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이스마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창세기 16:1-16_김영재 목사

0
9

지|상|설|교

“이스마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창세기 16:1-16

김영재 목사
·합신교수
·화평교회협동목사

시작하는 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했고 이제는 낳을 수 있는 희
망도 사라졌으므로 아브라함에게 대를 잇는 아이를 얻게 하기 위하여 남편으
로 하여금 자기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시키
는 대로 여종을 취하였습니다. 하갈이 아이를 배자 우쭐하여 자기 여주인을 
멸시했습니다. 사라는 괴롭고 분한 나머지 아브라함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
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는 사라의 말은 
아브라함이 자기의 말을 믿고 자기의 권리를 인정하든지 아니면 하갈이 그의 
자식을 가진 여자라고 그를 두둔하여 감싸든지 하나님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한
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하갈이 아기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종이니 당신이 알아서 거느리라고 말했습니다.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므로 하갈이 사라에게서 도망하였습니다. 광야의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여주인에게
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으니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
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하갈은 자기
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뵈었다고 해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하갈은 사라에게로 돌아가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마엘 

창세기 21장에 보면 비슷한 사건이 다시 전개됩니다. 사라가 하나님께서 아브
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후사 이삭을 낳은 후였습니다. 아이가 젖을 뗄 때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사라가 본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
므로, 즉 아마도 함부로 다루므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29에 보면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
를 핍박한 것 같이”라고 하여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한 
것으로 말씀합니
다. 사라는 종의 아들이 자기 아들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
에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치기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래도 이스마엘이 자
기 아들이므로 그 일로 인하여 깊이 근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식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
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6장에서도 그렇습니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정이 없다거나 자비심이 없다거나 하면서 나무라
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고 하리라’ 하는 
것을 다시금 확인 시켜주시면서 그러나 이스마엘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
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
에 메워 주고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다가 가죽부대의 물도 다 떨어졌습니다.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고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하갈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두
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니 일어나 아이를 일
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
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바로 옆에 샘물이 있음을 보게 되
었습니다. 그는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아들로 마시게 했습니다. 이스마엘
은 궁사가 되었으며 이집트의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12 아들들이 다 그들의 
이름을 딴 지역을 다스리는 방백이 되었습니다(25: 12-16). 

