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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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찬 국장
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두번째)
—입다의 서원과 그의 딸에 대한 문제(삿 11:34-40).

송영찬 목사(본사 편집국장)

시작하는 말
사사기 11장 39절에는 입다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올 때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입다를 맞이하는 사람을 여호와
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딸을 번제로 드렸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학자들의 견해
1) 누구든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에서 나와 맞이하는
그를 죽여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다는
자기의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오랫동안 많은 학
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아왔으며 요세푸스, 어거스틴, 종교 개혁자
루터도 지지했다. 그들은 입다가 이방 돕 땅에 오래 기
거하면서 그
들이 행한 인신 제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입다는 서원 당시 분
명히 번제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 그 근거
를 두고 있다.
2) 짐승이면 번제로 드리고 사람이면 성막 봉사자로 드리려 했다
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만일 집에서 짐승이 나오면 그
것을 죽여 번제로 드리고 사람이 나오면 평생동안 그를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문 31절에 대한 NASB
의 번역에 근거한 것으로, 무남독녀 외동딸이 나와 맞이하자 평생동
안 성막 봉사자로 살도록 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짐승
이 전쟁에서 승리한 입다를 즐기며 반갑게 맞이할 이유가 없기 때
문에 처음부터 입다는 사람을 지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3) 번제로서는 짐승을 잡아 드리고 사람은 성막 봉사자로 드리려
했다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분명히 사람을 염두에 두
고 서원했으며 입다가 번제에 관한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짐승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 해석
은 후기 맛소라 학자들과 
중세 시대의 David Kimchi와
Hengstenberg, 구약 학자 Keil과 Delitzsch, K. Campbell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2. 세번째 견해에 대한 성경적 지지.
1) 입다가 “그를 번제로 제사드릴 것이다”(31절)고 한 말은 그 사
람을 여호와를 위해 드리겠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
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건에서 그 의미가 명확하게 나타난다(창
22:10-14). 구약 학자 카일과 델리취는 ‘번제'( )라는 단어는 제사
의 중심이 되는 ‘제단’도 의미하므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한 제단에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정신은 나실인의 규례에서도
나타나며(민6:2,13-21)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에서도 볼 수 있다
(출29:1-46). 박윤선 사사기 주석 참고.
2) 구약에는 일평생 동안 여호와께 자기를 바쳐 성막에서 봉사하
는 여인들이 있었다(출38:8;민6:18-21;삼상2:22). 이 경우 아버지가 서
원한 처녀도 있었다(민30:16).
3) 입다는 처음부터 서원의 대상으로 인격체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사11:31). 한나 역시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
한 바 있다(삼상1:11).

n 4) 인신 제사는 율법에 저촉된다(레18:21;20:2-5;신12:31;18:10). 여호
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입다(29절)가 인신 제사를 서원한다는 것은
문맥의 흐름에서도 위배된다. 만일 입다가 인신 제사를 드리려 했다
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왕하 3:27 참고). 또
한 입다가 인신 제사를 시행했었다면 사무엘은 입다를 기드온과 함
께 큰 용사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삼상12:11).
5) 이스라엘의 젊은 처녀들이 입다의 딸을 위해 기념하였다는 점
이다(40절). 한글역본에 “애곡하니라”는 원문( , 원형 )의 뜻
은 ‘선물을 주다’ 또는 ‘칭송하다’ 또는 ‘기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
다. 따라서 젊은 처녀들이 매년 나흘씩 입다의 딸을 칭송한 것은 그
딸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 바쳐진 일을 기념하기 위함이
었다.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입다는 그의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다. 입다는 분명히 제사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을 것이
며, 그 딸은 여호와의 성막에 드려져 일생을 여호와께 헌신하며 살
았을 것이다.