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탐방보고서| 쓰나미 마을에서 신음하고 계시는 하나님_박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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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탐방보고서

쓰나미 마을에서 신음하고 계시는 하나님

박상준 목사_총회협력선교사

갑자기 밀어닥친 30미터 높이의 파도가 한 순간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최
북단 반다 AZ 해변을 덮친 지 만 2년이 다 된 2006년 12월 13일 오후에, 나
는 아내와 함께 현지 사역자의 안내를 받아 쓰나미의 현장을 다녀왔다. 당연
히 바닷가를 향해 갈 줄 알았는데 차는 어느 허름한 마을로 우리를 인도했
다. 
잠시 차에서 내려 우리가 바라본 것은 4-5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선박이었
다. 마을 가운데 내려앉은 이 큰 배는 원래 해변에 띄워놓고 AZ 지역의 전
기 공급을 위해서 사용했던 배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쓰나미의 파도에 밀
려서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마을 한 가운데 와서 다시 바다로 가지 않고 주
저앉아 있게 된 것이다. 

바다에 있던 전기 공급선 마을 안으로 밀려와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 배가 크게 손상을 입지 않아서 비록 마을 가운데 밀려
와 있지만 
계속해서 전기회사가 AZ의 전기공급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행 가운데 한 분이 “지금도 저 배 밑창에 얼마나 많은 시신이 깔
려 있는 지 아무도 모릅니다”는 말에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차가 이번에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한 군부대 터로 우리 일행을 데려다 주었
다.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져 있었고 거기에는 쓰나미가 일어났던 날짜
와 그 곳에 주둔해 있었던 군부대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
고 그 뒤에 있는 다른 비석에는 그 때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죽음을 당한 군
인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기념물이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집안에 있는 화
장실 터라는 것만을 인식하게 해주는 타일을 붙인 벽돌 구조물만이 깨진 채
로 방치되어 있을 뿐 집이 있었다는 다른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군인들과 그 주변의 주민들은 300여 미터만 뛰어 가면 작은 산 위로 피신할 
수 있었는데 그 곳으로 피신할만한 단 몇 분의 시간이 없어 결국 죽고 만 것
이다. 말없이 흐늘거리는 들풀만이 그 날의 아픔을 아는 지 모르는지 세월
을 달래고 있었다. 그 후 이 곳 해안
가에서 잡은 새우들이 얼마나 살이 통통
하게 쪄 있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새우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도
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찌 동족의 부패한 시신을 먹은 새우를 먹
을 수 있겠느냐며…

쓰나미 이후 통통하게 살찐 새우 먹지 않아

나는 하나님이 그 날 그 쓰나미를 왜 일어나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
았다. AZ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
을 것이다. 자기네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무엇을 더 잘 못 했기에 피
할 길도 주시지 않고 쓸어버리셨을까 하는 원망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잃
어버린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그런데 그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데리고 그 곳에 들어간 선교사
님은 이렇게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AZ는 AZ 해방군이 그 지역을 지키고 있어서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또 다른 인
도네시아와 같은 지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은 결코 그 지역에 맘대
로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거나 거주를 할 수 없었다. 그 땅에 복음이 들어가
려면 외부의 그리스도인 사역자가 들어가서 살
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것
을 허용하지 않는 인도네시아의 아주 강력한 무슬림 공동체 중 한 곳이었
다. 

이곳은 전통적인 무슬림 공동체

그러나 쓰나미 이후로 AZ는 수많은 외부 사람들이 그 땅에 들어오도록 허용
했다고 한다. 특히 NGO 단체의 사람들이 그 땅의 무너진 주택의 잔재들을 치
우고 거기에 새로운 주택 단지들을 조성해 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들어오도
록 했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들어온 사
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쓰나미를 허락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주민들 중에는 자기 집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집을 지
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런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고 있는 주민들도 무수히 많았다. 그들은 더 이상 있을 곳도,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수십 명씩, 혹은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난민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여기 저기 자신들이 살 만한 땅을 찾아 해변가에서 거의 두 
시간이나 떨어진 산 속에까지 가서 임시로 지은 집에서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렇다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집에서 3Km까지 걸어서 오고 가야 하는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 당연히 먹을 것이 없고, 수도 시설도 마땅히 되지 않
아 온갖 염증과 피부병, 안과 질환, 치과 질환 등으로 허덕거리고 있었다. 
이 난민촌의 사람들은 100% 무슬림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슬람교를 진실
히 신봉해서라기보다는 이슬람교가 그 사회의 기본 시스템이 되어 있었기 때
문이다. 

사회 모든 구조가 이슬람화 되어 있어

마치 아무런 종교를 갖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이 그냥 불교를 믿는다 하거나 
미신을 믿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이슬람교가 잘못된 것임
을 말하면서 접근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삶의 시스템을 흔드는 세력
으로 생각하고 더 알아보지도 않고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한 예로 이들 마을에 집 한 채를 짓고 마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그
래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복음을 아이들과 관심있는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사역이었다. 그런데 무심코 들어온 한 전도팀이 
조심성없이 복음을 전하는 관계로 모든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해버리는 
일이 발생하여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그 쓰나미 난민 마을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통해 복음화하고자 하는 계획이 무산되는 일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선교사라는 사실을 계속 밝히지 않고 NGO의 한 단체로서 그 마을에 
실질적으로 유익한 시설들을 해 놓고 사람들을 오게 한 뒤 기회를 엿보아 복
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일은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런 사역이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해
서는 현지인 사역자들을 키우는 일이다. 그래서 이들을 격려하고 세워서 외
국인들에 대한 거부 반응을 느끼지 않고 무슬림들로 하여금 서서히 복음 안
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이 지역에 대한 사역의 핵심이라고 한다. 

쓰나미 이후 기도교와 접촉의 길 열려

쓰나미로 인해 마을 한 복판으로 밀려들어온 큰 배는 더 이상 바다로 나아
갈 수 없다.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죽은 시신들도 더 이상 발견되어지지 못
한 채 완전히 썩어 흙이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로 인해 닫혀
진 그 도시 한 복판에 들어오신 하나님은 자유롭게 사람들을 왕래하신다. 그
리고 여전히 아픔 가운데 신음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들과 같이 신음하시며 
도와주신다. 
나의 마음도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영혼을 보며 괴로워하고 있다. 영적인 쓰
나미가 다시 한 번 그 땅을 뒤덮을 때까지 이런 거룩한 신음은 계속될 것이
다. 

* AZ는 인도네시아 반다 지역의 이슬람 
* 박상준 선교사(동서울노회 소속 선교목사, 합신세계선교회 협력선교사)는 
오는 3월 4일 부천송내중앙교회(변재웅 목사 시무)에서 파송예배를 드리고 
인도네시아 땅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