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밝힌 각성 운동자들”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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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밝힌 각성 운동자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 한복협 회장, 합신 명예교수)

시대가 어두워질 때마다 시대를 깨우고 밝히는 각성 운동들이 일어났다. 지
금 우리는 하나의 어두운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정치, 경제적 어두움 뿐 아
니라 윤리적 및 영적 어두움이 이 시대를 캄캄하게 만들고 있다. 극단적인 이
기주의와 배금주의로 부모와 자식과 남편과 아내가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들
이 발생하기도 했다. 급기야 국가 부도적 경제 위기도 맞았고 지금은 극단적
인 동서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온 나라가 분노와 분쟁과 분열에 휩싸여 
있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각성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 및 경제 구조의 개혁과 
아울러 의식의 변화와 영적 및 윤리적 각성이 일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
는 것이다. 영적 각성은 진정한 회개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삶의 개혁으로 
이어지곤 했다. 진정한 각성 운동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과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일어나
서 밤과 같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곤 했다.

1. 독일의 밤을 밝힌 각성 운동자 슈페너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150여년이 지난 독일은 영적 및 사회적으로 캄캄
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사변적 교리 논쟁에 기우러 
졌고 예배는 형식에 그쳤으며 교인들은 설교 시에 잠자는 것이 예사로운 일
이 되었다. 1648년에 그친 “30년 전쟁”은 독일을 극도로 황폐하게 만들었
다. 도시와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굶어서 
죽은 시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든 지 158
년이 되던 1675년 독일에는 어두움을 밝히는 하나의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즉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 야콥 슈페너가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헌장이
라고 할 수 있는「경건한 소원」이란 글을 발표하므로 하나의 각성 운동을 일
으킨 것이었다. 
슈페너는 교회와 사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묘사했다. “그리스
도의 보배로운 몸이 지금 고통과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의 질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위한 뜨거운 기
도를 하나
님께 드리면서 치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비
참상이 너무나도 심각하고 위태로운 형편입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죄와 
방탕 가운데서 살고 있고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의 생활은 세속적 풍습에 빠져있고 육체적 쾌락과 안목의 정욕을 추
구하며 교만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만을 찾아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기고 음모만을 꾸미고 있지 않습니까? 설교자들은 성령의 사역
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인간적 노력에 의해서 성경의 문자만을 조금 
배웠고 옳은 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리고 설교하는 것까지도 배워
서 알지만 그러나 참된 하늘의 빛과 신앙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콥 슈페너 한 사람의 각성의 탄식과 회개의 기도와 개혁의 제안은 독일 교
회 안에 즉각적이고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슈페너는 300통 이상
의 편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이 그의 각성 운동을 지지하는 편지들이었다. 튜빙
겐 대학의 신학교 교수들은 슈페너가 제안한 개혁 방안을 공적으로 찬양하며 
지지하기까지 했다. 독일 안에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회개 운동
과 성경공부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또한 윤리적 각성으로 이어졌다. 고아
와 과부들을 돌보는 일과 병자들을 돌보는 사랑 실천 운동이 일어났다. 영적 
각성 운동은 선교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 경건주의의 모라비안 선교 운
동은 현대 선교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2. 영국의 밤을 밝힌 각성 운동자 웨슬레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200여년이 지난 18세기 초엽 영국은 영적 및 사
회적으로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18세기는 이성의 세기로 
18세기 초 영국의 기독교는 자연신교의 영향을 받아 하나의 이성적 연구의 대
상이나 결코 “신비롭지 않은” 하나의 “자연법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회는 부도덕과 무질서와 가난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든 지 210년이 되던 1729년 영국에는 어두움을 밝히
는 또 하나의 각성 운동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즉 영국 복음주의 각성 
운동의 주역이 된 죤 웨슬레가 1729년 “거룩한 모임”(Holy Club) 이란 모임
을 만들어 촬스 웨슬레를 비롯한 몇몇 동지들이 주일 저녁마다 (나중에는 매

