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개혁정신과 한국교회의 갱신 2 김재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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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개혁정신과 한국교회의 갱신 2

김재성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글의 순서

2. 세 가지 개혁: 예배, 신학, 교회제도와 조직
1) 예배 개혁
2) 신학의 개혁
3) 교회의 제도와 조직의 개혁
3. 고난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은 지도자 칼빈
III. 결론

2. 세 가지 개혁: 예배, 신학, 교회제도와 조직
칼빈은 “교회 개혁의 방법과 그 분파의 치유법”이라는 논문 (1549)에서 당
시 교회 개혁의 핵심 내용을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예배의 개혁, 
신학의 개혁, 교회제도와 조직의 개혁으로 집약된다.

1) 예배 개혁
예배의 개혁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다. 지금은 예배학이 하나의 예식
적인 학문으로, 혹은 목회학의 일부로 축소되어가고 있으나, 종교개혁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
는 행위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가장 존중해야할 인식이요, 감사의 표
시로 
인식되었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 그리고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의 가장 저주를 받아야할 오류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바르게 이해하
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시정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미
사라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즉 여러 종류의 거룩한 예식들을 통해서, 다시 말
하면 죽은 성자들이나 살아있는 성직자들의 중보를 통해서 구원을 추구하였는
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을 대체시키는 우상숭배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예배는 모든 신학의 내용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칼빈의 예배
에 대한 인식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
데 직접적으로 헌신의 행동을 통해서 경배를 올리는 것과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는 행위이다. 개인적인 기도는 믿음의 가장 첫째되는 연
습과 실천이었다. 

그리고 예배의 질서 있는 순서도 중요시되었는데,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
라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랐다. 칼빈의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
을 경청하는 것이며, 성
례의 시행, 기도 그리고 교제라고 강조하였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좁은 예배에 대한 이해와 행사 위주의 예배 진행들을 보게될 
때에 빈약한 성경이해와 실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2) 신학의 개혁
신학이란 무용지물이요, 신앙과 믿음의 능력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잘
못된 ‘부흥사’ 혹은 ‘은사집회 인도자’들의 주장을 듣게 된다. 그러나 필자
가 확신하는 바, 신학은 가장 필요한 학문이요, 우리가 얻은 모든 신앙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 학문 중에서 가장 필요한 학문이다. 

신학 중에서도 최고의 성경적인 신학체계로 일컬어지는 칼빈주의는 ‘제네바
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칼빈의 사상과 신학은 칼빈주의 속에 용해되어 있
으나, 그것은 성경적 교훈이었다. 프랑스의 종교적 부산물이 제네바의 이데올
로기를 만들었고,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정복해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나 잘못된 생각이다.

칼빈주의라는 신학체계는 하나의 거대한 성경적 교리체계, 인생관과 우주
관, 생명과 문화를 다루는 종합적인 사상체계로 발전하였으며, 심지어 이전
에 없었던 새로운 사상처럼 인식되어질 만큼 
독특하게 형성되어 왔고,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문화로서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칼빈주의 신학체계가 정립되면서 칼빈이라는 사람도 살아남게 되었
다. 칼빈은 한 시대에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는 신학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마
쳤고, 그것은 네델란드 정통 신학자들과 영국의 퓨리턴들과 뉴잉글랜드 개척
자들의 손으로 빚어지면서 칼빈주의라는 독특한 신학체계가 형성되어졌다. 
개신교 신학은 모든 삶의 영역을 새롭게 하였으며, 윤리적 기초로서 생각의 
기초를 바꾸었다. 신학의 핵심기초는 역시 성경에 입각한 중요한 중세 신학
의 오류를 지적하여, 종합적인 신앙의 내용들을 신앙고백서 혹은 교리문답서
에 담아 놓았고 그것은 곧 바로 개혁 신학의 핵심사항이 되었다.

필자는 아홉 가지 중심진리의 진술이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신학체
계로 정착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 성경 중심주의, 둘째 하나님의 주
권, 셋째 인간의 부패와 타락, 넷째 그리스도의 구원성취, 다섯 째 구원에 있
어서 선택의 교리, 여섯 째 믿음을 가진 자의 성화, 일곱 째 거룩한 교회론, 
여덟째 언약과 성례들의 중시, 아홉 째 부활과 재림
의 소망 등이 정착되었다.

