고려신학대학교 교수

진리의 공동체인 교회 밖에는 구원 있을 수 없어
그리스도의 몸까지 성장할 때 성숙의 완전 도달해

교회는 순수하게 하나님 자신이 친히 세우시는 그분 자신만의 고안물이요 건
축물이다. 하나님의 교회 건설에 인간은 일군, 즉 부역자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 건설에 인간을 단순한 부역자가 아닌 ‘동역자’
로 부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코 교회 건설의 주체가 아니다. 
그 주체는 오직 삼위 하나님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기와 장소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는 설립되어 왔
고 설립될 것이다. 바로 그곳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 모여들며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한 공동체가 존재한
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칼빈의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교회
관에 대해 점검하고자 한다.

1. 봉사공동체로서의 교회

칼빈은 그리스도를 ‘최고의 
목자’(princeps pastor), ‘신자들의 유일한 
교사’(unicus fidelium magister), ‘최고의 통치자’(summus moderator)
로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하나의 지속적인 통치권
을 세우시고 우리의 구원을 돌보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이후에 그분과 우리 사이에 아주 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자신의 교회를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유일한 교사, 
최고의 통치자가 되신다. 이에 대해 칼빈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만이 좋
은 목자이신데 먼저는 자기 자신을 통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도구들을 통
해 범죄하고 허물진 교회를 보존하시는 목자라고 설명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통치의 ‘도구들’이란 교회의 사역자들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신다. “그분께
서 이 직분을 맡기시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사역자들을 통해 
자신의 은사를 교회에 나누어주시고 분배하시는 것이 완성 방법이다. 특히 
그와 같은 방법으로 친히 임재하심을 보여주시되 그것이 헛되지 않고 무용하
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성령의 
능력을 이러한 자신의 기관에 투입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지상교회를 다스리시는 방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되 사역자들을 세워서 다스리시
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자들은 성령의 은사, 즉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효
력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간의 봉사는 신자들을 한 몸에 연결시키는 최상의 
근육이다. “사역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호간의 사랑인데, 이것을 통해 
그들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한다. 왜냐하면 각자가 각
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과 그들 각자가 공동의 안녕을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상호 간
에 형제의 교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떤 건물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갈기갈
기 찢어진 건물을 세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그것은 결코 교회 건
설이라 할 수 없다.”
교회는 오직 협력 사역을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세워질 수 있
다. 교회를 다스
리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 모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들
이 자신들의 직분을 바르고 잘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으
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어떤 은사들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교회 직분들은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
스도 아래 성령의 은혜 은사를 통해 유기적으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 실제
적인 교회 사역의 동력은 은사를 베푸시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오직 성령 
한 분으로부터 다양한 은사들이 흘러나온다. 성령은 모든 은혜 은사의 ‘시
초’ 혹은 ‘기원’(principium vel origo)이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
시는 분’(author)이시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안내하심 없이는 하나님의 교
회가 존재할 수 없다.
칼빈은 교회 사역자들을 ‘성령의 도구들’(organa spiritus sancti)이라 부
른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난 은사를 받은 자들이기 때
문이다. 교회 직분들은 은사와 동일시된다. 성령의 은사 없이는 어떤 교회 
직분도 봉사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은사 대신에 직분을 논한다. 
왜냐하면 교회 직분은 
필수적으로 은사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러한 은사를 교회 사역자들에게 주
시는데, 그 은사 없이는 그들이 받은 직분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만
일 그리스도를 통해 형성되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렇게 빛나는 직
분에 적격이거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역자들
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그분의 은사이고, 그들이 필요한 은사들 가운데 뛰
어나다는 것도 그분의 은사이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
는 것 역시 그분의 은사이다.”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모든 교회 사역자들은 각기 서로 다른 사역에 종사하
지만 일심으로 교회 건설이라는 공동의 사역에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이러
한 교회 사역은 우리 모두가 믿음이 하나 될 때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까지, 온전한 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리스도로 충만
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모든 교회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섬긴다. 이것
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직분의 질서를 세우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다. 여기에 항상 
선행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이다. 은사 없이는 교회 내에 
어떤 공적인 직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유일한 제물 그리스도
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왕적 사제직을 가지는데 그 목적은 각자 자신뿐
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도록 하는 것
이다. 즉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루터와는 달리 칼빈은 처음부터 신자들의 만인 사제직을 교
회 직분적인 개념으로보다는 성례전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만
인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교제를 통해 그 기능을 발
휘한다. 
우리가 받았던 은혜를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은 오직 교제를 통한 교회 건설
을 위해서이다. 교회 속에 유익하지 않은 지체는 단 하나도 없다. 아무런 유
익도 주지 못할 만큼 하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지체들이 각자 아무런 구분 없이 동일한 분량으로 은사를 받는다는 것
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봉사의 질서가 요구하는 것은 교회 속에 서로 다른 다양한 기능들이 존
재한다는 것이다. 하지
만 이러한 상이함이 성도 상호 간의 일치와 갈등을 일
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다양성이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들 사이의 하나 됨을 품고 강화하기 위해 유익하다. 즉 교회의 통일성 
때문에 은사의 다양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으로부
터 교회의 통일성이 든든히 구축되는데, 그것은 마치 음악에서 다양한 음이 
조화로운 멜로디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 
“한 몸의 지체들이 다양한 재능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 모두가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모든 재능들을 지닌 지체도 없고, 다른 지체의 직분
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지체도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또한 그와 같이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 이러한 구별을 통해 그분이 세우시
려고 한 것은 우리 가운데 질서를 보존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인데, 이것은 각
자가 자신의 재능에 따라 적당히 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도
록,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또
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허락된 자리를 찬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은사 상호간
의 교류를 통해 신자들은 서로 함께 연결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는 각자가 자신의 은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
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
회를 건설하는 일은 각자 독립적으로 서로 다른 은사를 받은 모든 신자들이 
상호 동역하는 것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재
능(facultas)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건설하도
록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 교회를 우리는 은사공동체라 부를 
수 있는데, 거기서는 은사의 선행(先行) 없이는 교회를 세우는 어떤 직분적 
봉사도 기대할 수 없다. 

