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혁신보창사 25년특집|아시아 일곱 교회 강론<4>_두아디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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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혁신보 창사 25년 특집_4

아시아 일곱 교회 네 번째 설교 :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장 18-29절

로버트 머리 맥체인 Rev.Robert Murry M.Cheyna
역자_이강호 목사_런던갈보리교회

두아디라는 성경에 오직 한 번 더 언급됩니다. 루디아와 그 간수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에서 아주 감미롭게 언급됩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설교할 때 이들은 아마 그 장소
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습니다만 이들이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
은 바로 그 두 사람입니다. 
루디아는 빌립보 성에서 나그네였습니다. 아마 그녀가 두아디라에 머물러 있
었더라면 저 이세벨이라는 여자에 의하여 미혹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여기에 데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방식으로 회심시키십니다. 그는 나그네들에게 시
선을 두십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모든 영혼의 실들을 가지시며 영혼을 이끌
어 
의의 태양이 떠오르게 될 바로 그 지점으로 데려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중 몇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가 여러분 중에
서 나그네들이었던 몇 사람들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때때로 
한 영혼을 그 가족 한 가운데에서, 때때로 낯선 땅에서 회심시키십니다. 영
혼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곳은 그 영혼에게 항상 감미로운 곳입니다. 
에베소는 자기의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서머나는 가난했지만 부자였습니
다. 버가모는 사탄의 보좌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아디라에 이
르렀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책들을 통해서입니다. 성경
에 그곳에 대한 역사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 외에는 거
기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곳의 역사를 아시니 그의 역사
는 항상 가장 진실합니다. 
현재 두아디라에는 오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집들은 거의 진흙으로 지어
졌으며 그 도시는 터키족에 의해 점령되었고 현재 그들의 소유로 남아있습니
다. 더 이상 두아디라가 아니고 터키식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거기 
아직 몇 기독교인들이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있
었던 마지막 선교사인 파슨
스는 말하기를 아직 경건의 모양은 있고 두 교회와 두 학교가 있으며 안식일
에 모이는 그리스계와 아르메니아계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스스로 어떤 모습을 취하시는지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여러분 중에 신자들인 이들이여, 예수님
께서 하나님이심을 아는 이것,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아는 이것
이 바로 여러분에게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여러분은 그가 
모든 권세와 모든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
라.” 
여러분의 신성한 구주에게 매달리십시오. 그러나 그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시라는 것, 그가 무한하시며, 흔들리실 수 없으며, 신성하시며, 영원하신 바
위라는 이 말씀이 회심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두려운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
다. 

2) 그리스도의 “눈이 불꽃” 같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 속에 나무를 집어
넣으면 곧 불꽃이 나무를 삼켜버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돌을 집어넣으면 그
것은 그
것까지도 삼켜버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쇠를 집어넣으면 그것도 삼켜
버립니다. 아무 것도 불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눈이 그와 같으
니 그 눈이 모든 것을 꿰뚫고 파고 들어갑니다. 
제가 주님의 성찬 전에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시험하
여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하기 위해 이것을 말씀드렸고 이제 주님의 성찬 후 
하나님께서 다른 이유로 다시 여러분에게 말씀하도록 저를 여러분 앞으로 인
도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사람은 단지 겉모양만 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그리
스도는 마음을 보십니다. 그는 단지 마음을 보실 뿐 아니라 마음속을 들여다
보십니다. 그는 살피시고 통찰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소원들과 계획
들을 보십니다.” 

3) 본장 23절에서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라고 말하십니다.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께 붙어있었지만 이미 세상과 짝하고 있는 것처럼 보
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눈이 여러분을 보십니다. 그는 불꽃같은 
눈을 가지셨고 여러분을 따라가셨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기독교인인 이들이여,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일부만을 취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를 더 많이 보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땅에 계셨을 때의 그의 눈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가 예루살렘
을 보고 우셨을 때, 그가 나인성의 과부 옆에 서 계셨을 때, 그가 나사로의 
무덤에 계셨을 때의 그를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눈물
을 흘리시더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동정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가 가지신 동정, 그
분 안에 있는 무한한 동정을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중에서 그를 사
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의 두 눈은 눈물을 시내처럼 흘립니다. 그러
나 저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눈이 또한 불꽃같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
고 싶습니다. 