일 저녁 마다) 함께 모여 성경 공부와 기도에 열중하며 “초대 교회로 돌아가
자”는 각성 운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저들은 규칙적으로 희랍어 성경을 연구
했고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금식했으며 병든 자와 감옥에 갇힌 자들을 방문했
다. 
죤 웨슬레는 1735년 복음전파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미국 죠지아 주로 선교
하러 가던 선상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폭풍과 파선의 위
험 중에서 나타내 보인 그들의 신앙적 확신에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죤 웨슬레는 1738년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해 5월 24일 저녁 런던 알더스게
이트에서 모인 한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루터의 글이 읽혀질 때 가슴이 “이상
하게 뜨거워지는” 영적 각성을 체험했다. 
그 후 웨슬레는 진젠돌프를 비롯한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계속적인 협력관계
를 유지하면서 복음 전도자로 나서서 옥외 천막집회를 인도하며 영국 곳곳에 
복음적 각성 운동을 펴 나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형벌을 두려워하며 
회개했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사죄와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며 새로운 삶
을 살기 시작했다. 웨슬레는 중생의 정서적 체험, 성령의 내적 증거, 의지
의 
성결성, 하나님과의 동행, 성화의 완전성 등을 강조하며 영국교회 안에 각성 
및 부흥 운동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 메도디스트 교파가 생겨났다. 

3. 미국의 밤을 밝힌 각성 운동자 에드워즈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200여년이 지난 18세기 초엽 미국도 영적 및 사
회적으로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미국 대 각성 운동의 주역
이 된 요나단 에드워즈가 미국 마사츄셋트 주 노드햄턴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
하던 1729년 당시는 100여년 전에 불붙던 청교도적 신앙 운동이 극도로 침체
된 때였다. 에드워즈는 마을 청년들 가운데 널리 유행하던 방종함을 목격하
고 마음에 큰 고민을 느꼈다. 그는 당시 마을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
다. 
“외조부의 사망 후 경건은 극도로 침체했다. 마을의 젊은이들 가운데 수년
간 방탕이 크게 유행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밤 거리를 헤매며 걸어 다녔고 술
집을 드나들며 음탕한 행위를 자행했다. 어떤 사람은 음탕한 행위를 나타내 
보이므로 다른 사람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주 남녀들이 함께 모
여 주연과 환락에 빠지곤 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밤을 새우고 지냈으
며 가정
의 질서를 생각지도 않았다.”
17세 때 이미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각성을 체험한 요나단 에드워즈는 노드
햄턴의 가정마다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며 회개와 각성을 독려했다. 1733년부
터 젊은이들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734년 에드워즈가 “이신 득
의”란 주제로 다섯번 설교했을 때 놀라운 각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설교
는 “때에 맞게 선포된 설교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영혼 위에 하늘의 축복
이 놀랍게 쏟아지게 한 설교였다.” 마을에서 이름난 젊은 여자가 가슴이 깨
어져 변화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각성이 1735년 여름까지 계속되었
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기록했다. “마을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것 같이 보
였다. 전에 볼 수 없던 사랑으로 충만했고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동시에 통회
로 충만했다. 가정마다 그들 위에 임한 구원으로 기쁨을 누렸다. 하나님의 행
차가 그의 성소에도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되었고 그의 성소
는 사랑의 처소가 되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1740-41년에 또 하나의 놀라운 각성 운동을 주도하며 체
험했는데, 이 각성 운동을 가리켜 “대각성 
운동”이라고 부른다. 에드워즈
가 마사츄세트 주의 엔필드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
들” 이란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는 엔필드 마을의 형식적인 신자들
의 가슴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커다란 충격을 가져 다 주었다. 청중들은 하나
님의 무서운 심판 선고에 무서워 떨면서 탄식했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에드워즈의 영적 각성 운동은 사회 개혁으로 이어졌다. 에드워즈는 인디언들
에 대한 백인들의 착취를 공박하는 글과 불의한 사업과 부도덕과 부정직을 공
박하는 글을 쓰며 사회 개혁을 시도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 의식에 사로잡
힌 설교자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높인 칼빈주의 신학자로 미국의 교회와 역
사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놀라운 각성 운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4. 조선의 밤을 밝힌 각성 운동자 길선주 목사 

