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1절에 대한 이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0
27

<히브리서 11장 1절에 대한 이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 광 호 목사/ 실로암 교회

OOO목사님, 잘 지내시리라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1에 나오는 “믿음은 바라
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에 대한 저의 해석을 알고 싶어한다고 하셨지요? 
우리교회에서는 마침 지난 몇 달간 히브리서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요즘 11
장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도 히브리서 11:1의 “믿음
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자주 묵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몇 가지 일반적인 해석과 더불어 저의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
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공간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즉 현재 여기 있는 ‘나’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
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말하고 싶
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의 주체가 신앙하는 인간이라고 이

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자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인간의 신앙적 결단과 그에 대한 지속적인 정신활동을 믿음이라고 여기
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
음’이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생
각이 될 수 없습니다. 칼빈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의 말은 옳습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라면 인간의 내면에
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스스로 발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하
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선물(엡2:8)임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인간 
스스로는 그 믿음을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선물
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
로 말하는 정신작용으로서의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인 믿음으
로 말미암은 내면적 신앙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
도들에게는 고백적인 삶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의 삶마저도 인간의 결단과는 차이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결과
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11:1에 기록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의 의미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려볼까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때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제가 ‘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적어
도 히브리서 11:1에서는 믿음을 공간적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시간적(역사적)
으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히브리서 11장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하게 인
정받은 구약의 여러 믿음의 선배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바
라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바라던 것은 창세기 3:15에 기록된 그 여
자의 후손’과 그 이후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자손’ ‘그 사람의 아들’로 묘
사되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언약 가
운데 은혜로 소유하고 있었던 ‘믿음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에서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
상이 아
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 가운데서, 구약성경의 의미와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했던가 하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구약시대에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이 바라던 것은 장
래에 오실 그리스도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1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에서 그 ‘실상’은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라는 여러 단어들은 용례상 다
양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믿음
은 인간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신앙적 결단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
터 주어지는 언약과 선물로서 본질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
해 실상으로 드러났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몇 구절을 살펴본다면,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
시게 못하나니”라는 구절에서 ‘믿음’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정신적 결단
으로서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리고 13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
음’을 말하고 있는데, 그 믿음 역시 인간의 마음에 형성된 정신작용으로서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거하여’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는 ‘언약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가 그 바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1:1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구절과, 
11:39의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
하였으니”라는 구절을 잘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
이 ‘약속’을 받기 전에 ‘증거’를 가지고 살았는데 그 가운데 그들이 바라
는 ‘실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1:40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은 역시 앞에서 언급한 10:1의 ‘장차 오는 좋은 
일’과 조화되는 내용입니다.

이 정도로 저의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해석을 듣지 않아도 
목사님께서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과 

목사님의 이해하는 바를 잘 확인함으로써 올바른 말씀의 깨달음에 이르시기
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