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사 제도 허용할 수 없다 (2)_서창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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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목사 제도 허용할 수 없다 (2)

“남성과 여성의 신분적 평등과 목사 안수는 다른 문제”

서창원 목사/ 삼양교회

1.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것만이 남성과 여성이 신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평
등하고 동등한 것인가?

여성안수 허용론자들은 그 길만이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한다. K 교수의 지적처럼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교회가 
더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여성들이 성
직에 전혀 나서지 않았을 때에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왕성하게 성장을 했는가? 

작금의 교회성장 추세를 보자. 그토록 탁월한 여성 인력들을 전면에 내세우
고 있는데, 예전에 비해 여성 목사들과 장로들이 그렇게 많아졌는데. 교회가 
더 활력이 넘치고 주님의 교회로서 교회의 역할을 더 잘 감당하고 있다는 증
거가 어디에 있는가? K 교수에 따르면 예수는 문화적인 양보 때문에 오직 12

제자만 택하였다고 했다(목회와 신학, 2004년 5월호, p. 64). K 교수의 주장
대로 갈라디아서 3:28절이 그야말로 동등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차
피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인데 유대인들의 문화를 거역하는 일을 그 
전능하신 분이 왜 못하셨는가? 

성령의 능력은 문화와 전통과 관습을 다 뛰어넘는 것이다. 복음의 효과적인 
열매를 위해서 문화적 양보를 하셨다는 것은 신학자의 궤변이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게 될 제자들임을 뻔히 아시는 주님께서 처음부터 남녀 동등
성을 주장하시며 사역의 동등성과 같은 중요한 가르침을 왜 문화적인 영향력 
때문에 양보하였겠는가? 그가 12사도 속에 여성을 넣지 않은 것은 성직에 있
어서, 교회 조직에 있어서 여성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 놓여 있는 존
재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주장이나 사도 바울의 주장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 바른 가르침이다. 

교회에서 성직을 여성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남성과 여성의 성
적 차별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하나님이 하시지 않
은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세우시지 
않은 일, 그리고 더구나 갈라디아
서 3:28을 그토록 확신 있게 주장하는 사도 바울도 그를 따르는 그 많은 여성
들 중에 공식적으로 교회 지도자로 안수하여 세우거나 임명한 일이 없는 것
을 우리가 무슨 권위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일부 교회와 K 교수와 같은 신학자들이 예수님과 사도들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인가? 사도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우리가 해도 된다고 위임해 준 일
이 어디 있는가? 교회의 모든 구조와 가르침 및 예배가 다 기록된 말씀, 즉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라야 한다.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나 세상의 흐름에 편승
한 제도개선이 가능하다면 성경이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2. 부활소식을 전한 여성들, 선지자로서 예언하는 일들을 한 여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복음의 메시지, 하늘나라 가르침을 듣고 배워서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는 일
은 남녀가 따로 없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
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 3:7). 