3) 교회의 제도와 조직의 개혁
칼빈은 교회 제도를 세웠고, 그 중에서도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제도를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복구한 최초의 목회자였다. 제네바 교회는 성도들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당회를 통해서 교회의 치리를 감당해 나갔다. 「기독
교강요」 제 4권에서, 칼빈은 참된 교회의 표지와 거짓 교회로부터의 구별에 
대해서 매우 정교한 논리를 펼쳤다. 그 핵심에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정당
한 시행이 있어야만 진정한 교회라고 하는 강조가 들어있다. 

칼빈은 교회의 독립권을 위해서 몸으로 투쟁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처럼 교
회의 독자권을 확보하고 시 당국의 간섭으로부터 권징과 치리권을 확보하려 
했던 것은 사실상 교회의 순수함을 유지하고자 했던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
다. 그의 교회관에 보면, 분투 노력하는 교회의 모습이 있어야만 대적자들에
게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러난다. 

그 어느 시대라도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교회가 
이 지상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도록 사탄이 허락하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
나님은 이런 상황을 허용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훈련받고, 인내를 배우도록 경
건의 연단을 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겸손해지기를 원하고 계
시며, 동시에 그 힘을 드러낼 기회를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
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교회에게 힘을 주시며, 인간들의 무능함을 체험하게 만
드신다. 

하나님은 종종 더 부도덕한 사탄의 도구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있음에도 허용
하시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칼빈은 좀더 긍정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좀 
더 기쁨으로 하나님을 높이도록 하고자,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
가를 지고 나가게 하여, 그로 인해서 우리가 부활에서 주님과 함께 참여하게 
하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항상 부도덕한 자들에게 고난을 당하지만, 교회는 
항상 시련들을 잘 이겨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성도들에게 과거에 
하나님의 하신 일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
이다. 교회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항상 투쟁하고 있는데, 그 배면의 역사
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일면들이 있고, 그에 대해서 하
나님이 구원하시는 
행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한, 비록 자주 고난을 당하는 교회이지만 결국에는 승리하는 것이다.

3. 고난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은 지도자 칼빈
칼빈의 신학은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편협된 대중적 이미지만
으로 성급한 판단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외적인 모습은 욥의 고통
스러운 시련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의 얼굴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수척해졌으
며, 숨쉬는 것도 자유스럽지 못했으며, 등은 굽었고, 몸에는 고열로 인한 고
통이 역력하였다. 편두통, 발열, 신장결석, 치질, 폐결핵 등과 끊임없이 투쟁
을 해야만 했었기에 외적인 모습도 역시 욥의 경우와 닮은 점이 많다. 그래
서 욥이야말로 칼빈이 가장 잘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었던 주제였다. 오직 죽
음만이 칼빈으로 하여금 이런 고통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칼빈주의는 하나의 경건 훈련과목이라고 볼 수 있다. 칼빈주의는 금욕의 최
정상까지, 매우 견디기 어려운 지점까지 끌어올리는 제자됨의 연단과정을 중
시한다. 

노년기에 접어든 칼빈은 자신의 고향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시대를 경험하
였고, 그 
과정에서 고뇌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1555년 처음으로 그가 사랑하
던 조국 프랑스 여러 지방에 (파리, 모, 쁘아띠에, 부르쥬, 오를레앙, 뚤르
즈, 르네즈, 리용 등) 칼빈주의적인 개혁교회가 설립되었지만, 잇단 국왕들
의 서거와 암투가 지속되는 프랑스 궁전의 불안함에서 비롯된 개신교 박해로 
인해서 긴박한 시간들을 맞이해야만 했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원했던 이
런 건전한 개혁 교회의 건설에서 승리하지 못하였었다. 아직도 로마 카톨릭
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무지하였고, 일부는 조직적이요 의식적
으로 반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격적으로 감화력을 발휘한 시기는 1555년부터 1564년 죽을 때까지 마
지막 10년간이었다. 그 때는 아무도 감히 공개적으로 이 위대한 개혁자에게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의 정신과 내용과 하나님을 향한 진
심을 이해하게 만들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논쟁과 대적
자들과 싸워야만 했다. 내적으로는 시의회를 장악하려는 아미 뻬렝과의 싸움
이 가장 어려웠었고, 신학적으로는 삐에르 까롤리와 제롬 볼섹의 추방, 세르
베투스의 처형이라는 
극한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
지금까지 칼빈의 교훈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교회가 내부의 부패에 대해서 
갱신을 시도하려면, 예배의 개혁, 신학의 개혁,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
실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갱신에는 반대와 대적자들이 있게 마련이므
로 끝까지 분투노력하는 개혁자의 생애를 닮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결론에서 필자가 제시하려는 한국교회의 위기 극복 대안은 영적인 감격과 부
흥을 통해서 교회를 부패시키고 침투하고 있는 세속적 영향을 극복해나가는 
일이다. 모든 한국교회 구성원들은 마음을 비우고 더욱 더 가난해 질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리 설교자들은 감동적이요, 창조적인 신앙을 일깨우는데 밤낮
을 가리지 말고 매달려야만 한다. 대형교회는 마치 권력의 세습처럼 부정적으
로 비춰지는 후계자 선정에 있어서 공정하고 진솔하게 성도들의 결정을 존중
해야 한다. 

