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_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 송월교회 김형근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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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현장탐방 _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

 

“겸손으로 섬기고 충성한 장로”

송월교회 김형근 원로장로를 만나다

 

김형근 장로 가정
김형근 장로, 문연화 권사
군부대교회 시절 특송
김형근 장로 은퇴식
은퇴식 답사

 

섬기는 장로의 인생

어느 분야이든 인생의 본을 삼을 만한 인물의 영향력은 중요하다. 본보는 애써 기회를 만들어 지역 교회의 직분자로서의 본을 보이는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을 종종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는 합신 전국장로회연합회(전장연)의 추천을 받아 오랜 역사를 지닌 송월교회에 먼저 주목하였다.

1953년에 김명국 목사를 통해 설립되어 2019년 올해 66주년을 맞은 인천 송월교회(박삼열 목사 시무)에는 많은 직분자들의 표상이 있다. 바로 김형근 원로장로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4월의 끝에 송월교회를 찾았다. 자유공원 언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싱그러웠다.

얼굴에 평안한 미소를 머금은 김형근 장로는 겸손한 자세로 반갑게 일행을 맞아 주었다. 그는 1957년 11월 고 박도삼 목사가 송월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듬해 4월, 군에서 전역한 후 근처 송월교회에 등록을 하였는데 실은 전역 직전 휴가 때 참석한 예배에서 박도삼 목사의 빌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느니라”는 설교로 큰 은혜를 받았던 터였다고 한다.

당시 박도삼 목사와 온 성도들의 헌신으로 송월교회는 나날이 부흥 성장하는 중에 있었고 그는 1961년 서리 집사로 임명 받아 8년간 봉사하고 1968년 10월 9일 장로 장립을 받았다. 이후 36년간 시무하다가 2004년 11월 14일 은퇴하였고 원로장로가 되었다.

 

처음 믿음과 믿음의 성장

김 장로는 1934년 황해도 옹진군 용천면 마합리 농어촌 마을에서 2남3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직전 1944년 어느 젊은 부부집사가 이사를 오면서 우상이 많던 마을에 복음전도가 되었고 어린 시절 그저 친구들 따라 교회를 다녔다 한다. 그러다 차츰 은혜를 받아 믿음이 성장하였고 학습을 받았다.

그 후 군에 입대하여 참혹한 6.25 전쟁을 겪었고 유격대로 활동하다 휴전이 되어 을왕리 근처 지포리 해변에 천막을 치고 주둔하였을 때 주일과 수요일에 현지의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해 성탄절에 신자인 군인 형제들이 성극을 준비하여 공연했는데 주민들까지 교회당 안팎에 꽉 차서 성황을 이룬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유격대를 마친 후 1954년 현역으로 옮겨 군인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인사계를 거쳐 수색중대 본부에서 근무케 되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58년 전역 때까지 3년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군종과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좋은 상관들과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얻었고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할 수 있었다 한다. 그때 그의 신앙은 많이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김 장로는 말한다.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주일이 되면 사병들이 예배를 마치고 후에 자기 근무지로 바로 가지 않고 막사에 들어오곤 했는데 식사가 문제였다. 취사병들에게 선물을 주면서까지 사정하고 잘 부탁하여 배식을 2인분 이상을 더 받아 와서 막사에 남은 사병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주일 낮엔 함께 근무하던 일병과 나는 식사를 하지 못해 원치 않은 금식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밥을 양보하고 주일 오후에 그들과 신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고 한다.

누군가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김 장로의 성품과 행실이 그때부터 더욱 습관이 되고 삶의 자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동안 송월교회에서 서리집사, 시무장로, 그리고 그 와중에 교회 회계, 유년주일학교부장, 성가대원, 재정부장, 회계부장, 상근 사무장으로 22년, 그리고 인천개혁신학교 상근 총무처장, 합신 전장연 회장, 경로대학학감, 합신 총회 부총회장 등, 교회 안팎에서 여러 섬김의 일들을 경험하였다. 심히 무능하고 부족한 나에게 이런 고귀한 직분들은 사실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늘 새벽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이 일을 잘 감당하도록 전적인 은혜를 주셨다. 나는 인생의 가장 큰 복이 교회와 목회자를 잘 만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부족하지만 좋은 교회와 목사님들을 만났다. 송월교회와 고 박도삼 목사님, 그리고 지금의 박삼열 목사님이시다. 내가 2004년 11월에 시무 장로를 은퇴하면서 가장 크게 감사한 부분이 바로 그 점이다. 나 같은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어찌 이런 만남의 큰 복을 받았는가?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릴 수밖에 없다.”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

김 장로는 “그렇게 변변치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한 교회와 목사님을 꾸준히 섬기며 헌신하고자 애썼더니 하나님은 우리 가족에게도 복을 주셨다.”고 했다.

모두 출가하여 사는 3남 1녀에 손자손녀가 모두 7명이다. 자녀들은 모두 송월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장학금을 받는 등 각자의 소질대로 꿈을 펴게 해 주셨다 한다. 교육비가 모자란 때에는 부인 문연화 권사(송월교회 은퇴권사)가 삯바느질까지 한 일도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점을 미안해하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한다.

