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예배음악을 위하여_이성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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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예배음악을 위하여

이성재 목사_21세기찬송가 검토위원회 위원장

목회자에게는 ‘위를 지향하는’ 예배신학이 확고해야만 진정한 예배가 가능하
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바른 ‘예배학’과 ‘찬송가학’을 접하지 못한 채 
예배음악이 목회사역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는 점에 문제는 심각하다.

“예배음악과 예배신합 정립 절실해”

현재 우리 교회들이 당면하고 있는 이른바 개혁교회의 음악적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기독교 예배의 최고 가치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사 43:7) 
있고, 예배 음악 역시 신학적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에서
는 전혀 이론이 없다. 
그러나 각론 내지는 방법론에 들어가서는 너무나 엄청난 괴리가 있음이 오
늘 예배 강단의 현실이다. 이것은 개혁교회의 칼라까지도 변질시켜버렸다. 
한마디로 세속적 음악이라는 악화(惡貨)가 전통적인 예배음악이라는 양화
(良
貨)를 구축해 버린 것이다. 
그 결정적인 영향이 빌 하이벨스 목사가 주도하고 있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구도자의 예배’(일명: 열린예배)와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교회에서 하고
있는 ‘고객 필요 충족’의 예배에서이다. 이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닌 믿지 않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구도자의 예배’
(Seeker’s Service), 즉 어떤 형태의 음악이든 간에 인간의 감정적인 고조 
상태를 경험하여 내게 만족을 주는 것이 목적이 되는 예배이다. 

1. 예배 음악의 존재 이유

예배음악은 분명 교회음악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예배음악은 ‘예배’라
는 본질이 전제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배의 본질은 십계명 중 전반부 4계명이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제 1계
명, 참 예배의 대상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제 2계명, 참 
예배의 방법은 형상적이 아닌 성령과 진리로(요 4:24) 드려져야 한다. 제 3
계명, 참 예배의 태도는 하나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제 4계명, 
참 예배의 시간은 1, 2, 3계명의 정신이 주일의 ‘공동예배’를 뛰어넘어 엿
새 동안, 곧 전 생애가 세상 사
람들과 구별되는 ‘삶의 예배’(롬 12:1-2)
로 드려져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 
특히 제 4계명의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출애굽기적 관점과 신명기적 관
점에 따라 우리가 예배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바,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창
조사역 정신에(출 20:11), 신명기는 하나님의 구속사역 정신에(신 5:15) 감
사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즉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
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감사하여 이 날과 모
든 날들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예배해야 한다(골 3:22-25)는 뜻이다. 
따라서 이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높이는 찬송(찬
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예배음악의 혼란 원인들

그러면 개혁교회의 음악적 풍토 중에 크게 두드러진 문제점들은 과연 무엇일
까?
첫째, 예배신학에 대한 무지이다. 
목회자에게는 ‘위를 지향하는’ 예배신학이 확고해야만 진정한 예배가 가능
하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바른 ‘예배학’과 ‘찬송가학’을 접하지 못
한 채 예배음악이 목회사역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는 점에 문제는 심각하
다. 심지어 “젊은
이들이 좋아하는 세속음악을 사용하여 교회를 크게 부흥시
키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하는 혼합주의(Syncretism)가 일반화되
고 있는 추세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창 1:28)은 세속문화를 정복하여 하나님
의 나라를 건설하라는 것이지, 세속문화를 도입하거나 수용해서라도 교회의 
양적 성장을 도모하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둘째, 회중 찬송에 대한 선곡 기준의 무지이다. 
얼마 전 어떤 예배 모임 중 찬송가를 세 곡을 불렀는데 바로 내 곁에 앉은 
목사는 한 곡도 모르는 찬송이라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그
는 주일 예배에서 어떤 찬송을 선곡해 부르고 있을까, 교인들의 찬송 수준
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특히 우리 개혁교회가 ‘말씀이라는 강설에는 개혁주의적 신학을 토대로 철
저히 검증(?)하면서도 막상 찬송에 있어서는 “찬송가에 수록된 노래는 모
두 찬송가”라는, 그리고 복음성가이든 C.C.M이든 기독교적 가사이면 모두 
OK라는 기이한 선곡법이다. 
여기에 통합찬송가의 맹점이 있음을 재인식하고 개혁교회에 걸맞는 새로운 
찬송가(시편가를 포함) 
편찬을 재강조하는 바이다. 

3. 예배음악의 개선 방안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예배음악의 현실들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곧 문제점들 속에 들어 있다. 
첫째, 목회자의 예배와 예배음악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둘째, 예배신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셋째, 음악지도자의 양성과 교회별 찬송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넷째, 목회자는 성경에 대한 전문성 못지않게 문화적 관점에서 음악을 파악
하고 여과시킬 수 있는 민감한 이해력을 증진시켜야 한다(고전 9:20-22).
또한 장기 계획으로서 다섯째, 찬송가는 교리와 신조에 따라 과감하게 재편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