20세기 초엽 조선은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나라는 1905
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에 의해 점령을 당하기 시작했고 사회와 경제 상태
는 무질서하고 어두웠다. 윌리암 블래어 선교사는 1910년에 저술한 「한국의 
오순절」이란 저서에서 19세기 초엽 조선의 어
두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
했다. “건장한 남자들이 망국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 같이 가난하고 비참한 민족이 또 
있습니까?’ 그러나 이 말은 그들의 눈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
의 심령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수년 동안 그들은 재 가운데 앉아 그들이 당하
는 불행과 지난날의 죄악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토록 처참한 민족 위에 하나
님은 때때로 축복의 손을 펴신다.” 20세기 초엽 조선은 영적으로 그리고 사
회적으로 처참한 상태에 있었다. 
조선의 처참한 어두움을 밝히는 영적 각성 운동이 1903년경부터 서서히 일어
나기 시작하다가 1907년에 평양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각성 운동의 주역
은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였다. 온 나라가 민족적 비통에 사무쳐 있
던 1905년,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서 서방 교회를 부
흥시켰다는 소식은 길선주 장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길선주 장로는 신학교 시
절부터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1906년부터 평안도 곳곳에 부흥 운
동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
었다. 
1907년 1월 첫 주 평양 장대현 교회 사경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설교하는 기
간 중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2,200여명의 결신자가 생겼다. 수
요일 저녁 집회 때의 일이었다. 예배당은 만원을 이루었고 장내의 분위기는 
곧 무엇이 터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길선주 장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성
신을 받으라”는 설교를 시작했다. 성령으로 충만한 길선주 장로의 설교는 흐
르는 시내 같았고 회중은 감격에 사로잡혔다.
다음 날 저녁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설교 도중에 여기 저기서 통회의 외침과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
다. 블래어 선교사는 그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한쪽 구석에
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했고 이어서 모든 사람이 울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다가 마루 
위에 뒹굴면서 고뇌에 찬 모습으로 두 주먹으로 마루 바닥을 두들겼다. 모든 
청중들이 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했는데 통성기도의 감화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많은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고 기
도의 
바다가 하나님의 보좌를 때리는 것 같았다.” 
1907년에 일어난 영적 각성 운동은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불
길이 되었고 윤리적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회 개혁 운동으로 이어졌
다. 블래어 선교사는 각성 운동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
다. “시내 각 곳에서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다니며 전에 피해를 주었던 사람
들을 찾아가 잘못을 빌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뿐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훔
친 물건과 돈을 돌려주느라 시내는 온통 술렁거렸다. 한 중국 상인은 어떤 기
독교인이 들어와 수년 전 자기에게서 부당 이익을 취하여 모은 것이라며 거금
을 주는 것을 받고 깜짝 놀랐다.”
길선주 장로는 1907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여 한국 최초 일곱 분 목사들 중
의 한 분으로 안수를 받았고 그 후 목회와 전도에 헌신하며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에 종사하다가 1935년 11월 26일 평남 강서군 고창교회에서 부흥회를 인
도하고 마지막 폐회 축도를 마치고 쓸어져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졌다. 

5. 오늘의 시대의 밤을 밝히는 각성 운동 

이 시대를 밝히는 각성 운동은 무엇보다 “회개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
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통회하는 영적인 회개와 이웃 앞에서 자
신의 탐욕을 제거하는 윤리적인 회개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회개
는 남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설교나 구호로 나타나기 전에 나 자신의 생각
과 삶을 먼저 미워하고 슬퍼하는 통회 자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길선주 목사) “내가 바로 신사 참배한 죄인입니
다”(한경직 목사)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목사) 라는 고백들
이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입에서부터 터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를 밝히는 각성 운동은 또한 “화해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
다. 각성 또는 부흥운동의 본질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
람들을 만나는 생명의 운동이고 화해의 운동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나타
난 생명과 화해의 운동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는 모두 자기의 주장 또
는 이데올로기만 내 세우고 상대방을 공박하는 ‘분노’와 ‘분쟁’과 ‘분
열’에 휩싸여있다. 각성운동은 예루살렘에 머무는 운동도 아니고 이스라엘
의 회복을 위하는 운동도 아니다. 사마리
아와 가이사랴와 소 아시아와 마게도
냐와 로마 등 이방을 품는 화해의 운동이다. 
이 시대를 밝히는 각성 운동은 또한 “절제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며 
사회 변혁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장기려 장로 한경직 목사 김용기 장
로 등이 나타내 보인 절제와 검소와 봉사의 삶이 곳곳에 나타나 보이기를 바
란다. 1960년대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새 생활 운동”과 같은 윤
리 및 사회 변혁 운동이 다시 한번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지금도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유해 업소와 행위들이 우리 사회 곳
곳에 만연되고 있다. 좀 과격한 형태의 정화 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바람직하
다. 사회와 나라를 살리자는 운동이 학생들 가운데서 순수하고 뜨겁게 일어나
기를 바란다. 우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
게 만들고 우리의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며 그리고 지구의 고난 당하는 우리
의 가난한 이웃들과 연대하여 함께 살기 위해서 이다. 
이 시대를 밝히는 각성 운동은 무엇보다 “성령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
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도모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하나님 중심적”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진정한 각성과 부
흥은 인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복음운동과 부흥운동이 혹시 잘못된 
운동으로 나타날까 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식으로 복음을 
포장하지도 않고 로마의 웅변술로 각색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들
어내고 다만 성령을 의지하며 십자가만을 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성령운동은 
기도와 성령과 약함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생
기를 부어주시옵소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