2. 진리공동체로서의 교회

교회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교리 위
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교리의 모퉁이 돌이실 뿐만 아니
라, 또한 자기 자신의 학교에서 훈련받는 모든 제자들의 유일한 교사이시
다. 이 학교에서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해 계시되고 보존되
고 교육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교회는 진리의 교두보라는 뜻이다. 교회가 진리의 교두보라
면 교회 밖에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
님께서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능의 열쇠를 교회에 맡기신다는 말씀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칼빈은 과감하게 진리공동체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교부 키프리안의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불신자
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밖에 있는 자들도 내일은 교
회 안에 접붙여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들의 죄악이 개선됨으로써 지금 그들
에게 없는 하나님의 은사들에 참여하는 참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칼빈에 따르면 이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 안에서 말씀 선포 즉 설교의 봉사
를 통해 보존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설교의 합법성을 교회에 주셨는
데, 우리가 이 세상의 순례자인 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
는 이 학교로 와야만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학교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세상에서 소멸되
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회는 그 진리
의 신실한 보호자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봉사와 사역을 통해 그분
의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유지하시기를 원하셨고 자신을 우리에게 가장으로 
보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통해 우
리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이시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호하신
다.” 
진리를 보존하고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어머니 되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
다. 세상의 창조 이래로 교회는 항상 ‘진리의 보호자’였으며 세상 끝 날까
지 영원토록 그럴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가 진리의 수호자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진리를 선포하여 죽은 자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기
능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신자들을 이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들의 믿음
을 강화하는 기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의 모든 교회
들은 두 가지 사명, 즉 전도와 양육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칼빈은 복음 선포 즉 복음 전도를 ‘어머니’(mater)라고 부르며, 믿음은 바
로 이 복음 선포의 딸이라고 지적한다. 이유는 모든 신자들은 오직 “유일
한 복
음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이 
복음의 어머니란 바로 가르침, 즉 ‘교리’(doctrina)이다. 
교리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바른 교리가 있는 곳에 신자들의 모임
과 통일성과 교제가 있다. ‘말씀의 가르침’(doctrina verbi)은 모든 신자
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교회 통일성, 즉 교회 연합의 잣대요 시금석이다. 
“왜냐하면 교리는 우리 사이에 형제적 교제의 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연합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 즉 말씀의 교리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서로 형
제인지 원수인지를 판단하는 잣대는 오직 복음의 핵심 교리 즉 진리뿐이다. 
진리가 있는 곳에 교회도 있다. 따라서 진리가 발견되는 교회들 상호간의 연
합만이 진정한 교회 연합이다. 교회일치운동은 하나님의 진리(veritas Dei)
가 존재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칼빈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 외에 다른 일치의 띠를 요구하지 않는다.” 칼빈에
게 있어서 교회의 평화는 ‘순수한 교리 안에서의 일치’를 의미한다. “일
치의 끈인 
하나님의 순수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열성적으로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하나님의 순수한 교리의] 교제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
문이다.”

3. 사랑공동체로서의 교회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설립부터 완성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서 베푸시는 사랑의 연합 사역이다. 칼빈은 ‘교회의 근원과 기원’을 하나
님의 은혜로운 사랑으로 정의한다. 즉 교회는 하나님 사랑(caritas Dei)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낳으시고 기르신다. 마치 신랑이 지극
히 사랑하는 신부를 그렇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은혜로운 사
랑으로 품어주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자신의 독생자 
그리스도,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몸인 교회에 자
신의 사랑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는 이 ‘사랑의 원인과 기원’
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즉 사랑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놓여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를 지신 희생이 하나님께서 죄
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우리를 자신의 사랑 속에 받아주셨고 자신의 성령을 통해 이 은혜를 우
리 속에 강화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는 수단은 성령의 사랑인데, 그의 성령
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일치의 끈이시기 때문이다. 칼빈의 판단에 따르면 고
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동
시에 성령의 교통하심을 함께 묶은 것은 성령의 교통하심 없이는 누구도 하
나님의 부성적인 은혜와 그리스도의 선행을 맛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생성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
푸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진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내리사랑의 원리가 교회의 생명력이다. 이것이 교회를 움직이
는 동력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교회의 각 지체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이기적인 불신앙의 삶을 청산하고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
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을 사는 자들이다. 