장남 김광호 안수 집사와 자부 최순희 권사, 삼남 김광인 안수 집사와 자부 류계숙 집사, 장녀 김혜진 집사와 사위 윤주경 집사 가정이 모두 자택에서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송월교회에 출석하여 성가대 주일학교교사 해외선교부 등에서 헌신하고 있다. 차남 김광희 집사와 자부 최유실 집사 가정만 미국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김 장로의 대를 이어 한 교회에서 시무 장로 직분을 받는 것도 기대할 만한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김 장로는 “자녀들이 직분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얼마나 성숙하게 유지하느냐라고 본다.”며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귀한 직분으로 헌신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겸허히 말했다. 이런 삶의 자세는 역시 은혜 중심의 김 장로의 평소의 지론과 믿음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직분자들의 귀감

김 장로는 말한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고백했듯이 나 또한 그 말씀대로이다. 나는 다만 부족한 대로 장로의 본이 되고자 기도하며 몸부림치고 애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좀 더 충성되지 못한 점이 송구하며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다. 후배 장로님들이나 안수집사, 직분자들은 나보다 더욱 더 충성되이 잘 감당하시길 기원한다.”

특히 김 장로는 요즈음의 신앙인들과 직분자들의 헌신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따뜻한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후배 장로님들이나 직분자들이 모든 면에서 우리 시대보다 더 지식도 많고 열심이 있고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굳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박도삼 목사님이 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리한 비판이 먼저가 아니라 아론과 훌처럼 목회자를 섬기고 돕는 보필자가 되라는 것이다. 목사님을 신뢰하고 고충을 이해하는 중에 내가 내린 ‘교회 직분자의 사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그렇다. 담임 목사님이 어떤 안건을 당회에 내 놓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기도하며 내놓은 것이라 믿고 일단 긍정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론과 훌은 모세가 요구하니까 마지못해 그의 두 팔을 받들고 봉사한 게 아니다. 모세가 말하기 전에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김 장로는 “어떤 직분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덕과 화목이다.”며 “직분자들이 일반 성도들보다 먼저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그 직분이 결코 본인과 교회에 덕과 복이 될 수 없고 주님의 교회도 든든히 설 수 없다.”고 강조한다.

 

주변의 평

한 사람의 삶과 믿음은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것이 영향력이요 감화력일 것이다. 김 장로에 대한 주변의 느낌들은 어떨까.

1992년 10월에 송월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여 김 장로와 오래 동역한 박삼열 목사(합신 증경 총회장)는 김형근 장로에 대해 “일평생 한결같은 분이다. 지금까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셨고, 고 박도삼 원로 목사님과 더불어 송월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김 장로님은 은퇴 후에도 겨울에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이른 새벽 캄캄할 때 성도들이 새벽기도회 오기 전 미리 눈을 쓸곤 하셨다. 또한 평생을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으시고 내외분이 모두 기도에 열심이고 충성스러운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고 목회자들에게는 언제나 배려와 충성을 아끼지 않은 분이시다.”고 칭찬한다. 박 목사는 덧붙이기를 “히 13:7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는데 교회의 궂은일들을 맡아 늘 말없이 헌신하신 김장로님은 이 시대의 신앙인들 모두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범이시다.”고 말했다.

합신 증경총회장인 김정태 목사도 “고 박도삼 원로목사께서는 자주 송월교회 장로님들을 소개하며 칭찬하셨는데 그 중의 한 분이 김 장로님이시다.”면서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잘 협력하며 보필한 아론과 훌처럼 교회의 담임 목사님을 잘 보필하시고 전장연 회장과 부총회장 직을 맡았을 때도 모든 일을 조용하고 침착하게 원만히 다루고 항상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함으로 충성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했다.

나택권 장로(호산나교회)는 2010년에 출간된 김형근 장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라는 저서의 축시에서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 끝없이 공부하고 가르치고 돌봄을 / 생활화하는 김형근 장로 / 이런 까닭에 사람들이 모이고 / 갈증을 해소하고 새 기운을 얻는 / 우물가에 모인 사람들처럼 /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마음이 깊은 장로 / 더 표현할 수 없는 김형근 장로 / 이 분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 이 사람이 있어 사는 맛이 났습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송월교회를 거쳐간 부교역자들 또한 “’교회에 가까이 사는 것이 성도들의 복이다.’라고 늘 말하면서 송월동을 떠나지 않고 좋은 집 마다하며 허름한 건물에 내외가 살면서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장로님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기독교개혁신보사장 황인곤 장로는 김 장로에 대해 “전장연 장로님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 장로님으로 김 장로님을 꼽는다.”면서 “후배 장로님들에게 본이 되는 장로님이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감사의 제목이다.”고 했다.

 

김형근 장로의 섬김의 삶이 주는 메시지

인생의 황혼기에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뜨겁게 달구며 사는 김형근 장로. 그가 대화 중에 거듭 강조한 것은 겸손과 충성과 긍정적인 마음과 새벽기도를 포함한 기도 생활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정에 주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복락들을 자랑삼아 열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반복하여 말했다.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중요하다고 몇 번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그 은혜만 의지하며 그에 감사하는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일 터이다. 갈수록 신앙의 열기가 식어가고 좋은 직분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김형근 장로의 말은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주제일 것이다.

 

* 김형근 장로는 교회는 물론 지역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아 2006년 인천시장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 있다.

_ 취재 및 대담 |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