구원의 은총에 여성들이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면 구약
에서부터 명백하게 나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에서 보듯 남녀노소가 다 홍해를 건너갔다. 
율법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전승으로 인하여 여자들을 제외시킨 것이
지 그 유명한 쉐마 교육 헌장이 내포하고 있듯이(신명기 6장) 남자아이나 여
자아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주의 말씀 혹은 토라를 가르
치고 강론할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혁명적인 일을 하신 것이라기보다
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마리아를 남자들과 함께 예수의 발 밑에 앉아서 가
르침을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성을 사도의 숫자에 끼이게 되도록 나아간 것이 아니다. 사
도들도 가룟 유다 대신에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인을 사도 수에 가입시킨 
것이 아니었다. 복음의 은총은 차별이 없어도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심에 있
어서 직분 수여 문제에 있어서는 분명 구분을 하신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그 부활의 첫 소식을 여성에게 허락하셨는가? 복음의 
증인, 혹은 부활의 증인은 K 교수의 지적한 대로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일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허용한 것은 복음의 
증인은 이
미 요엘서에서 예견한 대로 예수를 주로 믿고 섬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임하
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내주하신다. 그것이 말씀 선포자인 설
교자로서 자격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증인이지만 모두가 
다 사도요 선지자요 전도자인 것은 아니다. 즉 공교회 앞에서 여성을 설교자
로 세우시는 것이 아닐지라도 일상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역할
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3. 바울 사도는 장로도 집사도(딤전 3:12) 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은 공교회 앞에서 하는 일이다. 예수께서 복음의 효과
적 설득을 위하여 단지 문화적 양보를 하셨다고 말하면서 복음의 분명한 역효
과가 남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것은(목회와 신학, 2004년 5월호 p. 61)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지시대로 부활의 메신저가 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이야
기를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 빈 무덤을 직접 확인하였다. 그리고 후에 제자들
에게 나
타나신 예수를 만나 뵙고 부활의 증인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사실을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고하라고 하였지
(요 20:18) 이 사실을 만민에게 선포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이 아니다. 
여자들은 공식석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나선 적이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눅 24:9-10).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해서 여성들의 설교 사역
을 인정했다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고린도 교회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직 성경의 정
경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령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임하여 기도하고 
예언을 하는 특별한 은사들을 사용하신 점이다. 그 때 무질서하게 여성들이 
나서게 되는 상황을 사도 바울이 질서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고린도 전서 11
장의 내용이다. 

여성들이 교회 앞에서 잠잠하라는 것은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요 남성과 
천사들의 권세 하에 있는 자들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신약 성경
에 분명 여성들 중 선지자들이 있다. 빌립의 네 딸들이 그러하며(행 21:9) 아
기 예수를 기다리던 안나 할머니가 그러하다. 후자는 구약의 
연속선상에서 이
해할 때 미리암을 비롯하여 훌다와 드보라와 같은 여 선지자들의 활동으로 이
해한다면 신약에서 선지자들이라는 공식적 칭호가 전자에게 주어진 것은 틀림
없다. 

빌립의 네 딸들이 무슨 예언을 하였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
인가? 학자들의 의견이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해석되어 온 것은 남자 사역자들
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들이 사역자로 나설 이유가 특별
히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여성들도 할 수 있
다는 말인가? 그것이 일반적인 규범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말하
게 하시면 여자만이 아니라 누구도 할 수 있다. 발람 선지자를 태우고 간 나
귀도 말하지 않았는가? 

공교회가 조직된 이후, 특히 성경의 정경이 완성 된 이후에 계시가 주어지는 
특별한 예언이나 방언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린도 전후서
가 기록된 연대는 대체로 주후 56년경으로 본다. 그리고 바울의 목회서신에 
해당되는 디모데 전후서를 기록한 연대는 사도행전 28장 이후의 사건으로서 
바울의 죽음을 앞에 둔 때로 본다면 주후 65년 이후라고 말
할 수 있다. 이 때
는 이미 신약교회가 그 틀을 다 잡아가고 있던 때이기 때문에 안정된 상황에
서 교회를 어떻게 목회하여야 하는지를 다룬 그의 서신에 교회 직분자들을 다
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지하는 것처럼 장로직이나 혹은 감독직에 여성을 언급한 적
이 있는가? 도리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조항은(딤전 3:2) 분명 여성
에게 허락하지 않은 직분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석의 논
란이 있는 “여자들도”(딤전 3:11)라는 문구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 
감독을 의미한다면 굳이 그렇게 불분명하게 표현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날 때에 오라고 한 장로들 가운데는 여성이 하나도 
없었다. 더욱이 바울이 그토록 애지중지 여기고 동역자로(행 18:2)까지 간주
한 브리스길라도 장로로 세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 바울이 여성 편력자가 아
니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의 목회서신에 장로도 집사도(딤전 3:12) 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교회의 직책에 있어서
는 남녀의 기능적 차이에 대한 구분이 분명하다는 점
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디모데 전서 2:11-12절은 분명 엄청난 모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