모든 교회는 정통 진리보다는 혹세무민하는 이단이 성행하고, 과도한 경쟁으
로 인해서 사랑이 식어지는 이 시대야말로 바로 영적으로 볼 때에는 몰락의 
벼랑 끝에 와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 
개혁주의 교회들은 확고한 말씀 
중심의 신학에 충실하면서도, 좁은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서 겸허하게 반성하
고 마음을 낮추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한국 교회는 건전한 영향력을 발휘하
여, 어둡고 왜곡된 죄악과 부패에서 헤매는 한국인들의 희망이 되어야만 한
다.

나아가 지금 한국교회는 부활 신앙의 감격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구체적
으로 누가복음 24:13-35에 보면, 부활의 사건은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또 
한사람 제자에게 감격과 뜨거움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
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다. 예수님은 엠마오
로 향하는 두 제자들의 슬픔과 낙심을 알고 함께 동행하시면서 새로운 사명
과 성경적 이해를 갖추게 해 주셨다. 

사실 이 두 제자들은 상당부분 부활의 첫 사건에 대해서도 들었고, 무덤을 
확인하였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다 글로바에게 있
어서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죽은 예수의 최근 소식, 부활의 확인을 들었지
만, 그는 슬픈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이에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
아야하고, 그리고 난 후 영광에 들어간 것
임을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과 모든 
성경에 쓴 것이라고 풀어주었다. 그때에 이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졌다. 자
연종교의 느낌이나 형이상학적인 회의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파
괴하는 것이다. 

근대 유럽의 자아중심적 회의론과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비신화화 비평
학으로 부활 신앙은 무너지고 말았다. 또한 극단적인 과학주의로 인해서 부활
의 객관성이 상실되었다. 현대 기독교는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외면
하고 각자 자기 나름의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종교적 주관주의 혹은 내부주의
로 빠져버리고 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부활신앙은 분명히 이런 혼란을 극복해야 한다는 멧세지
를 던져 주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분명히 눈으로 확인하고 목격할 수 
있었다. 부활체험은 외적인 모습에서 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경배하고 무릎을 꿇어 예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가복음 24장 31절에서 
주님과 숙소에 들러서 식사 기도를 마치고 난 후,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
리는 놀라운 방식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였다. 그들은 이상한 체험에 대
해서 아무런 불평이나 하소연을 
하지 않고, 도리어 놀라운 체험을 인식하면
서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고 깨닫
게 되었다. 그들은 이 체험을 부활신앙의 증거자의 삶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
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체험케 해 주시고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들
은 다시 험한 길을 되돌아가는 변화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믿음 안에서 우리와 함
께 머물러서 이러한 체험을 주시며 변화를 주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과 삶이 우리에게 다시 생생하게 말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근
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체험을 바꾸어놓는다. 약하고 부
족하고 상처 입은 제자들에게 권능과 사랑의 힘으로 다가왔다. 이해하고 동행
하시는 주님은 부활하신 이후로는 개인과 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주
신다. 그의 권능을 나타내사, 모든 만물이 주님을 공경하고 섬기게 하신다. 

슬픔과 실망으로 엠마오로 향해가는 두 사람은 우리 주님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 목격하고 되살아났다. 오늘도 나에게는 그런 날로 주님은 다가오신
다. 성령의 권능으로 다가오신다. 부활의 체험은 사람을 바꾸었다. 이들 제자
들은 다시 돌아가서 사명을 다하고자 인생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면, 이제 
한국 교회는 이러한 감격이 있어야만 한다. 구원의 감격에 젖어서 살아갔던 
제자들처럼, 오늘 한국교회는 부활신앙이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