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행사로 성육신을 기념할 수 있는가?
(부제/교회는 성탄 사건을 바르게 기념하고 풍성한 그 의미를 누려야 한다)
기독웹진 voice21 편집장 황희상
성탄절은 그 유래 자체가 이교(異敎)적이다. 더구나 성탄절에 행해지는 각종
풍습과 놀이 또한 로마 카톨릭의 축제에서 비롯한 것으로 개혁 교회의 전통에
서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열매 없는 어둠의 일과 교제할 수 없음(엡5:11)
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장로교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主日) 이외의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
를 지키지 않았다. 개혁 교회의 전통 아래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온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지 않는 교회의 다양한 절기들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
고 여겼으며, 이를 신앙고백과 총회의 기록, 공식 선언문 등을 통해 명문화
해 왔다.
특히 1643년 영국의회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기타의 미신적인 절
기들을 금지하였고, 이러한 정신은 우리 장로교 신조인 ‘웨스트민스
터 신앙고
백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제2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
여’ 그리고 제21장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뿐만 아니라 1560년 스코틀란
드 신앙고백서 제20장, 1562년 영국교회 39개조 신조 제34항 등에서도 이 같
은 개혁의 유산은 분명하게 발견되고 있다.
성탄절은 교회사 속에서 이처럼 이미 수 차례 개혁된 바 있다. 그런데도 오늘
날 우리에게는 우상숭배의 심리가 많이 남아 있어, 아직도 그것을 즐기고 애
써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감사예배를 드리고 트리를
장식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아기 예수의 탄생하심을 경배하는
경건한 신앙인의 자세인 것으로 생각한다. 무지의 결과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기저에는 인간의 쾌락과 상상, 성경을 떠난 오만함이 깔려있음을 본다.
물론 육신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구속사의
정점으로 마땅히 교회가 기념하고 그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근거도 없는 성탄절 때의 온갖 기념 행사로 성육신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거
나 그 의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고스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인
류 구원을 위한 인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임을 교회는 늘 선포하고 기념
하며 풍성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개혁 교회의 전통을 모르는 연약한 교회라고 한다면 또 모를까, 이미 우리에
게는 고귀한 종교개혁의 정신이 주어져 있다. 이 개혁이 인간의 역사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요 선물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지나간 구 시대의
유물이 아니요,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향해 베푸신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님
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귀한 선물을 망각하고 지낼 것인가.
진리는 바른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옳지 않는 것에 침묵하도록 방치하
지 않는다. 오히려 감동케 하고, 마음을 동하며, 행하게 한다. 불의한 것을
거절하게 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한다. 성탄절을 포함하여 어떠한 절기도
도무지 기념하려 들지 않는 정신이 우리의 바른 신앙 정신이다. 종교적인 이
유에서든, 혹은 예배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든, 교회 안에 방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