4) 그리스도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1장에서 말씀하기를 “그 발
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하였습니다. 자, 발이 주석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밟기 위해서지요. 이사야가 “좋은 소식
을 공포
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고!” 말한 것 같이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여러분은 좋아하십니
다. 두 마리아들이 그 발을 잡을 때 그들이 행한 것처럼, 죄인이었던 한 여
인이 행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발은 또한 자기의 원수들을 
짓밟는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미가서 4장 13절에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
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내
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재
께 돌리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들은 짐승의 발에 놋 굽을 씌어서 곡
식을 탈곡하려고 타작마당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사야 63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
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
뇨? 만민 중에 나와 함
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
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
을 다 더럽혔음이니.” 등등. 
그리고 요한 계시록 19장에는 요한이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
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이라 칭하더라”라고 말합니다. 
자, 이 모든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그리스도는 구주이
실 뿐 아니라 또한 보수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지친 영혼도 피난처
를 찾을 수 있는 큰 바위 그늘이시며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그는 “내가 너
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라고 말
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는 보수자이시기도 합니다. 그는 밟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없
는 자들을 짓밟으실 것입니다. 그들의 피가 그의 옷 전체에 묻을 것입니다. 
보수자로서 주석으로 된 발을 가지고 오시는 것보다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
을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
를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2.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에게 주시는 특성이 어떠한지 보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람들은 제게 예레미야의 무화과들을 생각나게 하니 그들 
중에 좋은 것은 극히 좋고 악한 것은 극히 악했습니다. 먼저 좋은 부분을 살
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사업[행위]을 아노니” 전에 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랑’(charity)을 말씀합니다. 성경 전체에
서 이 단어는 사랑(love)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죄인이었던 한 여인에 대해 사함을 많이 받았으므로 많이 사랑한다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많이 사랑합니까?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며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합
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은혜들 중에서 사랑이 처음으
로 언급됩니다. 나무의 싹들은 봄에 잎들이 나올 때 아름다운 초록색을 가집
니다. 그같이 사랑은 줄기에 연결된 가지의 처음 싹입니다. 
여러분은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
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 여러분은 
기독교인들을 사랑하십니까? “만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 말미암아 모
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아이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
자.” 

2) 그리고 내가 너희 사랑과 “섬김”을 안다고 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의 발을 씻
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
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여러분이 이 말씀의 의미를 아십니
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여러분 중에 일백년 동안 생각할지라도 그것을 알아낼 
수 없을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너희
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사
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알리라.”
그리고 다시 내가 너의 “섬김과 믿음”을 안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섬김을 믿음 앞에 언급하시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섬김
을 여러분이 많이 가질수록 많은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정당합니다. 나
무가 크게 자랄수록 뿌리는 더 멀리 뻗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깊이 땅을 붙
잡습니다. 
그같이 여러분이 사랑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행할수록, 더 많은 믿음
을 가지게 됩니다. 그같이 더 깊은 뿌리를 가지게 됩니다. 

3) 그리고 너희 “인내”입니다. 선원이 바위에 매달려 있고 파도가 이리저
리 치며 그를 떼어내려 할 때, 그는 더욱 인내하며 바위에 더욱 바짝 붙으려
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같이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의 검은 파도들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그들이 바위를 붙잡고 있을 
때, 파도들이 와서 그들을 떼어내어 소용돌이 속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이것
이 여러분으로 무엇을 하게 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으로 더욱 인내하게 만듭
니다. 그것이 여러분으로 여러분의 바위이신 분을 더욱 꽉 붙잡도록, 그리스
도께 더 바짝 매달리게 합니다. 끝까지 인내하게 만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우리의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낫습니까? 우리는 지난 성례를 마친 후보다 이
번 성례를 마친 후 더 많이 행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제가 알기로서는 여러분 중에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
다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고 그리스도께서 속히 회개하고 처음 행위
를 가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구주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너의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말씀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욱 복되겠습니까? “그
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
지 말고 오직 우리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니라.”

3. 이제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책망하셔야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여자의 남자를 가르치는 것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
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은 여성이 가르쳐서
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으로 가서 어린아이
처럼 편견 없이 읽으면 여자는 가르치지 말고 집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입니다. 
이 이세벨은 악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자,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합
니까? 그들이 그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종들을 꾀하
려고 하는 이세벨들은 없습니까? 여기에서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을 언급하
겠고 저는 미혹되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그것을 언급하고자 합니
다. 
우리는 최근에 주님의 만찬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었습니까? 아닙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오라토리오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으면 좋겠습니
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몇 구절들을 취해서 그것들로 음악을 만들고, 그것들
은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불립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들, 신자들에게 생명이 되는 그 말씀들을 
취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것을 외면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앉아서 주님의 잔을 받고 그리고는 가서 귀신들의 잔
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전에 앉아 있었는데 가서 우상의 전에 앉
아 있을 수 있습니까? 
“또 내가 그에
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을 아
십시오. 여러분 또한 회개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그가 무엇을 하려시고 합니까? “내가 사망으로 그 자녀를 죽이
리니.” 사망으로!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요! 

4. 그러나 이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우리 싸웁시다. 기독교인들
답게 아무 사람도 두려워하지 말고 전진합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말씀
을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일을 끝까지 지켜
야 합니다. “내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
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를 보좌 위에 앉히리라”고 말씀하시고 또 그가 
“너희가 천사들을 심판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실 때 저는 이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것이 다만 큰 영광이 되
리라는 것 밖에는 이것이 무엇인
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급입니다. “내가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이 별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 발람이 말합니
다. “야곱에게서 별이 나오고 이스라엘에게서 홀이 나오리라.” 동쪽 하늘
에서 샛별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곧 날이 밝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같이 우
리가 새벽별(샛별)이 어떤 영혼 위에 떠오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 영혼
에 대해 말합니다. “곧 새벽이 되겠군. 날이 곧 밝을 거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로 자신인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
다. 그가 생명나무를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그 자
신입니다. 그가 감추었던 만나를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신다고 하시는데 그
것은 감추었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그는 “새벽 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의 구주이신데 우리가 다른 세상의 영역에서 영광 중 그와 함께 설 그때에, 
밤이 없게 될 때에, 오직 낮만 있게 될 때에, 그때에도 우리의 구주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벽 별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