성도의 교제, 즉 한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 됨과 사랑 없이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기독교의 교제, 즉 한 몸 속의 교제와 사랑은 일반적인 형제 사이의 
일치와 사랑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칼빈에 의하면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께
서 죄 용서의 ‘권능’(potestas)을 맡기신 지상 교회의 본질적 요소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모임을 독립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이 신자들의 교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그 분리를 지속적으로 고집하는 모든 자들, 그들에게서
는 구원에 대한 어떤 소망도 발견될 수 없다. 
이 성도의 교제가 의미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선행들을 서로 나
누기 위해 그리스도와의 교제에로 모여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은 형제 연합의 끈을 통해 상호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
의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의 머리라고 고백하는 자들
은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데, 이유는 그들이 서로 형제 사
랑을 통해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지체들은 한 형제자매로서 이 ‘상호교제’
를 통해 서로를 도와야 한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형제로서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는 “우리 모두의 머리 아래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우리가 사랑의 봉사를 통해 서로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다. 
칼빈에게 있어서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
는 최고의 은사와 최상의 방법이다. 그리고 사랑은 “신자들과 하나님의 자
녀들의 참된 온전함”이다. 즉 신자들의 온전함은 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으로 완전하게 된다.” 이 사랑의 최고 모범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죽음과 고난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 모두가 그의 몸에서 하나가 되기
를 원하시며, 심지어 각자가 자신의 이웃을 섬기는 조건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호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경건을 위해 우리
를 훈련시키시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다.
사랑이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
럼에도 불
구하고 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믿음까지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
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의 근원과 기원이요,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내
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 외에는 결코 의롭게 하
지 못하지만, 의롭게 하는 능력이 사랑의 효력에 달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교제는 믿음의 일치에 달려 있는데, 후자[=믿음의 일치]
는 전자[=사랑의 교제]의 시작과 끝이요, 요약하면 전자의 유일한 규범이어
야 한다.” 사랑의 모든 직분은 이 두 용어 ‘일치와 건설’로 요약할 수 있
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과 그리스도 몸의 건설을 의미한다. 

4. 성장공동체로서의 교회

칼빈은 교회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보았다. “교회는 자연적인 수단
들이 아니라 천상의 능력과 은혜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다.” 교회 설립
이란 특별한 것인데 그것은 비록 이 땅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놀라
운 능력을 통해 하늘 위에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장자들로서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되, 그들 모두가 한 몸과 한 교
회로 성장하기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지만 유대인들이 감사하지 않음으로써 
잘려나가고 이방인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며 연합되는 것은 그들이 한 머리에 
의존하고 있고 또한 한 몸이 될 때까지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우리 밖에 계시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끊어질 
수 없는 교제의 끈으로 우리와 연합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온전히 우리
와 하나가 되실 때까지 놀라운 연합을 통해 하루하루 점점 우리와 한 몸으
로 성장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에까지 성장할 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합당한 성
숙과 완전이다. 이것은 성숙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한 마음과 한 영혼이 되는 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
지 충만하고 완전한 힘을 얻지 못했으므로 죽을 때가지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 몸인 교회의 성장 목표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뿐이다. 
이 성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결과물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
도에게
까지 자라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성장의 방법과 과정과 목표는 오
직 그리스도뿐이다. 세례 요한처럼 자신은 쇠하고 그리스도는 흥하기를 소망
하며,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길이 곧 교회 성장의 바른 길이며 지름길이라
고 칼빈은 말한다.

마치는 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기관”으로서의 교회에 대해 칼빈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교회는 ‘봉사공동체’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회는 그리
스도의 몸이다. 자신의 몸을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지체들을 서
로 섬기도록 은사를 주시고 직분자를 세우셔서 질서 있게 자신의 교회를 다
스리신다. 
둘째,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공동체’이다. 교회가 외치고 가르치는 것이 
복음인 것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교회이냐, 아니냐를 가늠하
는 유일한 잣대이며 근거이다. 즉 진리를 소유한 교회만이 참 교회라는 것이
다. 
셋째,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공동체’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졌고 그 사랑을 받아 세상에 전하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힘 없이
는 하나님의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교회라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공동체’이다. 개혁가는 마치 인간이 성장 과
정을 가지듯이 교회 역시 성장하며, 이러한 교회의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
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칼빈이 말하는 교회는 종말론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교회란 이 세상 속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이 순례하는 
교회는 마지막 종말의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의 수고
를 감당해 나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란 마지막 심판의 나팔
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
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이 세상의 순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