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우리의 과제_오덕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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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우리의 과제

오덕교 교수

1517년 10월 30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95 개조항의 항의문
을 게시하면서 시작된 종교 개혁 운동은, 교회사가인 메릴 따비네가 지적한 
것처럼, 시대의 요구이자 하나님이 준비한 사건이었다. 중세 교회는 1229년 
발렌시아 교회 회의를 통해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여 말씀의 암흑 시대를 초래
하였고, 성도들은 하나님이나 천국, 그리고 구원 계획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
하는 채로 생활하여야 했다. 말씀에 대한 무지 가운데 백성들은 인간의 공로 
사상을 의지하고, 성자들의 공로를 힘입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직업에 따라 수
호 성자를 두고 섬기기에 이르렀고, 유물 숭배나 성지 순례를 통해 은혜를 입
는다는 순례 사상 등의 미신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루터는 “오직 성
경”(Sola Scriptura)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중세 교회가 성경의 가르
침을 경시하고 소견에 좋은 대로 교회를 운영함으로 세속화 
되고 부패하였
기 때문이었다. 루터의 가르침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개혁의 원리가 되었
고,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구호 아래 개혁 운동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교회가 개혁해
야 할 몇 가지 사안을 생각해 보자.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흔드는 첫 번째 사상은 실용주의적 가치관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시하지만 실용주의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처럼 한국 교회는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
고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원리
는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과 동기도 중요하므로 아무리 동기와 목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선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교회 성장이라는 명제 아래,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인위적인 방법들을 사용해 왔
다. 교인을 긁어모으기 위해 버스를 동원하거나 전도를 많이 하는 자에게 경
품을 주는 등 상업주의적 전도 방식을 도입하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는 구실아
래 성경에 명한 바 없는 인위적인 예배를 고안할 뿐만 아니라 수용해 왔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사고는 바로 중세 교회가 걸어 온 과오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중세 교회는 이러한 실용적인 사고로 교회를 운영함으로 많은 부정
과 부패를 낳았고, 루터는 이러한 오류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에서 성공적인 사례를 남긴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도입
하기 전에 먼저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세속주의적 사상이다.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교회 직분이 계급으로 인
식되어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것을 큰 권세를 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설
교보다는 연극중심의 예배를 도입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등 오락 중심의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주일학교의 오후 
예배는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존속하는 경우에도 신앙 교육대신 생일 
파티나 게임 등 교제 시간으로 변질되어 있다. 교회가 이와 같이 인간의 호기
심을 자극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면 세상과 다른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는 교회의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되는 첩경이 될 것이며, 세상
으로부터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짓밟힘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경적 신
앙을 수호하고, 실용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 가치관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곧 우리의 신앙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든 교훈이나 전통에 근거한 것
인지를 점검하고, 하나님이 가르친 교훈을 따르는 예배를 드리는지에 대해 돌
아 볼 것이며, 우리의 행동 원리가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세
속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 깊이까지 
들어와 있는 실용주의적 가치관과 세속주의를 경계함으로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사
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