2.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16장 본문의 말씀을 두고 사람들은 구약시대의 일부다처주의에 관해서도 물
을 수 있고 사라의 심리를 추리하거나 하갈과의 갈등 관계를 논함으로써 일부
다처주의가 구약 시대에 허용된 것이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정도(正道)
는 아님을 알 수 있다는 등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토판에 보면 사라가 여종을 남편에게 준 그런 일은 흔히 있
던 풍속이라고 합니다. 하긴 이런 이야기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나라 사회, 아
니 50-60년 전의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도 흔히 있던 일이어서 별로 낯설
지 않은 얘기입니다. 좀 괜찮
게 사는 사람이면 소실을 두거나 첩을 두는 것
이 예사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자녀를 낳은 소실이나 첩은 당당해져
서 정실부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사회에서 정실부인의 권위는 사회적으로 보장을 받았습니다. 양반
의 가문에서 정실의 자녀 아닌 첩에서 난 서자는 양반 행세를 할 수 없었던 
것 역시 정실부인의 권위와 적자의 권리가 얼마나 컸던 것임을 말해 주는 것
입니다. 씨받이의 경우는 아기를 낳아주면 그것으로 끝나고 생모의 권리는 전
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본문에서 사라와 하갈의 갈등 관계를 두고 어떤 결혼 윤리
나 사회 윤리에 대한 교훈을 찾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줄 압니다. 윤리적
인 교훈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
입니다. 거기에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어려운 지경에 처하여 울부짖는 고통을 들으신다는 뜻을 가
진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살길을 주셨습니다. 선지
서에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이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처지에 있
는 사람을 돌보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찍부터 특히 고아들
을 돌보는 일을 시행했습니다. 3, 4세기에 목사관에서 파밀리아(familia)가 
시작되었으며 교회는 버려진 아이들을 양자로 삼도록 권장했습니다. 기독교
화 된 국가는 그런 일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제정하여 뒷받침했습니
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도 서양의 기독교인들은 고아들을 양자로 삼
고 사랑을 실천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사랑을 실천하
려고 지체부자유 아이들을 양자로 삼거나 그들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3. 언약 밖에 있는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앞에서 처음부터 혹은 12장부터 
전개되는 전체의 흐름에서 살펴보면 윤리적인 교훈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진
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
하여 부르시고 약속하시는 언약과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구원 역사의 관점
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15장 서두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신은 자식이 없으니 자기 집에서 자란 자
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
고 여쭈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말씀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7장 이전에 있는 말씀에서는 어디서도 사라에게
서 난 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사라가 정실부인으로서 발휘하는 권위와 권리를 보아서는, 다시 말하면 
당시의 사회적인 관습을 보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실 
때 특별히 사라에게서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그 후사는 올바른 결혼 관계
에 있는 사라를 통하여서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마련이었습니
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으므로 언약에 대한 
믿음이 흐려져서 그랬든지, 아니면 너무 조급해서 그랬든지 아브라함이 하갈
과 관계를 가졌고 하갈은 그의 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식은 언
약의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6장에서 우리로 깨닫게 하는 것은 하나님
의 언약 밖에 있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구약성경은 야곱의 이야기에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즉 언약의 자손
들의 역사를 다룹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
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행하는 도중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
셨습니다. 구약에서 민족들의 구도는 선민인 이스라엘과 비 선민인 이방 백성
들로 이분화 되고 있으며 이방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
다.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선민으로서의 역사이며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
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선민이고 나머지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과는 거리가 먼 이방 백성입니
다. 
여기 16장에서 우리는 하갈의 고통을 들이시는 하나님, 하갈과 이스마엘이 곤
경에 처해 있을 때 살길을 열어주시며 장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언약
의 백성 곧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다른 이방 백성들도 돌보
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구상에 여러 종족과 
우리 민족을 포함하는 여러 민족들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누리며 살아 왔
고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4. 이방 백성에 관심을 보이신 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선민이므로 특별히 사랑하셨으나 
그렇지 않은 
이방 백성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베푸
시는 관심 못지않게 이방 모든 백성에게도 관심을 베푸십니다. 아모스서 1장
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그들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
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는 것과 같이 징계하고 벌하신다
고 말씀하십니다. 징벌은 같이 받으나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통하여 징벌의 의
미를 알지만 주변 나라들은 그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보내어 니느웨성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요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노여움
을 거두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종교적인 회개는 
아니고 도덕적인 죄를 뉘우치고 바르게 살겠다는 회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약 밖에 있는 이방 백성들에게는 일반 은총만 베푸시
고 특별 은총, 즉 하나님의 구원을 뜻을 알 수 있는 은총, 하나님을 알고 하
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은총은 전혀 닫으신 것입
니까? 구약 성경에는 언
약 밖에 있는 백성에게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흔적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런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에 나오는 우스 땅의 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으며 그를 위로하러 와
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며 욥과 주거니 받거니 토론을 벌인 
사람들, 즉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 역시 
언약의 자손 이스라엘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가나안에서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혹
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찾아와 경배를 드
린 동방의 박사들 역시 이방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디아스포라, 즉 흩어
져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예언서를 접하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
며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5. 모든 민족에게 개방된 하나님의 복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난 이스라엘 백성
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
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셔서 하
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할 때 징계
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
할 때 벌하시는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으신 옛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하여 새 언약을 주시며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역사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사랑하신 것
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
운데 당신의 뜻을 특별히 보이시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방 백성을 구원하시
려는 사랑과 열심을 병행하게 가지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
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의 백성의 모델로 선택하여 당신의 구원의 경륜을 
보이신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
리스도를 보내셔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

는 복음을 믿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아랍인이나 차별이 없이 누구나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구원의 길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사상에 젖어 하나님을 자기들만을 위하는 하나
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민사상에 찌
든 요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피해보려고 하다가 
바다에 던짐을 받아 큰 고기에게 삼켜 사흘 낮과 밤을 고기 뱃속에서 지내며 
자신의 불순종을 회개하였습니다. 그후 이방 나라의 수도 니느웨에 이르러 백
성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니느웨 백성
들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회개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사상은 공고했으며, 지금도 여전한 줄 압니다. 예수님
의 제자들도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으
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각 나라 방언으로 설교도 했으나 이
방인에게도 하
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습니
다.
제자들은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이 믿으므로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것임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선민사상
은 굳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
하시는 것을 그 이전까지는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방 백성들이 비록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아닌 신을 섬기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며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치는 말

로마서 11장 30절 이하에서 바울은 선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므로 
구원에서 제외되고 대신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하게 된 사실을 말하면서 인
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깊
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
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밖에 있는 하갈과 이스마엘
을 그들대로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 그들의 앞길에 복을 주셨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을 아니 땅위
의 만백성들을 언젠가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의 역사에 같이하시고 당신을 뜻을 나
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
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역사 속에 오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사
랑과 구원의 경륜을 헤아리며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이 기
쁜 소식을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기원합니다. 유대 땅에 아기로 태어
나신 예수께서는 영혼을 구하는 주님이실 뿐 아니라 만민에게 빛이신 분입니
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신 아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이실 뿐 아니라 구원으로 부름
을 받아야 할 만백성의 주님이시고 구속을 고대하는 만물의 주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