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호 장려상|“서울 나들이”_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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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장려상

“서울 나들이”

김영배_샘터교회

“저렇게 쓰임 받기 위해, 한번 베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견디고, 
추위와 더위와 더불어 싸워 오늘까지 저 궁전 한 곳을 지키고 있을까?”

어린아이들일수록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이 없다. 만일 근심 걱정이 많
은 아이라면 이미 그는 어린아이가 아닐 것이다. 근심걱정은 아이들 몫이 아
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꿈을 키우고 꿈을 살찌워 가는 때이다. 
어린이들에게는 함박눈이 와도 신나고 차가운 바람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도 눈 위에 미끄럼 타고 노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따스한 봄볕만을 기다
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꽃피는 봄도 좋고, 눈 내리고 추운 겨
울도 신날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성장하고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사계절 같은 인생의 계절
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열매도 달라질 것이다. 내
겐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찬바람이 그치고 언덕에 싹이 나고, 아지랑이 피

어오르며 나비들 춤추는 봄날이 그리워진다. 
아이들은 봄방학을 맞아 또 한번의 소중하고 재미있는 시간, 귀한 시간을 보
내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바쁘게 시간을 보낼 테니 나는 모처럼 아이들에
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서울 경복궁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나를 
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경복궁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철로 가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1시간 이상 타고 경복궁에 내려 입장권을 사려고 하니 경복궁 입구의 옛 근
위병들이 근무 교대식을 갖고 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서 병사들이 춥겠
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근위병 가까이에서 양
해를 구하고 찍기도 한다. 
들어가려고 보니 경복궁에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고 먹지도 못한다고 한
다. 때는 오후1시가 넘었는데 어떻게 하나? 마침 오는 길에 배낭에 보름달 
빵과 음료수를 사와서 함께 나누어 먹고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궁궐이 정말 색깔도 화려하고 석가래도 수 없이 
많다.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의 용상을 보고 또 천장의 화려한 용의 그림도 보
았다. 기둥은 얼마나 두꺼운지 
참 대단하다. 어른 팔로 한 아름 이상의 두께
의 나무가 휘지도 않고 반듯하고 곧게 천장에 닿아 있다. 
요즘엔 저런 크고 곧은 소나무 볼 수도 없는데… 기둥 하나만 보아도 가슴
에 감동이 몰려온다. 저렇게 쓰임 받기 위해, 한번 베임을 위해 얼마나 많
은 비바람을 견디고, 추위와 더위와 더불어 싸워 오늘까지 저 궁전 한 곳을 
지키고 있을까? 
참으로 방도 많고 궁전도 다양하다.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또 무슨 창
고… 많은데 수 백 년 동안 저 위의 아름다운 기와를 머리로 하고 있어 꿋
꿋이 쓰러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여러 궁전과 건물과 방이 있는데 곳곳마다 ‘들어가지 
마시오’(Keep out)란 푯말만 써 있고, 그 궁전과 그 건물 이름에 맞는, 그 
이름도 한문으로만 써 있기도 하지만 설명이 전혀 없다. 가령 교태전이면 그
곳은 왕이 사용하는지, 왕비가 쓰는지, 또 어떤 용도인지 간단하게라도 설명
이 있으면 국내 관광객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민속박물관도 둘러보고, 경회루의 잉어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즐
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슬슬 배
가 고프고 다리가 아파 온다. 조금 전 빵 두개
씩 먹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막내는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한
다. 하지만 궁 안에서는 사먹을 식당도 없고 매점도 없다. 그렇다고 오랜만
에 왔는데 그냥 나갈 수도 없다. 
오후 3시가 지나가니 막내가 거의 불평 수준으로 점심 먹자고 조른다. 현재
는 밖으로 나가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에도 못 견뎌한다. 물론 이제 
5학년이 되니 이해도 되지만 큰아들이나 나도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다. 조금
만 참고 나머지 볼 곳을 둘러보고 빨리 나가 식당에서 맛있는 것 사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배고픔이 아들의 인내심을 가만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 
“형아! 우리 아직 점심도 안 먹었다” 하며 얘기한다. 나는 차라리 두 손 
내밀고 “좀 도와줍쇼” 하라고 놀렸다. 
나는 광야의 길을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았다. 먹을 것과 마
실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향해 먹을 것
과 마실 것을 내어놓으라고 했으니 어찌했으랴? 
광야를 살아가게 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입
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려 하셨다. 땅
의 것만이 아니라 땅의 굶주림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해야할 인생임을 알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나라를 향해 살아갈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물관 입구 쪽에서 밖으로 나오니 500년의 세월을 넘
어 다시 서울 거리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태극기가 걸려있다. 
“아들아 뭐 먹을래?” 
“고기요.” 
“무슨 고기?” 
“돼지고기.” 
“그래.” 
인사동 골목길에서 우선 국화빵을 사서 막내에게 먼저 주고, 식당을 찾아 순
대국을 시켰다. 그리고 내 순대를 꺼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아들아, 많이 먹어.” 
아들은 더 이상 점심 안 먹었다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